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Oct 15. 2024

유통기한   

그리고 결혼기념일에 대한 소회 

새벽 6시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나는 첫째보다 더 일찍 일어나기 위한 발악은 작게 틀어둔 핸드폰 알람으로 시작된다. 아직 잠든 두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특히 정음의 열을 체크하며 적정 안정권에 들어있음을 확인하며 그렇게 하루는 시작된다. 오전 7시. 첫째가 일어난다. 아침 메뉴를 물었을 때 안 먹겠다 칭얼대다가도 갑자기 먹겠다던 아이의 한 마디에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탄수화물을 먹어야 기운이 난대'라는 아이의 말에 그럼 볶음밥인지 주먹밥인지를 물어보다가 아이가 결정한 건 토스트와 과일이었다. 첫째 아이의 식사를 준비하고 정음의 물을 끓이며 하루는 그렇게 어느새 분주히 시작된다. 일반 정수기물이 아닌 100도씨에서 팔팔 끓인 살균된 음수를 취해야 하는 암환우를 다루는 건 평소 육아에 최소 1.5배 정도의 수고스러움이 더 필요하다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이다. 아니다. 나와 친정어머니, 단 둘 만이 아는 사실... 



첫째 등교를 시키고 귀가하여 본격적으로 정음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여전히 식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항구토제를 먹이고 고구마 셰이크를 만들어 간단한 아침을 먹인다. 마시는 정음을 지켜보면서도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토하진 않을지 늘 노심초사이기에. 꿀떡 넘어가는 아이의 목울대를 마냥 바라보며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려 한다. 그러다가 정음이 그만 먹겠다는 시늉을 하면 다시 감정에서 이성이 제자리로 돌아와 그다음 실행을 착수시킨다. 



가볍게 정음과 대화를 주고받고 남은 아침 집안일을 서두른다.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을 하고 정음이 누워있는 거실 매트리스를 깨끗하게 정돈하고 이불과 겉싸개를 갈고 난 후, 샤워를 그제야 한다. 가을이 한창이면서도 아직까지 나는 땀범벅일 때가 잦다. 집 안팎에서 이리저리 몸을 쉼 없이 굴리다 보니 어느새 땀이 맺히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머리도 쉴 새 없이 궁리를 한다. 몇 시간 후에 또 간식을 먹고 점심으론 김치부침개를 해 줘야지 하는 그런 생각. 요플레를 먹이고 과자를 먹이고 또 피자토스트를 해 주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계속해서 먹이려는 술책. 



노트북을 연 시간은 오전 10시가 지나서였다. 손이 빨라서 다행히 아침에 대략적인 해야 할 일을 마친 후 정음의 온라인 출석이 시작된다. 건강장애학생으로 등록된 정음이 암치료가 끝나도 학교에는 언제 돌아갈지는 미지수다. 딱히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현재의 질병으로부터 아주 멀리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그럼에도 스쿨포유를 통해 아이의 최소한의 출석과 학적기록을 위해 노트북을 열고 마는 것. 공부는 중요하지 않아도 기본은 해야 한다는 것... 치료에만 전념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여러 수고스러움과 난관은 여기저기 언제나 우리를 기다린다. 



오후, 정음의 점심과 간식을 챙긴 후에 히크만이 달린 중심정맥관 부분을 휴지와 비닐장갑과 테가덤 방수테이프로 말끔히 방수시킨 후 정음을 샤워시킨다. 옷을 말끔하게 갈아입힌 후 하교하는 첫째를 맞이한다. 첫째 샤워를 시키고 간식을 챙겨주면 대략 오후 3시까지 쌍둥이 형제는 사이좋게 놀이(?)가 시작된다. 그들이 노는 틈에 아주 조금 쉴 여유가 주어지려 하지만 그 마저도 10분을 채 가시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다툼이 있을 땐 중재를 하고 배고픔의 신호가 올 땐 간식대령을. 그리고 저녁 식단을 고민한다. 그런 일상조차 반가운 이유는 정음의 백혈구와 ANC 수치가 그나마 안정권에 접어 들어서 큰 탈이 없는 시간이기 때문일 테다.... 남들에게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이제 내게는 고마운 순간들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 톡이 왔다. 


'재산세 체납분이 있네. 돈 좀 붙여' 


만약 다른 날 저 문장을 접했다면 나는 아마 이 글을 쓰지 않았을 테다. 하필 '오늘'이었기에 나는 '글'을 쓰려했던 것일 테다. 어떤 감정선이 건드려져 기어코 키보드에 손을 올리지 않으면 못 참을 것 같은 들끓음과 조우했기에. 


남편에게 돈을 건네며 톡을 보냈다.


'결혼기념일에 처음 한다는 안부톡이 다른 말도 아닌 재산세 돈 붙이라는 말이라니. 여전히 당신 다워서 이젠 크게 놀랍지도 않지만. 여전히 실망스럽고 참담하네. 덕분에.' 


남편은 톡을 읽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회의 중이거나 무시하거나 언제나 둘 중 하나이겠다... 그의 후진 문장....크게 놀랍진 않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을 사람과 그의 문장을 잠시 곱씹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올 무렵. 




그 감정에 이성을 더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정음이었다. 정음은 소변을 요청했고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갔을 때 아이의 팬티에는 똥이 한껏 묻어 있었다. 적잖은 대참사가 일어날 뻔(?) 한 순간 위기 탈출을 위해 어서 정음을 부추겨 화장실로 직행. 다행스럽게 대변을 잘 보고 좌욕을 시키고 샤워를 다시 시키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30여분을 혼자서 낑낑.... 



몇 분 전까지 한 남자를 향한 분함과 분노와 참담한 슬픔이라는 감정은 어느새 없어진 채 뇌암 환자인 자식의 간병과 치다꺼리에 열중하는 한 여자가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 있었다. 아이의 팬티를 빨면서. 눈에서 절로 왈칵 눈물이 흘러넘치면서.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12년인지 13년인지 이젠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할 필요도 없는 횟수이나. 남편은 하필 오늘 내게 돈을 달라 했었다. 정음은 하필 오늘 똥을 쌌다. 그리고 하필 오늘 나는 좀 더 초라한 모양새로 집안일을 했다. 어쩌면 오늘이 아니었다면 모든 순간의 행동들 앞에 '하필'이라는 부사가 붙여지진 않았을까? 누군가는 내게 그러할까. 속이 좁다고. 남편이 바깥일을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면서. 누군가는 내게 그러려니 하라고 말할까. 그러니 누군가는 내게 그냥 원래 부부가 그렇고 참고 살면 언젠가 나아진다고 누군가는 그럴까. 



유통기한이 딱 오늘까지 닌 파스타 소스를 하필 발견한 오늘. 나는 미련 없이 소스를 모두 개수대에 쏟아부은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거실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시시콜콜 귀여운 음성으로 자신들의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이들과의 관계엔 유통기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자식이 아닌 부부의 연은 언제든 사소한 실망들과 참담한 감정들이 겹겹이 누적되다 보면 어느새 유통기한은 지난 지 한참인 채 부패되고 썩은 냄새만 진동한 채 그대로 뚜껑조차 열지 못한 파스타 소스처럼 거무튀튀하게 변해갈 수 있다는 걸. 언젠가 정음의 치료가 1차 종결된 이후에도 우리가 네 사람일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을 남몰래 품으며. 



여전히 나만 아는 어떤 감정들은 들끓는 심장과 심박수를 건드리고 만다. 숨이 쉬어지지 않은 몇 분 동안 잠시간 호흡을 다스려야 겨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분. 다시 아이들을 바라본다.  다행히 정음은 대변을 잘 보고 난 뒤 편안해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 나는 저들의 화평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입술을 깨물고 눈에 힘을 주어 본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 눈물은 그칠 모른 홍수같이 쏟아져 나온다. 



이 모든 게 또 오늘이라 아마 올해의 결혼기념일은 여러모로 자명한 기억으로 의식 속에 박제될 듯싶다. 첫째의 양육과 둘째의 간병과 기타 살림에만 매진하는 '안' 사람에게 고작 한다는 오늘의 첫마디 덕분에. 당신이 결국 내게 하고 싶었던 말과 마음은 고작 책무적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모르진 않았지만 '하필' 오늘 그 말을 들었을 때 묘하게 미간이 징그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건. 



인스타그램에 떠오른 어떤 부부의 모습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내를 향한 지극한 마음이 가득 담긴 공간과 몇 십 주년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일상. 그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누군가의 비루하고 너저분한 순간. 



인스타그램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최소한 오늘 같은 날 만큼은. 보아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선택한, 내가 만든 '오늘'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누굴 탓하겠는가 싶은 마음에 오늘도 나는 스스로 자책할 뿐이다. 이미 한 사람을 향한 유통기한은 한참 지난 지 오래되어 가며.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을 그대로 짊어진 채, 이 시절의 비극과 고통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기에. 그저 스스로 자조와 자책을 할 뿐이다.



하필 '오늘'이지만. 

그래도 정음이의 건강한 오늘이 지속될 수 있다면...... 부패되가는 어떤 유통기한도 내내 견뎌야 한다는 걸 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