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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13. 2024

3차 항암 그리고 다시 응급실

항암 퇴원 후 바로 입원... 그동안의 정음 투병 기록 

- 악성뇌종양 수포세포종 투병 기록 - 


2024년 5월 

5/1 : 심한 보행장애, 동네 병원 뇌 MRI 및 정밀 검사 소견서 입수 

5/2 : 분당차 MRI 및 긴급 입원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이동) 

5/3 : 1차 개두술, 수두증, 션트 

5/8 : 수모세포종 진단, 2차 종양제거 개두술 진행, 6시간가량, 이후 중환자실 입성

5/9 : 중환자실, PICC 시술 

5/10~22 : 일반실, 병동생활 

5/22 : 오후 SMC 대리 진료, 긴급 전원, 퇴원과 입원 수속

5/22-23 밤부터 새벽까지. MRI, CT, X-ray 등 모든 재검사 진행 

5/24 : MTX 항암제 1차 투입, 히크만, 골수검사, 요추천자 

5/27~6/3 : 1차 항암 A플랜 


2024년 6월 

6/6~15 : 응급실 재입원.... 열남, 균배양검사 -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발현

6/20~25 : 2차 항암 B플랜


2024년 7월

7/4 : 혈소판 수혈, 그라신 수치주사

7/7~10  :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 채집 입원 

7/19 : 양성자 마스크 제작 및 모의 치료 


2024년 8월

7/29~9/2 : 양성자 25회 차  (전뇌전척수 : 13회 차 / 이후 부분 양성자 12회 차) 

이후 일주일 간격 피검사-수치주사-헤파린 주입 등 기타 중심정맥관 관리 


2024년 9월

9/25~28 : 3차 항암 A플랜 입원 


2024년 10월

10/2 : 빈크리스틴, A플랜 주입 끝 

10/6~10/12 : 급 응급실 입원 (균배양검사 2회, 기타 항생제 및 수치주사, 적혈구, 혈소판 수혈 등) 





3차 항암을 위해 9월 말 입원을 했었다. 큰 무리 없이 3박 4일 병동 입원을 하는 동안 여전히 집 나간 식욕은 돌아오지 않은 채 정음은 새 모이 수준 정도의 소량 섭식을 하며 버텼다. 그런데 마지막 날, 에토포시드가 중심정맥관으로 투입되면서 묘하게 정음이가 목의 통증을 경미하게 호소했다. 어쩌면 그때 미리 감지했어야 했다. 이번 항암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게 일종의 아이의 몸에서 직관적으로 발현하는 일종의 시그널이라는 걸. 그러나 그땐 알지 못했다. 설마 또 응급실에 갈 것이라고는. 



이 때는 괜찮았던 너



A플랜 항암은 빈크리스틴과 요추천자를 시작으로 3일 정도 입원, 그리고 항암 시작 후 7일째 되는 날 외래 통원으로 빈크리스틴을 한번 더 맞으면 종료가 된다. 정음도 입원해서 3차 항암제들을 주입시키고 7일째 되는 날 항암주사를 한번 더 맞았다. 그런데 그 이후 정음은 조금씩 알 수 없는 목통증과 미열이 일어나더니 급기야 평소 열 패턴과 달리 37.5도까지 올라갔다. 아이는 이미 평소와 다르게 축 늘어진 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그저 누워 있었다. 그 전날 안 되겠다 싶어서 새벽에 응급실행 입원가방 캐리어를 준비해 둔 터라 바로 정음을 데리고 응급실로 갔다. 



균 배양 검사를 비롯하여 각종 바이러스 검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입원을 기다렸다. 이번엔 암병동이 아닌 일반 소아병동인 7층에 입성. 그렇게 기약 없는 입원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피검사를 통해 확인된 정음의 수치는 모두 바닥인 상태였다. 백혈구와 혈소판은 물론이고 ANC 수치도 0이었다. 수치가 낮아서였을까. 정음이는 입원하는 내내 놀라울 정도로 식욕을 상실하고 주스 100ml 정도만 마실 수 있는 몸상태가 되었다. 이러다가 영양실조로 쇼크사라도 올까 봐 노심초사 안절부절인 나는 주치의께 호소했고 다행히 위너프페리주가  입원 다음날부터 정음의 몸에 주입되기 시작했다. 




아픈 네 앞에서 매순간 무력한 나는 절망한다...절망의 끝엔 그리고 눈물이 함께 했었다...



경구로 섭식이 불가한 상태까지 올 줄은 몰랐다... 혹시 싶어서 엔커버도 받아 두었지만 그것도 몇 미리 마시다가 바로 토했던 정음이었다. 영양공급이 도저히 불가하여 정음은 어쩔 수 없이 위너프페리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몸상태가 되었다. 수분을 비롯한 전해질, 아미노산을 비롯한 필수 지방산 등이 정음의 중심정맥관을 통해 몸으로 주입되는 걸 지켜보며 조금 안도를 할 수 있었다만. 그럼에도 쉬이 떨어지지 않는 열을 매시간 체크하며 새벽밤을 새우고 그렇게 매일매일을 병원에서 누워있는 정음을 지켜보며 나는 타는 속을 애써 달래야 했다. 매일 혼자서 울어야 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괏값일지 모를 테다... 



매일 항생제 3회 (맥스핌)와 수치 주사 (그라신) 그리고 적혈구와 혈소판 수혈을 하며 응급실행 후 입원생활을 한 지 5일 차 되던 날, 신기하게도 수치가 증가하는 시기와 맞물려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가 조금씩 오르는 증가 추세가 되었다. 0이었던 ANC는 550을 찍었고 그리고 바로 다음날 3000까지 오르는 기이한(?) 숫자를 목도하며 나는 어안이 벙벙이었지만 동시에 정음의 상태도 열이 떨어지자마자 아이가 농담도 하고 말을 다시 하고 게임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살았다' 싶었다. 



이번 항암은 혹독히(?) 지나갔다. 항암제 투입 후 보통 수치가 급감하는 시기엔 감염 및 고열 등을 조심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 현상이 생기면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한다. 이번 항암 후 다시 응급실로 가야 했던 경험은 간병인인 나로 하여금 한번 더 수치의 중요성(?) 이라든지 이유 없는 열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덕에 구내염이라든지 타 감염에 대해서 언제나 사후 발생 전 '사전 예방'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새삼 다시 깨칠 수 있었다. 



아무튼.......... 정신없이 9월 말을 보내고 병원에 내내 입원 및 통원을 하다 보니 어느새 달력의 계절이 10월이 되어 있다는 걸 병원에서 외래 예약 날짜를 잡으며 알았다. 10월이 어느새 되었다. 개두술을 한 지 어느새 6개월 차가 되어 간다. 여전히 정음은 잘 걷지 못한다. 어쩌면 장애등록심사를 정말 신청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여전히 매일 수차례 스쳐 지나간다. 남은 치료. 그리고 재활. 그리고 우리 앞의 알 수 없는 미래. 불안과 희망이 공존하는. 심장의 참담과 동시에 모순적으로 지니는 근거 없는 긍정적 희망. 어떤 용기 그리고 또 어떤 공포... 그런 것들.. 



자는 모습을 보고 있어도 자꾸 보고 싶은 건, 밀려오는 어떤 감정들 때문이겠다..... 절절한 예전 너의 그리움.. 그런 것. 



박살 난 인생도 복구가 가능할까. 인생은 생각하고 또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글쎄. 나는 솔직히 이제 잘 모르겠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공포와 불안은 여전히 급습한다. 반대로 근거 없는 희망과 용기는 어떤 이벤트들 앞에서 천천히 소실되어 간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어쩌면 인생은 견딜 수 있는 고통과 견딜 수조차 없는 고통 그 경계를 오고 가며 참 정직하게 흘러간다는 느낌만 받을 뿐이다. 



여전히 나는 운다. 울면서 산다. 그리고 여전히 정음은 분투한다. 자신의 몸속에 생겼던 종양들과 제거는 했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급습할지 몰라 독한 여러 항암제들을 주기적으로 몸속에 투여해 가면서. 여전히 식욕은 바닥이고 아주 소량의 섭식을 하면서 버티는 중이다. 기아 난민이 다름없을 정도로 앙상해져 가는 아이의 몸을 지켜보면서 나는 수차례 참담한 감정에 휩싸이고 만다.



신을 여전히 원망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원망한다. 여전히 과거의 싱그러웠던 정음이가 여전히 동네 곳곳에서 튀어나와 나를 괴롭힌다. 예전의 너를 그리워하는 나를 질책한다. 그때의 너도 나의 너였고, 지금의 너도 나의 너임을 알면서도. 



수치가 안정권에 들어온 어제 그리고 오늘. 이 모든 감정을 끌어안고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우리이기에 나는 또한 매 순간 궁리한다. 오늘은 너에게 어떤 걸 먹여야 좀 더 먹을 수 있을까. 밥 한 숟갈에서 두 숟갈을 어떻게 넘길 수 있게 만들지. 어떻게 하면 항구토제에 의지하지 않은 채 토하지 않고 먹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시 정말 마음 편하게 웃으며 지낼 수 있는지......... 여전히 박살 났다고 생각되는 인생 앞에서. 나는 언제쯤 눈물을 그칠 수 있는지.



온 세상이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기쁨의 벅차오름과 떠들썩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때. 나는 병원에서 조용히 잠깐 기뻤고 다시 내내 슬펐다... 슬픔은 가실 줄 모른다. 여전히 나는 홀로 꾸역꾸역 아이들과 홀로 걸어가고 있는 고독한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혼자...걷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고 그 생각은 나를 더 어떤 음습한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다. 그럼에도 입술을 꾹 깨물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다름아닌 두 아이 덕분일테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건강한 아이와, 이제 많이 아파진 아이...우리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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