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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Sep 11. 2023

일인가구 폭발하는 이유

비자발적 노동의 거부와 프라이버시 확보

일은 아주 가끔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하기 싫다. (내가 해봐서 안다... 음..) 타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은 그 자체로 하기 싫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뒷바라지라고 하더라도 반복되는 노동은 지겹고 힘들게 마련이다. 참고 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다.


배우자에 대한 뒷바라지, 자녀에 대한 헌신, 부모에 대한 효행, 친구의 이런저런 부탁 등 크고 작은 이런 일은 가끔은 흔쾌히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에너지를 짜내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다. 하기 싫고 짜증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이다.


인간이 노동을 하고 뒷바라지를 하고 애를 쓰지만 대가를 바라지도, 불평을 하지도 않는 유일한 대상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배고파서 밥을 차려 먹거나, 더러워진 옷을 빨래하거나 자신의 방을 청소하면서 불평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자신을 위한 자발적 노동만이 유일하게 인간의 불평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우리나라 일인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작년에 40%가 넘어섰다. 늦은 결혼에 따른 20-30대의 독립 일인가구가 늘고, 황혼이혼에 따른 50-60대의 일인가구, 배우자 사망에 따라 생겨나는 노년층 일인가구 증가로 전체 일인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 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도 늦게 결혼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과거엔 늦게 결혼하더라도 결혼할 때까지 대부분 부모와 같이 살았다. 배우자 사망으로 홀로 된 부모는 보통 자녀들이 모시고 함께 살았다. 다시 말해 예전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일인가구로 직행하지 않았다.  


그럼 일인가구가 폭발하는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지금은 뭐가 달라진 걸까?


혼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모든 연령층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두 가지가 숨어있는 원인이 아닐까. 비자발적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프라이버시 확보.



첫째 혼자 살면 일차적으로는 동거인으로부터의 구속과 의무적인 노동에서 일차적으로 해방될 수 있다. 부모의 잔소리, 배우자의 간섭 등 모든 비자발적인 형태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신만 챙기면 되는 홀가분함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을 위한 노동을 행할 때만 불만이 생기지 않는 동물이다.


둘째는 프라이버시와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라는 장점이다. 전통적인 한국사회는 프라이버시가 거의 없는 공동체 속의 삶이었다. 누구 집에 무슨 사연이 있고 어떤 일이 생겼고 그 집 숟가락이 몇 개 인지도 다 아는 걸, 당연시했다. 오지랖 넓게 간섭하고 끼어들어 훈수를 두는 게, 정(情)이고 이웃이었다. 가족과 친구는 더욱 심했다. 사적인 공간이 거의 없는, 밀착관계를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가족은 모든 사생활을 미주알고주알 공유하고, 찐친은 비밀이 없어야 했다. 이런 관계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피로도가 상당히 높은 관계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관계로 악화되기도 쉽다. 피곤하고 힘든 이런 관계를 탈출하는 방법이 일인가구로의 독립이다. 일인가구로 독립하면 상당히 비밀보장이 되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원하는 시간에 동성이든 이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같이 보낼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되는 건, 덤이다.




배우자나 자녀는 사랑하지만 관리(?)의 부담이 크다. 애정만큼 손이 많이 가야 한다. 개나 고양이는 부담스럽지 않다. 손이 좀 가긴 하지만 여전히 사랑스럽다. 청소도 못하고 밥도 못하고 심지어 말도 못 하는데 왜 그럴까? 개나 고양이에겐 우리가 요구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는 일없이 빈둥대기만 해도 사랑스럽다. 남편이나 자식이 실업자로 집에서 빈둥대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이고 잔소리가 저절로.... 그럼 실업자 남편이나 자식은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현대사회는 점점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면서 가족, 친구, 사회적 관계의 연대와 유대는 약화되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느슨한 연대와 유대관계. 가족, 친구 모두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관계로 바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외, 고독, 외로움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항상 하나의 문제를 풀면 곧이어 다른 문제가 거기서 생겨나는 법



초코파이의 광고캠페인을 정(情)이란 콘셉트로 1989년에 대대적으로 했었다. 한국적 정서를 다시 소환하는 복고풍 광고였고 이 광고는 당시 매우 성공적이었다. 만약 이 광고를 2023년에 한다면 지금도 잘 먹힐까? 글쎄.



세상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해간다. 40%가 넘어가는 일인가구의 폭발적인 성장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타인을 위한 노동, 타인을 위한 희생과 헌신보다는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과 의지의 표현이다. 내 삶에 간섭하는 무례한 오지랖을 그게 부모나 배우자라 하더라도 더 이상 참고 살지 않겠다는 커다란 사회적 흐름을 대변한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고, 자신을 위한 노동을 할 때 유일하게 불만을 갖지 않는 존재이다. 그래서 일인가구가 심리적으로는 편하게 마련이다. 거의 차이가 없는 노동을 해서 밥을 차리더라도 남편과 자신의 밥을 같이 차리는 경우는 뒷바라지가 되고 자신의 밥만 차리면 힘들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는 게 인간이다. 그게 맘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는 사회가 되었다. 일인가구는 조만간 50%를 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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