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돌 Sep 09. 2023

노동의 절대강도와 상대강도

절대강도는 낮아지지만 상대강도는 낮아지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해보면 안다. 대부분 힘들고 어렵고 고되다고 불평이다. 하지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고참선배들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설같은 이야기들에 어떻게 그럴 수 있나하고 입이 벌어진다.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했다.

주말 출근이 당연한 시절도 있었다. 놀토 (한때는 토요일이 격주 휴무였었다!!!)가 처음 생겼을 시절 보고서를 손으로 써서 올리고, 팩스로 해외지사와 문서를 주고 받았다. 전화통화는 시차를 감안해서 밤까지 대기하다 오밤중에 해야 했다

사무실 자리마다 재털이가 있었고, 회의 중에 육두문자와 함께 재털이가 날라 다니곤...

여직원들은 유니폼을 입고, 남자직원들은 넥타이에 양복, 현장직들은 작업복을 입고 근무했다. 인격모독과 쌍욕이 일상다반사였고, 성희롱같은 언사도 거침(?)이 없었다.


그 시절 노동강도와 상사일방적인 지시는 상상을 초월했다. 임원방에 들어가서 엄청나게 깨진 다음 혼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문으로 나간다는 것이 캐비넷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는 김과장의 전설도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절대적 노동의 양과 강도는 분명히 줄었다. 사무자동화, IT시스템과 협업툴을 통해서 그야말로 책상위에 앉아서 컴퓨터로 대부분의 업무를 보고 처리한다. 물론 회의라는 부담가는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럼 2023년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노동의 강도가 훨씬 약해졌다고 느낄까? 할만하다고 느낄까?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다.(80년대 유행어인데....쩝)


노동의 강도는 상대적이다. 절대강도는 줄어 들었을지 몰라도 상대강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르다. 절대적인 노동량과 노동강도로 보면 80년대의 노동강도는 60년대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다. 60년대는 일제시대보다, 일제시대는 조선시대보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보다. 더 올라가 보면 신석기시대가 구석기시대보다 노동강도가 덜 했을 것이다. 아마 구석기시대 원시인류의 노동강도가 가장 혹독하지 않았을까?


방위와 특전사의 훈련강도는 차이가 있다. 그럼 방위는 편하다고 느낄까? 아니다. 특전사 훈련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다른 방위와 비교하기 때문에 실제 특전사보다 훨씬 낮은 훈련을 받더라도 다른 방위보다 조금 더 훈련을 받으면 힘들고 고되다고 느끼는 게, 인간이다.


인류는 산업혁명이래로 과학과 공학, 기술과 컴퓨터로 생산자동화, 사무자동화를 진전시켜 왔다. 절대적인 노동강도를 낮춰왔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미래로 전개하면? 아무리 AI가 탑재된 세탁기, 냉장고, 전자렌지와 가정의 서빙로봇이 요리와 가사일을 하더라도 주부는 여전히 힘들 것이다. 인공지능과 고도로 발달된 IT시스템과 로봇이 업무의 절반 아니 90%를 자동화하더라도 근무하는 직원들은 고되고 힘들다고 툴툴댈 것이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조선시대 노비들이 지금의 가사노동, 사무직 노동, 현장 작업자들의 노동의 강도와 양을 보면 뭐라고 할까?


인간의 비교 감각이 꺼지는 일은 없다. 상대적인 감각으로 고됨을 따지기 때문에 쉽고 편한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남이 하면 쉽고 편한 일이고, 내가 하면 고되고 힘든 일이라고 느끼기 마련이다. 가만히 쉬라고 해도 노동으로 하면 쉬는 것도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조금 길게 한 이유는 이제 엄살 좀 그만 떠는 시대가 오기를,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힘들어하고 어려워하고 고통스러워야 일 좀 한다고 생각한다. 윗사람부터 아랫사람까지 모두. 심지어 본인도. 그래야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고 여긴다. 불행에 중독된 사회이다. 불행, 고난, 고통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우울한 사회다. 행복을 숨겨야 하는 사회, 즐거워할 땐 몰래 숨어야 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이전 15화 일인가구 폭발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