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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Jul 31. 2023

경력신입을 요구하는 사회

노동시장의 변화 - 반발하는 MZ세대

삼성그룹을 제외하고 대졸 신입사원 공채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조직의 구성원으로 육성하던 전략을 대부분의 기업들이 포기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신입사원들의 이직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2~3년이 지나면 대개 입사한 신입사원의 절반도 남아 있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년에 걸쳐 비용이 들어 가지만 결과적으로는 헛돈 쓴 꼴이 되는 셈이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에서는 가성비 좋지 않은 신입의 육성보다는 당장 실무에 써먹을 수 있는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애꿎은 대졸 취업준비생만 입사의 문이 더 좁아진 셈이다. 인턴이든 중소기업이든 뭐라도 실무 경력을 갖춰야 한다. 취업의 필수조건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일 년 또는 이년을 어딘가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업종의 원하는 기업에 재취업하는 경력신입이 흔해졌다.


신입에게 조차 경력을 요구하는 기업 채용시장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기업은 직원들과 성장과 고락을 함께하는 공동운명체라는 80년대식 조직문화는 완전히 사라지고 이젠 갑을의 근로계약서에 준해서 약속한 대가를 받고 약속한 노동을 제공하는 계약관계일 뿐이다.


얼마 전 노사정 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9860원으로 확정 지었다. 이제 편의점 알바를 해도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손에 쥘 수 있는 세상이 온 셈이다. 소상공인의 부담은 커졌지만 우리 사회 단순 노동의 가치는 거의 시간당 만원인 셈이다. 잘 나가는 편의점을 제외하고 어려운 편의점에서는 알바보다도 돈을 못 가져가는 편의점 점주가 많아 질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몸만 움직여도 굶어 죽지는 않는 사회로 변모했다. 게다가 그런 노동을 제공할 젊은이들이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에 인건비는 앞으로도 지속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로봇이나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하려고 기를 쓰겠지만 기술발전의 속도나 우리 사회의 수용성으로 볼 때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이다.


유투버, 블로거, 배민 기사, 쿠팡맨, 편의점 등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MZ세대는 본인이 선택한 일을 본인이 하고 싶은 시간에 일하고 싶어 한다. 사회적인 인정과 재정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는 대신 출근과 퇴근 사이 모든 시간을 고스란히 회사에 묶여 있어야 하는 월급쟁이의 삶을 그다지 동경하지 않는다. 여유시간을 확보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새로운 세대로 노동시장의 주도권이 점차 넘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바꾸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잘 벌면 금상첨화이다. 


삼성전자에서 아마존으로 그리고 이젠 여행 블로거로, 이런 삶의 변신 스토리에 열광한다. 그런 경험을 책으로 낸 다음 강연자로, 유투버로 삶을 업그레이드한다.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독특한 취향의 커퍼전문점을 내는 젊은이가 더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왔다.


하기 싫은 일 - 상사의 지시를 받아서 해야 하는 지겹고 따분한 일, 생산현장이나 영업현장에서 부당한 갑질을 감내해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 등 - 을 하는 노동의 공급은 항시 부족하게 될 것이고 이 분야의 시간당 급여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이런 일도 감내할 고령 노동자로 채워지던지.




노동시장의 변화는 노동시장 참가자들의 노동에 대한 시각차이에서도 극명하다. 이제 노동시장의 갑을이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노사 간의 대립과 시각차이가 아니라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안전망이 조금씩 확충되어서 더 이상 노동시장에서 발버둥치지 않아도 먹고는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좋은 집 사고 좋은 차 사서 호화롭게 살 순 없겠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노동시장은 빠르게 변해갈 것이다. 노동자 사이에서도 고소득계층과 저소득계층의 갭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중간 관리자와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화이트컬러 노동자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인공지능 로봇이 블루컬러의 노동을 지금보다 더 빠르게 대체해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여전히 인간 노동의 수요는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AI나 로봇으로 대체 못하는 인간이 해야만 하는 인간적 노동은 여전하고, 그런 노동을 하고 싶어 하는 또는 잘할 수 있는 젊은이는 더 극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돈줘도 그런 일하기 싫다는 젊은 세대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결국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인간적 노동 - 그것이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이 점점 비싸지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미 사회적으로 상당히 축적된 자본은 오히려 저렴해질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살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트에서 파는 고기, 채소, 과일 같은 식자재는 한국보다 저렴하지만 세프와 웨이트리스의 노동, 잘 꾸며진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에서 제공되는 즉 서비스화된 요리는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우리나라도 이제 노동의 가격이 비싸질 때가 왔고 거기에 맞춰서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참고로 2023년 7월 31일에 위의 글을 포스팅하였습니다. 제가 쓴 글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아래에 링크해 놓겠습니다.


[2023년 8월1일자 매경 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166772?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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