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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Aug 07. 2023

상대방 입장, 이해 불가?

자기 위주 편향 (Self-Serving Bias)의 문제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입장과 상황을 헤아려서 그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내 결론은 타인의 입장에 대해서 공감이나 이해는 어느 선까진 가능하겠지만 상대방 입장을 완전히 헤아린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우린 특정 시간과 특정 공간에 붙들려 있는 물리적 실체가 있는 존재이다. 내가 제일 많이 갖고 있는 정보는 나의 정보일 수밖에 없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한 아주 상세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갖고 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하는지, 땡땡이를 치는지,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놀고 있는 건 아닌지 등 뭘 어쩌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매우 빈약하다. 이런 비어 있는 정보들은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더듬어서 내 생각대로 추론하고 꿰어 맞추게 된다. 효율적으로 정보처리를 할 수 밖에 없는 뇌의 불가피한 작동방식이기도 하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전업주부인 40대 중반 김여사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이 학원에 보내주고 오는 길에 동태를 사서 남편이 좋아하는 동태탕을 끓이기로 했다. 요즘 뭔지 모르겠지만 남편의 신경이 날카로워 보여 동태탕을 먹으면서 슬며시 물어볼 작정이다. 정성껏 동태를 손질하고 파와 무, 고추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서 맛있게 준비한다. 간을 보니, 시원하고 칼칼하니 딱 남편이 좋아할 맛이다. 소주도 한 병 준비할까?


전업주부 김 씨의 남편인 이 부장은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달 전에 새로 부임한 직속상사인 박상무가 계속 면박을 주면서 무시하는 것 같다. 박상무는 이 부장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 국에서 MBA를 하고 컨설팅회사를 다니다 임원으로 영입되었다. 지방대를 나와서 25년 이 회사만 열심히 다닌 이 부장은 불편하거나 어려운 내색 없이 깍듯이 대하였으나 사사건건 구닥다리라던지 요즘 누가 그런 식으로 프로모션 하냐고 지적질을 당한다.


박상무가  예고없이 마케팅본부 산하 팀장들 회식을 소집했다. 예고 없는 회식자리 통보에도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자리에서 이 부장은 취한 척하면서 박상무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그의 박식함에 대한 아부성 발언을 이어갔다. 박상무가 슬며시 웃는 모습을 보인다. 이 부장은 진짜로 취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셔 버렸다. 회식은 끝났지만, 이 부장은 옆 팀 최부장을 붙잡고 둘만의 2차를 이어 간다. 맘에 없는 아부하느라 속이 헛헛하다.


이 부장은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귀가했다. 아내 김 씨는 이미 식어버린 동태탕을 먹을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이 부장은 옷을 벗으면서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기도 모르게 "X발"하고 욕을 했다. 아내 김 씨는 자기가 준비한 동태탕이 못내 서운했지만 그것보다 고주망태로 와서는 욕까지 해대는 이 부장이 야속했다.


"아니, 애들도 있는데. 왜 욕을 하고 그래요"


"왜. 내가 내 집에서 욕도 못하나. 이런 X발."

 

결국 부부는 언성을 높이다 부부싸움을 하고는 아내는 안방에서, 남편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부부싸움의 여진으로 냉랭한 관계가 이어졌다.




자, 이 이야기에서 잘못한 사람이 있는가? 사실 크게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내도, 남편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애들 뒤치다꺼리와 정성을 다한 동태탕을 몰라 주는 남편이 서운하고 남편은 힘든 회사 상황을 모르고 술 먹은 탓만 하는 아내가 짜증 날 뿐이다.


자신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편한 대로 대략적인 추측과 가설로 정보의 빈 공간을 메워버린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자기 위주 편향 (Self Serving Bias)이 일어난다.


우리가 내리는 많은 판단 오류가 사실은 여기 기인한다. 자신에 대한 정보는 많고 타인의 정보는 별로 없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내리기 십상이다.


이 문제를 벗어나는 방법은 정보의 원활한 소통이다. 서로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를 할 수 있다. 되도록 많이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것. 그래야 그나마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오류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내가 제일 힘들고 고생한다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내가 제일 잘 안다. 나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갖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인스타를 보면 다른 이들은 모두가 여행하고 맛집 가고 즐겁게 살아간다. 열등감, 분노, 복수심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페북, 유튜브, 인스타의 치장된 행복이 사실은 꾸며진 허상이고 그들도 알고 보면 다른 여러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알면 그렇게 큰 분노와 복수심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정보가 부족한 타인과 세상에 대해서 팩트 정보를 모아야 한다. 내 상상으로 정보의 빈 공간을 내 맘대로 메워서는 안 된다. 그래야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그나마 조금 약화시킬 수 있다.


분노조절 장애도 정보 비대칭의 트랩에 갇힌 개인들이 사회에 토해내는 토사물이고, 행동에 옮긴 것이 '묻지마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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