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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석 Jul 13. 2019

유숙

오베르트라운에서, 어머니께

 호숫가에 앉아 엄마의 하루를 생각해. 글과 사진을 핑계로 내가 떠나 있는 사이, 현실의 시간을 엄마는 홀로 버티고 있겠지. 이곳의 한낮과 그곳의 밤이 닿아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아. 오늘은 언제쯤 집을 나섰을까. 새벽에, 혹은 푸른 밤에 걸음을 재촉했을 그 고됨이 종종 마음속에 파문을 그려. 여행을 떠나면서 어떻게 인사했는지 기억이 안 나. 조금은 든든한 기분이 들 때까지 한 번 더 안아줄걸.        


 오늘 내가 묵을 곳은 호숫가의 작은 마을이야. 푸른 빛이 도는 큰 산 아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땅 위에 물이 고이고, 사람이 고이듯 – 조용한 날엔 생각도, 감정도, 아래로, 더 아래로 고여. 이 여행은 언제쯤 끝날까.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어디쯤을 걷고 있는 걸까. 함께 걷던 엄마의 보폭이 점점 느려질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져. 엄마랑 아프지 않고, 적당히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워.      


 오랜만에 이름을 적어 보네. 유숙. 엄마의 이름은 어느 시의 제목처럼 들려. 이미 자랐으면서도 생각은 어린, 나를 품어주는 말 같아. 익숙하고도 낯선 두 글자에 여러 감정이 들어. 대부분은 미안함이야. 그러고도 남은 마음은 엄마에 대한 걱정이고. 과연 나는 당신의 자랑일지, 아픈 질문이 고개를 들었어. 호수 건너편 마을에서 바람이 불어와. 엄마는 잠들었나봐. 잠시 걷고 올게.

      


그녀에게 부치는 기도     


 촛불에도 나름의 온기가 있다. 사람들이 밝혀 놓은 이 작은 불씨에 몸이 녹는다. 내가 큰 걱정을 안겨줄 때마다 어머니는 성당에 들러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올리곤 했다. 내가 없는 새 그녀는 또 고개를 숙인 채 막 꺼낸 심지 위로 불을 옮기고 있을지 모르겠다.      



 맞잡은 손에 머리를 대고 나지막이 소망을 읊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공간의 고요함을 즐기는 이들은 알지 못한다. 조용할수록 더 크고 간절해지는 기도의 울림을. 잘츠부르크의 작은 성당에서, 수백 개의 걱정과 위로, 결심, 소망, 도전, 좌절, 그리고 원망, 혹은 애정이 촛농을 밀어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평안을 기도하며 나도 불을 붙인다. 가장 큰 목소리로, 조용하게.     



 기차 밖, 손을 흔드는 모자(母子)가 보였다. 여자는 아이의 키에 맞추어 몸을 숙였다. 두 사람이 창문을 향해 던진 키스를 받는 이는 누구였을까. 아이는 여자의 인사법을 그대로 배운다. 장난스런 손짓과 함께 슬픈 눈빛이 창문에 비쳤다. 어머니는 좋은 사람이든 미운 사람이든 이별할 땐 다 아픈 법이라고 했다. 가볍다 생각한 인연이 떠날 때에도 조용히 울던 그녀에게, 나도 손 흔드는 법을 배웠다. 그 손엔 지나온 인연만큼 남은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을 따라 간직한 모든 인연은 축복이었다. 어머니의 단어와 말로 세상을 품어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멈춰있는 호수도 기찻길을 따라 달리는 것만 같다. 차창을 스치는 곧은 침엽수, 그 사이의 숲길이 기억 속에도 깊은 가로줄을 새겼다. 자전거와 지도를 빌려, 다리에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있는 힘껏 달렸다. 나태함과 무력감으로 몸이 잠겨오는 날, 나를 일어서게 하고 달리도록 힘을 더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나의 행복, 꿈, 인연과 여행은 어쩌면 모두 빚진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하루를 참고, 고마움으로 문을 나서고, 그녀의 말 한마디가 눈물을 억눌렀다. 그녀도 마찬가지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호숫가를 돌다 만난 영국인 부부는 이곳에 터를 잡은 지 20년이 되어 간단다. 유난히 하루가 짧은 마을이라고 했다. 시간을 따라 마을의 색감이 변했다. 그녀와 함께 보지 못하는 이 풍경이,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는 하루가 아까웠다. 부부와 함께 바라보는 산의 얼굴 위로 반대편 능선의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짙푸른 어스름에 나무가 한 줄씩 가라앉았다. 초저녁 물기에 젖은 풀냄새가 풍긴다. 일직선으로 자란 나무에 손을 얹고 하루를 돌아본다. 다음에 떠날 땐 그녀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숙소로 돌아오는 푸른 도로 위엔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여자의 하루     


 밤에 집을 나서는 날이면 마음까지 싸늘해진다. 아무런 소망도, 결말조차 없는 것처럼 캄캄한 날이 있다. 그런 날에도 화면 속에 저장된 아들의 사진을 보면 신기하게 힘이 났다. 종종 보내주는 여행지의 사진을 보며 마치 그녀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상상에 잠겼다. 호숫가의 예쁜 마을, 옆에 세워진 자전거, 그리고 그의 웃는 모습 - 사진 속 그의 얼굴을 보며 오늘도 잘 있구나,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김유숙. 밤을 가로질러 새벽까지 칠해진 네모난 시간표에 그녀의 이름이 길게 적혀있다. 이곳의 밤이 그의 낮과 접해 있다는 사실이 - 그녀의 새벽이 그의 잠자리에 이어져 있다는 일상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쌓인 생각과 일을 하나씩 넘어뜨리다보면 새벽이 온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녀는 성당을 찾는다. 양초 하나를 집어 들고 가슴팍에서 헌금을 꺼낸다. 요즘 들어 조급해진 그의 마음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저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소박하고도 깊은 기도를 올린다.



 그가 보내온 글과 사진을 보며 이불을 가슴까지 올린다. 이름 모를 나라의 성당에도 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나보다.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드는 모자를 보며 함께 손을 흔들었을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대부분 눈여겨보지 않을 좁은 숲길까지 깊이 걷는 그의 눈길이 사랑스러웠다. 그의 글과 사진에는 그녀가 살아온 시간과 단어들이 숨 쉬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과 길은 그녀의 꿈이고, 자랑이다. 그렇게 믿는다.      



 해가 지는 호숫가의 사진을 보던 참 커튼 밖 햇살이 어른거린다. 계절이 바뀌는 바람이 불고 커튼이 파도처럼 들썩였다. 그가 아직 그녀의 무릎에 매달릴 나이, 함께 바닷가에 놀러간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그녀의 마음도 어렸다. 처음 보는 세상과 사람을 만나면 설렜다. 한밤을 파고든 파도소리를 간직하며 낭만과 멋을 가꿨다. 누구 못지않게 모험을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찾아온 이후의 삶은 더 큰 감동이었다. 떠나기 어려운 현실을 살아내는 중에도 그녀는 늘 그의 여정을 함께했다. 모자 간의 사랑은, 그리고 여행은 사실 한 가지가 아니다. 서로에게 보내는 미안함과 고마움, 걱정, 혹은 그 속의 갈등까지. 모두 얽히는 시간이 곧 사랑임을 그는 배우고 있을는지. 지나보니 매순간이 여행이었다. 다 자란 듯하면서도 마음은 여린 아이. 그의 메시지에 꿈결에라도 답을 보낸다.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하자. 나의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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