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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수전이 터졌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by 컴쟁이

아침은 분명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작되었는데, 하루라는 건 언제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는 법인가 보다. 수전이 터진 순간, 정말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처럼 물이 ‘쏴아—’ 하고 튀어 올랐다. 처음엔 현실감이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끝에 차오르는 물기 때문에 결국 정신이 번쩍 들었다.


냉장고 아래도 푹 젖고, 에어컨 밑바닥에서도 물이 흘러내려와 거실이 찰박찰박. 한계선을 넘기 직전의 작은 재난이었다. “이걸 나 혼자 해결하라고요…?” 하고 속으로 외쳤지만, 집엔 나밖에 없었다. 슉 슉 회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 믿기지 않게도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책임감처럼 다가왔다.


일단 물줄기부터 멈추라는 본능적인 마음으로 밸브를 찾아 잠갔다. 얼굴로 물을 맞아가며 정신없이 돌리는데, 이게 맞는 행동인지도 모르겠고, 이 밸브가 맞는 밸브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는 절박함만 있었다. 어찌저찌 찾은 것 같다.


잠시 고요해진 순간, 그제야 숨이 조금 쉬어졌다. 그다음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인터넷으로 업체를 찾아 전화를 거는데, 오전 아홉 시도 안 된 이른 시간. “받아주실까?” 하는 걱정이 마음을 훑고 지나갔지만, 거실은 이미 작은 호수처럼 변한 상태였다. 방법이 없었다.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는 동안, 이건 아무리 봐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스케일이 아니었다.


업체에서 ‘30분 정도면 도착하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30분 동안 수건으로 닦고 짜고, 다시 닦고 또 짜며 버티는데 순간 미묘한 패배감과 단단한 생존력이 오묘하게 섞였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하지만 결국 닦아도 닦아도 끝이 안 나는 물을 보면서 확실해졌다. “역시 이건 전문가의 영역이다…”


20만 원.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었지만, 근래 소비한 모든 돈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20만 원이었다. 흥건한 바닥의 물기를 석션하고 (이런 기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완전히 고장 난 밸브와 수전을 갈아 끼우고 나니, 마치 집 전체가 다시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턱끝에 걸려 있던 긴장이 툭 하고 떨어졌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나는 얼렁 뚱땅이지만 최선을 다해 해결했다. 그럼 충분하다.


오늘의 다행을 꼽아보자면, 휴무였던 것. 집에 있었던 것. 자고 있지 않았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기하거나 미루지 않고 바로 외부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나 혼자 다 하겠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도움을 받는 데 주저하지 않은 나에게 작은 박수를 보낸다.

사고수습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 다행이 많은 하루였다.

그리고 마음 한쪽에 조용히 내려앉는 생각 하나.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

잘 해결했다.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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