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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법

호기심을 잃지 말자

by 컴쟁이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법을 큰 주제로 많은 글감을 찾아봤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연대하고, 극복하고, 용기를 얻는구나. 나는 이런 식으로 이겨내고 긍정하고 스스로 힘을 북돋을 수 있을까? 이들 말고 나는 어떨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타인의 불행과 행복을 감히 내가 재단할 수 있는가? 나는 그 타인의 불행과 행복을 절대 죽었다 깨어나도 동일하게 느낄 수 없는데? 그리고 그 행복의 열쇠를 몇몇 보이는 매체에서 노출되는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는 것인가? 가족의 사랑으로 이겨냈어요. 스스로를 사랑하니 비로소 자존감이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치유되었어요 등 진부하고 고루하다. 물론 그게 불변의 진실이어서 모두 그렇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본 결과 나의 답은 아니다였다. 그래서 아주 개인적인 나의 “불행”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나는 나의 불행을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아니까, 불행의 경중과는 무관하게 크고 작은 굴곡들이 분명 내 삶에도 있었으니 그를 지나온 과정들에 대해 솔직하게 공유할 것이다. 나의 가장 불행했던 시간은 언제였는가? 기억은 나는지, 그 불행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지금은 행복한가? 수필을 쓰랬더니 혼자 골똘한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한참이 지났다.

생각해 보면 불행이 다가오면 숨죽여 바짝 엎드려 견뎌냈던 것 같다. 지나가라, 제발 지나가라, 시간도 감정도 모두 다 지나가라 속으로 되뇌었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덮어두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여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상상하면 마치 그때가 지금같이 생생해 몸서리가 쳐진다. 절대로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다. 그럼 잊은 게 아니려나? 질문의 꼬리를 물다가 불행에 대해 나름대로 분류를 해보았다.

1. 큰 불행 / 2. 작은 불행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며 큰 불행의 예시로는 대입실패, 이별, 불합격, 난치병 등이 있고 작은 불행의 예시로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짐, 소매치기당함, 뒤로 넘어져서 코가 깨짐 등이 있다. 유치해 보여도 분류를 한 이유가 있다. 29년 나로 살면서 작은 불행은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일련의 매뉴얼이다. 첫 번째로는 샤워를 한다. 우스갯소리로 우울은 수용성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무척이나 동감한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 비누거품으로 온몸을 구석구석 씻어낸 뒤에 뽀송하게 말려준다. 노곤해진 몸으로 어느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의 마음을 대입해 오늘의 재수 없음을 털어내 본다. 그 후로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지용성 우울일지도 모르니 고기반찬으로 밥을 든든하게 먹어준다. 물도 많이 마신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으니 우울도 말끔하게 밀어내주겠지라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하며 벌컥벌컥 들이켠다. 그 뒤에는 물과 고기로 빵빵해진 배와 함께 운동화 끈을 고쳐 맨뒤에 지도 없이도 거뜬하게 갈 수 있는 잘 아는 동네를 2만 보쯤 넉넉하게 걷는다. 이는 머리가 복잡하면 몸을 힘들게 하라는 아빠의 가르침이다. 실컷 걷는다. 그리고 발이 조금 아파오기 시작하면 근처 떡볶이집, 붕어빵집, 타코야키집을 탐색한다. 꼬깃꼬깃한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수고롭지만 현금을 챙겨 나와 마침내 구매까지 성공한다. 이 과정은 왜인지 몰라도 엄청난 뿌듯함을 동반한다. 작은 성취의 즐거움일까? 오후 11시가 되기 전에는 집에 돌아와야 한다. 이유는 오후 11시에 업로드되는 네이버 웹툰을 보며 아까 사 온 음식과 함께 작은 불행을 꼭꼭 씹어 소화시키기 위함이다. 작은 불행을 대하는 법 참 쉽죠?

대부분의 사소한 불행은 스스로의 취향을 알아차려주고, 행하게끔 충분한 자유시간을 주면 무탈하게 지나간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옆에 꾸역꾸역 찐득하게 붙어있는 큰 불행의 경우라면 말이 달라진다. 무력감이 든다. 패배감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일련의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는 위의 과정을 다 끝내도 가슴 한편이 먹먹하고 찌뿌둥하다. 샤워, 산책, 웹툰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며 무너지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불면이 지속된다. 그럴 때마다 문득 나는 뇌를 잠깐 빼놓는 상상을 한다. 뇌를 사용하려고만 하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니 강제종료를 시킨 뒤 애쓰지 않고, 최소한의 활동으로 하루하루를 채운다. 짧으면 1주일, 길면 1달, 최대 길게는 반년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여태보다 더 큰 불행이 나를 덮쳐오면 몇 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을 깨어준 것은 늘 관심으로 시작했다. 저 사람 내 스타일이다라는 이성적인 호기심부터 우와 이런 게 있었어?라는 일상의 발견, 나도 여행 가고 싶다는 생기 있는 의욕, 아 거기? 진짜 맛있다는데 먹고 싶다는 본능적인 식욕, 그 작가 신간 나왔다고? 대박, 와~ 웹툰 밀린 게 이만큼이나 있다고? 쿠키를 안 써도 하루 종일 볼 수 있네. 감탄 등 이런 감정이 등다면 신호다. 이제 조금 살만해지겠구나, 바닥 찍고 올라가는구나. 행복이라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시점이 드디어 온다. 반드시 기다리면 왔다. 맞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큰 불행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뻔한 말이다. 고루하고 진부하지만 큰 불행에 맞서는 방법은 시간에 기대는 것 말고는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최인철 작가의 저서인 굿라이프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상태 중 하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상태다. 특별히 그 대상이 사람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이런 말도 있다. 행복한 삶이란 가슴에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는 관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마지막으로 밑줄 그은 문장을 소개한다. 행복이 고통의 완벽한 부재일 것이라는 생각은 완벽하게 틀린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완벽한 부부생활이란 부부싸움을 한 번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나의 행복에 대한 해석을 곁들이자면 아래와 같다. 삶은 누구에게나 달 때가 있고 쓸 때가 있다. 오늘은 맑다가도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 기분은 날씨와 같고 감정은 파도랑 비슷하다. 불행과 행복도 마찬가지다. 불행의 몫이 더 큰 날이 있고 행복의 파이가 훨씬 우위를 점하는 하루도 있다. 다들 자신만의 안온한 일상을 지키는, 불행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씻고 먹고 걷는 거라면 타인에게는 더 간편한 매뉴얼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제발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나도 행복 100%의 상태가 되는 법은 모르겠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지금 여기 있지 않겠지. 어쩌면 최인철 교수님이 말하신 대로 100% 행복은 허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이 고개를 내밀 때에는 촉각을 곤두세워 관심 있는 것을 재빨리 찾자. 스스로를 위해서 밖으로 나와 흥밋거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탐색하자. 최선을 다해 내가 아는 방법으로 작은 불행이 큰 불행이 되지 않게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면 된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모르겠지만 불행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나의 얼렁뚱땅 결론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혹시나 마음이 아주 많이 아픈 상태라면 궁여지책이나마 위에 언급한 소박한 매뉴얼이라도 따라 해 보는 것 어떨까? 어찌 되었든 그 과정에서 색다른 감정이 움튼다면 그게 신호다. 내가 아는 큰 불행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깃든 신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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