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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울림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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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서기 Sep 14. 2020

어쨌든 하루하루

특유의 뉘앙스

특유의 뉘앙스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묘하게 자신만의 컬러감을 내비치는 사람. 그들은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거나, 어려운 말들을 던지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말의 조합이 남들과 다르기도 하고, 행동 패턴이 예상을 어긋나기도 한다. 이런 친구들을 나는 많이 보았는데, 이는 내가 예술고등학교예술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그들에게 나도 그런 존재였는지는 모르겠다) '뉘앙스'라는 단어로 그들과 마주하다 보니 다가가기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자신만의 뉘앙스가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뉘앙스는 종종 작가들한테도 나타난다. 좀 낯설다거나 익숙하지 않은 독특한 작품을 만나면 '뉘앙스가 있는 작가네'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소개할 작품들을 쓴 작가들은 대개가 자신만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내가 오늘 소개할 김홍 작가의  <어쨌든 하루하루>는 작품의 뉘앙스처럼 말이다. 

(작가의 뉘앙스가 아닌, 작품의 뉘앙스라고 한 이유는 사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홍 작가는 내가 이번에 소개할 <어쨌든 하루하루>라는 작품으로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대체로 평들은 '엉뚱하고 기발하지만 재미있고 깊이가 있다'라는 식이다. 얼마 전 발간한 그의 첫 장편소설인 <스모킹 오레오>라는 작품은 '서울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설정 아래 쓰였다고 하니 나중에 꼭 읽어 볼 작품 목록에 넣어 놓았다. 그리고 신인 작가의 경우 추천사를 누가 썼는지를 보면 어떤 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홍 작가의 추천사는 이기호 작가가 쓴 것으로 되어 있다. 팝콘처럼 내 안에서 빵빵 터지는 작품을 쓰는 이기호 작가가 추천했다니, <어쨌든 하루하루>를 읽는다면 이 작가를 이기호 작가가 추천했음이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2020.09.07. 발간된 김홍 작가의 첫 장편소설


<어쨌든 하루하루>라는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달 탐사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터트리는 이혼남의 일상' 정도가 된다. 주인공은 정리해고이혼을 한꺼번에 겪고 고향에 돌아온다. 그리고 '시리어스 리'라는 술집에서 야구경기를 보며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처로부터 택배가 오는데, 그 안에는 묘하게 생긴 송신기가 들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우연히 야구 경기를 보다가 송신기를 내리치게 되고 그때 달에서 번쩍하는 불빛을 보게 된다. 달 탐사선을 만들던 전처가 달에 보낸 수많은 벼룩(= 달 탐사선의 이름)폭파시키는 장치를 준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주인공은 친구들과 함께 연패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는 지역 연고 야구팀이 유효 안타를 맞을 때마다 달 탐사선을 즐겁게 폭파하며 작품이 끝난다. 이렇게 작품의 줄거리만 들어서는 대체 무슨 작품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된다면, 그리고 이 작품의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면 나처럼 김홍 작가에 대해 궁금해질 것이고, 그의 장편 소설을 독서 리스트에 넣게 될 것이다. 


벼룩은 우리 일 수도 있고, 우리가 바라는 누군가 일 수도 있다. 

주인공의 전처인 이우선이 만든 기계는 대체로 이렇다. 다리가 여섯 개고, 몸통은 있지만 얼굴은 없다. 태양광 패널로 주전력을 충당하면서 비상 가동을 위한 소규모 원자로가 탑재되어 있지만, 사실 벼룩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사진을 찍거나 대기 성분을 분석하지도 않는다. 그저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옆으로 가는 게 전부다. 이런 벼룩들을 엄청 많이 만들어 달에 보내는 정부는 '싸고 단순한 기게를 많이'라고 외친다. 이러한 벼룩들의 모습과 그것들을 향한 기대들을 보며 나는 벼룩이 우리 이거나, 우리가 바라는 누군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위에 언급했듯이 벼룩들은 얼굴이 없다. 이는 개성이 없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사실 딱히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는 필요한 자리가 있는 건 아닐까?' 그게 누구여도 상관없이 그저 그 자리에 누군가가 있기만 하면 되는 것. 나는 혹시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기도 했었다. 이 작품에서 벼룩은 그런 존재들을 표현하고 있다. 


벼룩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정부는 '싸고 단순한 기계를 많이'를 모토로 벼룩을 만들었다. 복잡한 기계는 무겁고, 무거운 기계는 많이 보낼 수가 없다. 적은 수의 기계가 달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한두 개만 고장 나도 탐사에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복잡한 기계는 복잡한 일을 해야 되잖아? 복잡한 일은 어렵다. 어려운 일은 틀리기 십상이다. 근데 틀리다 맞다 가르쳐 줄 사람이나 다른 기계가 옆에 있을 리 없다. 그럼 틀린 줄도 모르고 틀린 일을 계속하겠지?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리거나 옆에 있는 기계를 터뜨릴 것이었다. 그런 실패라면 그나마 납득이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벼룩들은 달랐다. 벼룩에게는 성공의 조건이 없었고, 그래서 절대로 터져서는 안 됐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포기할 때가 있다. 그것은 연애 일 수도 있고, 업무 일 수도 있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그것만 좀 해'라고 뱉었던 말들.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상대방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때는 몰랐던 말들. 나는 어쩌면 그들을 사람이라기보다 기계부속품처럼 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벼룩은 무능한 공무원 혹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로 표현되기도 한다. 있으나마 나한 존재들. 대체 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모를 그들을 표현하는데, 이는 뒤에 가서 다시 한번 설명하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대단한 걸 원한 게 아니었다. 딱히 하는 일은 없어도 꾸준히 달 표면을 어슬렁거리면서 우리가 달에 뭐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를 바랐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매일같이 찾아가서 맥주를 마시는 곳은 '시리어스 리'라는 호프집이다. 사장은 생강을 주재료로 쓰는 음식들을 만드는데 열중하지만 모든 것이 다 별로다. 다만 이곳은 맥주만은 아주 맛있어서 그저 맥주를 마시러 온다. 이 공간의 이름을 '시리어스'로 작가가 설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가장 주인공(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정리해고이혼을 경험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설정인데 딱히 설명이 없다. 어째서인지, 무엇이 원인이 된 것인지 설명이 없다. 그냥 그랬다는 식이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주인공의 전처인 이우선이 실종되었다며 크게 보도하지만 주인공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어느 날 눈 앞에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여기에도 이유는 없다. 그냥 이우선은 그런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우리들 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며 그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배고파서 밥을 먹었다가 아니라 그냥 밥을 먹고, 너무도 무료해서 핸드폰으로 게임했다가 아니라 그냥 게임을 했다이다. 이러한 부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내가 결혼 전부터 키우던 치타라는 고양이를 잃어버린 것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집을 나가버렸어. 예상은 했는데 조금 갑작스럽더라.
시국이 이러니 말릴 수도 없고......

고양이가 집을 나갔는데 그걸 말릴 수가 없다는 전처의 말. 그리고 이를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주인공. 복잡한 설명보다는 뉘앙스로 풀어나가는 방식의 한 면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없어도 그만인, 그래서 사라지는 것들 

<어쨌든 하루하루>의 마지막은 정부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장으로는 굉장히 커다란 사건 같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난, 야구경기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 표현된다. 


정부는 오늘부로 자발적 해체를 선언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묵묵히 응원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질타와 격려 속에 걸어온 이 길의 마침표를 지금 여기에 찍습니다. 제가 마지막 남은 정부입니다. 이 발표를 마치면 저도 떠납니다." 대변인은 카메라 앞에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그럼 야구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선배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야구는 괜찮아. 이번 시즌은 어떻게든 끝까지 간다더라." 


정부가 자발적 해체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벼룩 때문이다. 달을 정복하겠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모든 것을 투입했던 일이 엉망이 되면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주인공이 버튼을 눌러 벼룩을 폭파시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알 수 없는 이유로 달 탐사선들이 폭파되고 있다던 정부의 물러남. 그것을 사람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사실은 없어도 그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부가 달에 벼룩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는 주인공이 버튼을 누르는 행위로 표현된다. 전처가 준 송신기의 버튼만 살짝 누르면 벼룩이 터지는데, 연패하는 야구팀을 그냥 해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인터넷의 글에 비추천을 누르려면 로그인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한다. 이는 그만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달 탐사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혼도, 다시 고양이를 키우는 일도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쨌든 하루하루>의 마지막 문장이다. 거기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없다. 그냥 그런 일들이 일어났고,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 작품을 설명이나 묘사가 부족한 작품이 아닌 오히려 더욱 선명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남긴 것은 이 작품만이 가진 특유의 뉘앙스이다. 그리고 나는 김홍 작가의 다음 작품을 꼭 읽어 볼 것이다. 그냥 그런 예감이 든다.  


덧) 참, 이 작품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신춘문예 기사로 전문을 읽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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