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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울림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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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서기 Sep 28. 2020

마더

둥근, 그리고 끈적거리는

소설에도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때는 작가가 유행하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ㅇㅇ류 라는 방식으로 유행하기도 한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그때 유행하던 것은 신경숙 작가였고, 그리고 끈적거리고 음습한 단편소설이 많이 읽혔다. (내가 판매 부수나 통게를 낸 것이 아닌, 내 주변에서 선후배와 동기들이 들고 다니던 책들로 말하는 것이다) 신경숙이라고 하면 어차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끈적거리고 음습한 소설의 예를 들어보자면 천운영 작가와 편혜영 작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작품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계속 빨아들이는 느낌을 주면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하나씩 박힌 것. 그리고 작품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어쩐지 '너도 우리랑 다르지 않아'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그런 작품들. 내가 이런 이야기들로 이번 리뷰를 시작 한 이유는 황정은 작가의 <마더>를 읽으면서 그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끈적이는 작품들을 읽고 조명이 어두운 술집에 앉아서 한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그 시절.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술집을 찾아가야 이 그림은 완성된다. 그리고 사장님도 우리를 알기에 음악도 좀 바꿔달라고 요청도 할 수 있는 그런 술집)


황정은 작가 - 출처 : 채널예스


황정은 작가의 이름은 진짜 많이 들어보았다. 서점에서 어떤 문학상 수상집을 보면 후보작이거나 우수작에 이름을 발견하기도 했고,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이 나왔다고 팝업 배너를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 권도, 아니 한 작품도 읽어 본 적은 없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이제는 신간이 나온다고 해서, 어느 문학상의 수상작이라고 해서 읽을 만큼 부지런하지 못하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 일수도......


오늘 소개할 <마더>는 내가 황정은 작가를 알게 된 첫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이 외에는 다른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작가에 대한 설명을 적어 넣기가 힘들다. 그래서 간략하게 수상내역만 적어 넣도록 하겠다. 황정은 작가가 수상한 상들은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5.18문학상', '만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이 있다. 꼭 문학상을 많이 받아야 좋은 작가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문학상을 탔다는 것은 작가의 활동이 지속적이었고, 이를 평단에서는 멋진 작가의 활동으로 인식했다는 반증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참고로, 마더를 읽은 후 나는 이후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소설 <마더>가 실려 있는 소설집

마더의 줄거리는 없다. 우리가 종종 줄거리 없는 단편소설들을 만나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줄거리가 없다. 그래도 억지로 만들어낸다면, 현대정육도매센터에서 일하는 고아의 고단한 삶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에도 살아간다' 이런 식의 작품은 아니다. 위의 간단한 줄기에 끈적한 볼륨이 상당히 많이 붙어있다. 작품에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혹시 주인공은 뱀파이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린 시절 만났던 미대생이 친모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설정들이 맞든 아니든, 사실 이 작품에서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 오가 뱀파이어든, 그때 만난 미대생이 친모든 아니든 이 작품에 변화는 없다. 


둥근, 웅크린 모성 

'모성'은 둥근 모양을 가진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암퇘지는 갈비뼈가 둥글고 수퇘지는 평평하다고 오는 대답한다. 아시다시피, 오는 끈적거리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는다. 암퇘지는 뱃속에서 새끼를 키워야 하니까요. 



고기를 사러 온 손님에게 암퇘지와 수퇘지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는 주인공. 뭐가 더 맛있다가 아닌 둥근 것과 아것으로 고기를 설명한다. 손님은 설명을 듣고는 암퇘지를 사 간다. 


나체로 몸을 웅크리고 앉은 여자의 옆모습을 데생한 그림이었다.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다. 딱딱하게 마른 젖가슴과 공허하게 부푼 배, 울퉁불퉁한 등, 나를 낳은 여자는 꼭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흥분했다. 그림의 우측 하단을 살폈다. 길쭉한 뿔처럼 생긴 화가의 사인 옆에 r와 w만을 필기체로 쓴 sorrow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왜 슬픔인가, 이 스케치의 이름은 마더가 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봉사활동 온 미대생의 지갑과 화집을 훔친다. 그리고 훔친 화집에서 발견한 데생 그림에 '마더'라는 이름을 새겨 넣는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 그렇게 둥근 형태를 가진 모성은 그가 키우는 유기견에서도 보인다. (주인공은 유기견을 하나 주워다 키우는데, 이름을 마더라고 짓는다)


마더가 머리를 들고 으르렁거린다. 무리다. 곧바로 기침이 터진다. 등이 둥글게 말리고 네 다리가 가슴 쪽에 바짝 붙는다. 


주인공이 유기견에게 마더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둥글게 마는 몸의 형태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얼굴도 모르는 친모로부터 텔레파시를 기다린다.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신호가 분명 올 것이라는 믿음. 작품의 마지막에 이러한 텔레파시를 느끼는, 혹은 텔레파시를 친모에게 발신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또한 둥근 형태가 방아쇠로 작동한다. 


둥근 손잡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는다. 날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에 사용하고서 물기를 닦아두지 않은 탓이다. 거울 앞에 서서 오는 앞머리를 자른다. 거울 속 충혈 된 두 눈이 오의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눈썹뼈에 수평으로 날을 맞추고 사각사각 머리카락을 잘라나간다. 


작품에서는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지만, 이후 이어지는 문단에 '짓무른 눈은 동공을 분간하기 힘들고 작은 콧구멍은 톱밥 같은 물질로 꽉 막혀있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머리를 자르던 가위로 자신의 눈을 찌르거나 혹은 죽음 뒤에 장례를 치르고 있는 친모의 몸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주인공은 둥근 것에 반응하는데 이는 모성을 향하는 갈증을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모성을 태어남, 안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매듭의 끝으로 모성을 이야기한다.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러나 그것 자체가 배드 섹터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수많은 바이트가 모인 섹터로 구성되고, 그 섹터가 모여 동심원 모양의 트랙이 된다. 이 트랙에 정보가 저장된다. LP레코드판이나 마라톤 트랙을 생각해 보라. 트랙의 어느 부분에 물리적인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 그 구간을 배드 섹터라고 부른다. 배드 섹터가 생겨나면 하드디스크 내의 정보는 잘못된 트랙에서 공회전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엉켜서 결국 하드디스크는 복구가 불가능하게 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을 보낸 보육원에서 미쳐버렸던 에이를 이야기한다. 예민했던 에이는 위 설명에 나온 배드 섹터가 생겨버렸고 끊임없이 공회전이 일어나 엉켜버린고 미쳐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배드 섹터는 주인공에게도 나타난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쿵쿵쿵, 쿵쿵쿵, 하는 환청을 듣는다. 이것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는 심장 소리라 여기기도 하고, 자신에게 기대어 자는 유기견 마더의 심장 소리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듣고 있는 소리는 갓 난시 절 지하철에 버려질 당시 자신이 들었던 지하철의 소리다.(이는 작품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닌 나의 주관적인 추측이다) 또한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의 모임 '티파니'에서 활동한다. 인사나 안부 같은 건 없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리포트로 제출받은 소수의 사람들만 활동할 수 있는 모임 티파니.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모두가 티파니라는 이름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투표를 진행한다. '살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단 한 명이라도 살고 싶다는 말을 하면 접속은 끊어진다. 


그날 밤 티파니의 방이 열린다. 오늘 피아노를 구입했다고 티파니가 말한다. 피아노는 뭐에 쓰려고 어차피 죽을 거면서. 티파니가 빈정댄다. 어차피 죽을 거니깐. 티파니가 대답한다. 투표가 시작된다. 당신은 살고 싶은가...... 두 번째 답변이 올라오는 순간 접속은 끊어진다. 오는 피식 웃는다. 누군가는 반드시 예스라고 대답한다. 내심 나머지 회원들도 바라는 것은 아닌가. 자신 말고 누군가, 아직은 살고 싶다, 라고 말해주길., 그리하여 얼마간의 시간을 또다시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여유로 살아갈 수 있도록. 


티파니의 오프라인 모임은 단 한 번. 모두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에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날을 오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죽고 싶지 않다는 말에 기대어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이다. 이들은 모두 배드 섹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며, 티파니 모임 또한 배드 섹터 그 자체이다. 누군가의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내가 죽고 싶은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인데도 이들은 그것을 행하고 있다. 공회전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저 반복적으로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말의 공회전. 그 끝은 없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모성을 탄생보다는 끝으로 연결 짓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회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황정은 작가의 등단작인 <모성>은 제법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들이 가득했으며, 문장 또한 거칠면서도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 중 하나는, 이 작가의 긴 호흡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금 더 황정은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 <마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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