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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울림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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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서기 Jun 15. 2021

티니안에서

내던지듯 하지만 촘촘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어떤 여성에게 '걸레'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놓쳤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남자 친구들에게 이 말을 쓴 적은 있다. 남자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그래도 제법 이 말을 애들한테 썼던 것 같다. 아마도 장난처럼 혹은 정말 화가 나서 욕을 한다고 썼을 것이다. 당시 남학생들끼리 서로를 향해 '걸레 같은'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웃거나, 그냥 넘겼던 건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차피 남자는 걸레가 될 수 없다는 그런 것. 


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 건,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티니안에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해당 작품은 주인공 민지가 학창 시절 친구 수혜와 함께 티니안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티니안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실에 있던 민지와 수혜는 자신을 팻맨과 리틀보이라 소개하는 두 백인 남성을 만나게 된다.  


수혜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그것도 아주 형편없는 영어로 자세히 털어놨기 때문이다. 자신과 내가 중학교 시절 친구라는 것, 우리가 10년 가까이 서로 안부를 모르고 지내다 최근에야 다시 연락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니까 이 여행은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한 일종의 '우정 여행'이며 자신과 달리 직장이 있는 나의 사정을 고려해 3박 4일의 짧은 일정을 계획했다는 것...(중략)... 솔직한 동시에 적극적인 그녀의 태도에 남자들은 한껏 고무된 눈치였다....(중략)... 문신한 남자의 이름은 제임스, 십자가 귀걸이의 이름은 제레미였다. 어쩌면 그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캐리어를 끌고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두 남자의 장난기 어린 눈빛에서 한계에 다다른 육식 동물의 허기가 느껴졌다.라고 표현될 만큼 그 의도가 분명하게 보이는 남성들이 다가왔을 때 반응하는 방식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여성의 두 가지 모습으로 각 캐릭터가 나눠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해당 장면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된다. 


수혜가 비키니 상의를 벗고 비치타월 위에 엎드렸다. 깜짝 놀란 나와 달리 남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수혜와 조금 떨어진 야자수 그늘 아래 수건을 깔고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남자들 앞에서 아무렇게나 옷을 벗는 수혜가 불편했다. 


플래시가 터지자 주변에 있던 위령비들이 일제히 은색으로 번쩍였다. 사진을 확인해보니 두 남자가 수혜의 양 볼을 꼬집고 있었다. 수혜의 익살맞은 얼굴이 더 귀여워보였다. 


이처럼 낯선 백인 남성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수혜를 바라보는 주인공 민지의 시선에는 어쩐지 모를 불안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안 저랬으면 좋겠다'라는 뜻까지 내재되어 있다. 사실 민지와 수혜에게는 또 다른 친구 연선과 함께한 비밀이 있다. 비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심지어 주인공 스스로 다른 이들에게 말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비밀이 있다. 그것은 중학교에 다니는 시절 너무도 성욕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음악실에서 셋이 모여 교환일기를 주고받았는데, 그 안에는 여러 남학생들과 관계를 맺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이들의 비밀은 다른 학생들에게 전체 오픈되고 전교생이 모두 아는 걸레 3인방으로 낙인 된다.


그 시절 나를 지배했던 욕구는 잦아든 지 오래다. 뭐랄까, 마치 도시를 통째로 쓸어버리고 깊은 잠에 빠진 휴화산 같다. 이제 나는 남들이 웃으면 같이 웃음을 터트리고 남들이 심각해하면 함께 미간을 찌푸린다. 야생에 던져진 초식동물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포식자들의 기분을 살핀다. 이런 내 태도가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수혜가 필요 이상으로 낙천적이라는 것도. 


주인공 민지는 이제는 지나버린 시절을 이야기하듯 어린 시절의 성욕을 이야기한다. 마치 한 시절을 지나온 사람의 말투. 하지만 그녀는 일종의 불필요한 사회화가 되었을 뿐 분출되는 에너지가 없음은 아니다. 그 에너지는 그녀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 드러난다. 


빨간 도요타가 곧게 뻗은 활주로를 덜컹덜컹 내달렸다. 뒷좌석에 앉은 팻맨과 수혜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댔다. 수혜의 웃음소리가 기다란 탐침이 되어 내 가슴을 찔렀다. 면허를 따고 처음 하는 운전이었지만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노스필드를 보자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다.... (중략)... 흥분한 나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크게 꺾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혜가 팻맨의 허벅지 위로 무너지듯 엎어졌다. 나는 엑셀에서 발을 떼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중략) 리틀보이가 의외라는 듯 나를 곁눈질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되는 쭉 뻗은 도로와 마주하게 되면 민지는 자신도 모르게 액셀을 밟고 달린다. 즉 잘못된 사회화가 필요 없는 곳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자신을 감추지 않는 자유로움이 아직 그녀에게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러한 자신의 내면을 숨기는 것은 차에서 내리는 민지를 보고 여행지에서 알게 된 다른 남성의 대사를 통해 나타난다. 


운전하시는 거 보고 저희끼리 그랬거든요, 저거 분명 수혜씨일 거라고. 

여행지에서 백인 남성들과 가까이 지내는 민지와 수혜를 보는 또 다른 시선들이 있는데, 바로 민박집의 주인 남자와 이들보다 며칠 뒤에 도착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젊은 남성 2명이다. 민박집주인은 아예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그래도 조심 좀 해주면 좋겠네. 그러다 사고 나면 섬 이미지만 안 좋아져. 괜히 여행 카페 같은 데서 말 돌면 한국 여자들 몸 사리느라 안 온다구. 무슨 말인지 알죠? 


그리고 갑자기 두 백인 남성과 수혜가 사라지자 이들의 시선은 더욱 본격적으로 노골화된다. 


그치, 우리 거기서 나올 때 마주쳤잖아 걔들이랑. 안 그래도 찜찜했거든요. 수혜씨 혼자라. 


형님들아, 자기들이랑 나랑 입장이 같아? 막말로 지가 좋아서 따라갔는지 어떻게 알아요. 


민지씨도 조심하세요. 이 동네에 동양 여자만 노리는 양키들 많아요. 


그리고 덧붙이는 말은 다음과 같다. 


아, 민지씨는 안 그래

이 불편한 소동은 사라졌던 수혜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오며 끝난다. 그녀는 민지가 관심 있어하는 산호 조각들을 손에 쥐어주며 말한다. 


민지야 이거 봐. 모래가 별모양이야.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별을 따러간 사람을 두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넘어갔느니, 따라갔느니, 결국...이라는, 하지만 그 사람은 그저 별을 따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혜처럼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 수군거림에 밀려 자살절벽으로 향했던 사람. 연선이 있다. 


그 모욕적인 낙서 사건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연선이가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당하거나 충동적으로 가출한 것이 아니었다. 증발. 그건 말 그대로 증발이었고 경찰은 조사 끝에 자발적 실종으로 결론 내렸다. 


해당 작품은 두 사람이 경비행기를 타고 섬을 나오면서 끝이 난다. 어떤 사건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관계가 바뀌는 것도 없다. 원래부터 그랬던 두 사람이 원래 모습으로 나오면서 끝난다. 수혜와 민지를 다른 성격의 여성으로 작품을 읽은 나만 빼고 말이다. 


강보라 작가의 '티니안에서'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문단들이 많이 나눠져 있음이었다. 이것은 툭툭 던져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때의 장점은 작품이 쉽게 잘 읽힌 다는 것이다. 마치 스냅사진을 보듯 문단들을 넘겨보는 재미로 금방 단편소설 하나를 읽게 된다. 그렇게 이 작품을 읽고 다시 해당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찬찬히 읽어보면서 문단들이 유기적으로 잘 묶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용문을 하나 쓰려고 하면 그것을 중간에 끊기가 힘들었다. 또한 문단과 문단 사이에 숨겨진 생략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기에 나는 이 작품을 읽은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싶다고 느껴졌다. 


이 글에는 다 소개하지 못했지만 공간이 주는 재미와 도서관에서 산호와 관련된 책을 훔치는 것. 그리고 주인공 민지의 어린 시절 아픔을 마주하는 엄마와 타인들의 시선들까지 작품 속에 잘 배치되어 있다. 그렇기에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사실 나도 한국일보 신춘문예 냈었기에 얼마나 잘 쓰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해당 작품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전문을 누구나 볼 수 있으니 꼭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한다. 나는 강보라 작가의 다음 작품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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