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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울림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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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서기 Oct 26. 2020

빨간 열매

몽글몽글한 2020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신춘문예 당선작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특히나 소설 분야의 당선작들은 대체로 선명하고 강렬한 작품들이 뽑힌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기 빨리는 작품들이 신춘문예 작품이라고 여기곤 했는데, 여기에 전혀 의외의 작품을 알게 되어 소개한다. 그 작품은 바로 2020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이유리 작가의 <빨간 열매>이다. 대학 동기와 이름이 같아서, 혹시나 그 친구인가? 하면서 읽게 된 작품인데 (결론은 아닌 걸로) 이 작품을 다 읽은 소감은 '신춘문예가 제법 넓어졌구나'였다. 물론 요즘은 신춘문예들이 사라지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이만큼 화려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속성이 문제라 등단작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작가들이 나온다는 것. 그럼에도 신춘문예는 신문에 작품 전체가 실리는 것으로, 이것은 신인작가가 가질 수 있는 큰 영향력이라는 점 때문에 나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 경향신문 / 오른쪽에서부터 다섯 번 째, 이유리 작가


이유리 작가는 숭실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에 취직한 후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회사원이라고 한다. 매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출근 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소설을 썼다는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전한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려면 지루한 걸 참아야 하는데 책 읽고 글 쓰는 건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는 것이 꽤나 힘든 인내임을 아는 작가로 보이는데, 그만큼 앞으로도 멋진 작품들을 써내려 갈 것으로 기대한다. (이유리 작가의 첫 소설집이 나오면 구매할 생각이다) 


<빨간 열매>는 나무가 된 아버지와 딸의 동거 일기다. 주인공 서유진은 프리랜서로 번역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녀에게는 병든 아버지가 하나 있는데, 이 아버지가 쫌 그렇다. 좋은 말로 하면 호기심이 많고,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손이 드럽게 많이 간다. 


갑자기 방게볶음이 먹고 싶다고 서해안엘 보내질 않나 <아침마당>에 왜 이금희가 안 나오느냐며 kbs에 가서 물어보고 오라고 시키기도 했고, 텔레비전에서 옛 일본식 건물을 그대로 따라 만든 술집을 보고는 밤에 몰래 가서 불을 지르고 오라고 한 적도 있다. 


작품에는 아버지가 정확히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혼자서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그는 누워서 딸에게 정말 이것저것 많이 시킨다. 그런 그가 딸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은 자신을 화분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여기지만 결국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사실 아버지는 딸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곤 했는데, 주인공이 어린 시절 수영장에서 빠졌을 때 아버지가 구해준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짜증을 부리거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이날의 이야기를 꺼냈는데 말랑한 내 어린 몸이 얼마나 유연하게 자기의 목에 들러붙었는지, 숨을 쉬겠다고 제 아비의 머리를 짓누르던 힘이 얼마나 셌는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꼭 마지막에는 그때 내가 없었다면 넌 빠져 죽었을 거다 하고 엄숙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화훼단지에서 흙과 나무를 사 온 주인공은 아버지의 유골함의 바닥에 구멍을 내어 그대로 화분을 만든다. 그리고 유골과 흙을 적절히 섞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나무를 심은 채 베란다에 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잊고 지내던 중 어느 날 베란다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물!"이라고 외치는 소리였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은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놀라는 것이 아닌,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인다. 


나는 깜짝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뭐야 이러면 살아 있을 때랑 똑같잖아, 하고 투덜거리며 컵에 찬물을 반만 떠다가 화분에 갖다 부었고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듯 잎을 천천히 끄덕이며 물을 마셨다. 


그 이후로 화분이 된 아버지는 딸을 귀찮게 한다. 자신을 화분에서 꺼내 뿌리에 벌레가 있는지 확인해 달라거나, 밖으로 산책을 나가자거나 하는 부탁들. 주인공이 이를 귀찮아하면 나무가 된 아버지는 또 그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내가 인간이었을 적에 말이다. 네가 수영장에서, 땡땡이 무늬 수영복을 입고......

그렇게 나무가 된 아버지와 딸의 동거가 시작되는데, 여기에 새로운 인물 P가 등장한다. P는 주인공이 구르마에 아버지를 싣고 산책을 나가서 만나게 된 남자다. 그 역시 화분 하나를 가지고 산책을 나왔는데, 그가 가진 화분은 너무도 정성 들여 키우고 있는 멋진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남자의 화분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갑자기 아버지가 참 무지하게 좋죠, 날씨가, 하고 말을 걸었을 때 깜짝 놀랐으며 남자의 화분이 네에, 그렇네요, 하고 얌전한 여자의 목소리로 대답해 왔을 때는 컥 하고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냈을 만큼 더 놀랐다. 


사실 P가 가지고 있던 화분은 그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렇게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과 두 화분은 가깝게 지내게 되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각자 사랑에 빠진다. 처음 주인공이 P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그녀는 P를 위해서는 달콤한 포트와인을 준비하고, P의 어머니를 위해서는 한 번 묻어 놓기만 하면 십 년을 간다는 독일제 고체 비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는 두 사람은 와인을 마시고, 두 화분에게는 미네랄워터를 주는 등 꽤나 이러한 과정이 즐겁고 간질간질한 표현들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P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겠다고 발표를 한다. 그래서 주인공과 P는 커다랗고 멋진 화분 하나를 사서 거기에 두 사람(아버지와 P의 어머니)을 함께 심어준다. 이제는 서로가 엉켜 한 그루로 보이는 두 화분. 그 안에서 작은 꽃봉오리가 맺히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꽃이 피고 시들게 되자 그 자리에 빨갛고 작은 열매가 맺힌다. 


꼭지 주변이 검붉게 물들고 크기도 제법 커져 둥글게 웅크린 새끼 토끼만 해진 어느 저녁, 드디어 태어난다, 태어나, 하는 P 어머니의 외침이 들려 나와 P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열매가 표면을 바르르 떨며 가지에서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더니 잠깐 사이에 어어, 할 새도 없이 톡 하고 가볍게 떨어져 또르르 굴러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주인공과 P의 동생인 빨간 열매. 이 작품에서는 열매를 굉장히 귀여운 그 무엇으로 느껴지게 표현한다. 마치 작은 고양이 같기도 하고, 정말 아기 같기도 하고, 장난감 같기도 한 표현들이 가득인데 그것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또 가슴이 간질간질해지고 뭔가 느낌이 몽글몽글해진다. 어쨌든 주인공과 P는 빨간 열매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버지와 어머니께 물어보지만 두 사람은 너희들의 동생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한다. 마치 낳는데만 관심이 있지 떨어져 나간 열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한 태도다. 빨간 열매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주인공과 P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그 열매를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이었다. 여기서 기존의 신춘문예 작품들이라면 먹는 행위를 통해 굉장히 심오한 무엇인가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내가 본 신춘문예 소설이나 희곡에서 무엇인가를 먹는 행위로 끝나는 작품들은 분노의 마지막 표출이거나, 소유욕의 끝을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러한 결말에도 사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특별함이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영업이 끝난 놀이동산처럼 보이는 곳을 뛰어다니며 끝없이 끝없이 굴러가는 빨간 공을 쫓아다니는 꿈이었다. 결국 공을 잡아 주머니에 넣은 순간 잠에서 깼고 아침에 이 꿈 이야기를 하자 P는 어어 그거 태몽 아냐 혹시, 하고 말해서 나는 그런가 했다. 
출처 - 픽사베이

물론 빨간열매를 쪼개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번역하던 프랑스 소설과 연결되면서 둘로 나눠지는 존재에 대한 부분도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비유와 은유보다는 나는 문체를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위에 내가 부분 부분 인용한 것들만 보아도 이유리 작가의 문장들은 굉장히 길다. 마침표보다는 쉼표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고 문장의 앞뒤를 바꿔놓아 살짝 번역체의 느낌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대단한 것은 이것이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작품을 쓰게 되면 문단이 굉장히 많이 나눠지게 된다. 문단 하나가, 하나의 호흡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쓰기에 도전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텐데, 이런 문체를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려면 탈고를 수없이 해야 한다. 템포 조절을 계속해주면서 읽는 사람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어도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도록 말이다. (혹시 작가는 이 작품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수정하지 않았나 싶다- 글쓰기 감각이 천부적인 재능으로 중무장되어 그냥 한 번에 썼을 수도 있지만) 


어떤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이런 느낌을 받고는 한다. '정말 자료 조사를 많이 했나 보다' 이것은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인데, 나는 이유리 작가의 <빨간열매>를 읽으면서 '정말 탈고를 수십수백 번 했나 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작가에게 물어볼 수는 없기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후 단편소설집이 나온다거나 장편소설이 발표된다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느꼈을 창작의 고통을 내가 함께 느낀 것은 아니고, 나는 오직 몽글몽글함만 느꼈다. 부분 부분 표현되는 소설적 장치들이나 표현들이 아주 좋았고, 이러한 서평을 쓰기 위해 세 번을 읽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마 시간이 지나 내가 뭔가 우울한 일이 있을 때면 기분 전환을 위해 다시금 꺼내 볼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위에 부분 부분을 인용 하긴 했지만, 이 작품의 문체를 맛보기 위해서는 작품의 전체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2020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검색하면 소설 전문을 찾아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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