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브런치로 도망쳐 쓰는 에필로그
5km를 28분 만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나더니 걷기에 중독이라도 됐는지 매일 새벽에 근처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정확히 ‘걷기’가 아니라 ‘걸으면서 해소되는 기분’에 중독이 되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면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이 ‘안녕’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명쾌하진 않아도 답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됐다.
256km를 7일 만에 완주했다는 건 하루 평균 36.6km를 걸었다 것이다. 아이폰이 나의 움직임을 멋대로 측정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독하게 많이 걸었다는 건 분명했다. 또 특별한 준비도 없이 잘 돌아온 걸 보면 ‘걷기’에 조금 재능이 있었던 거 같다.
이 얘기를 듣고 지인이 마라톤을 추천했다. ‘어차피 매일 걷는데 한번 가벼운 코스를 나가볼까?’ 해서 가장 짧은 5km 코스에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2주 정도 연습의 기간을 가지고 참가 당일 (또!) 제대로 된 러닝화 없이 아무 운동화를 주워 신고 출발선에 섰다. 그리고... 1등으로 결승점에 도착했다. 28분 31초, 평균보다 아주 조금 빠른 정도지만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이만한 성적을 냈다는 것은 박수를 받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으쓱)
“시간이 약이야. 언젠가 잊게 되어 있어.”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이 말대로 정말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잊는 일도, 잊어서 자연스럽게 치료가 되는 일도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 질지라도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처에 기본적 치료도 하지 않아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날 아프게 하고 있다. 또 심한 것은 속으로 더 곪아 이렇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몇 년 전에 정여울 작가님(작가 겸 문화평론가) 강의를 가까이에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정여울 작가님은 ‘트라우마는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라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이어 말하길 그 트라우마가 방치되어 검게 변하고 딱딱해지기 전에 말랑해질 수 있게 글을 써서 계속 건드리고 속아내주라고 말하셨다. 그때 나에게 영향을 주요한 사건들을 키워드로 뽑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작가님이 내가 쓴 것을 보고 ‘어떤 기준’으로 쓴 건지 물었다.
“제 아킬레스건(뒤꿈치)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작가님은 이것으로 글의 개요로 구성하고 글을 써볼 것을 권했다.
“1초가 지나도 과거야. 지난 얘기는 꺼내지도 마.”
나는 키워드로 뽑은 몇 가지를 가족들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것을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대상도, 그럴 수 있는 대상도 당연히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고 생각하기 싫으니 지난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지난 일 되씹으며 피곤하게 굴지 말라고 되려 비난만 듣고 대화는 시작도 못하고 끝났다.
달고 부드러운 건 꿀떡꿀떡 넘어가지만, 쓰고 질긴 것들이 소화가 안 되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명치에 탁 걸려서 내려가지 않아 속에서 되새김질하는 건 절대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각자의 해소 방법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기에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가족들에게 강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을 가는구나...’ 하고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이 긴 서사가 짧은 진단명으로 종이 한 장에 정리되는 건 소름 끼치게 싫었다. 결국 혼자 소화제를 들이키며 민간요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나만의 언어로 한 문장 두 문장씩...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생각과 감정들을 쫙 펼쳐 놓고 정여울 작가님 말대로 속아내고 다듬어서 멋지게 만들고 싶었다.
처음엔 일기처럼 메모장에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적었다. 하지만 다이어트처럼 ‘이정돈 괜찮아.’, ‘오늘은 힘드니까.’, ‘지금은 바빠서.’ 하며 글쓰기를 미루거나 어기는 일이 잦았다. 왜 이럴 때만 자신에게 후한지, 생각과 마음에 다이어트가 시급한데 이런 식으로 나태해 지가나 폭식과 단식을 반복해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잘 다듬어 멋지게 만들고 싶다는 꿈이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PT를 끊었다. ‘마음의 PT’.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주 1회 PT(연재)를 약속했다. 그렇게 ‘작가 합격’ 메일을 받고 백지에 글을 쓰려는데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A4 용지 3장 분량을 꽉꽉 채워 쓰고도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나를 아는 누군가 이것을 보면 어쩌지?’
‘그래서 나의 상태를 알면 뭐라고 할까?’
‘그저 신세한탄이 되어버려 누군가 읽다가 눈살을 찌푸리는 글이 써버리게 되진 않을까?’
‘유난스럽다고 하진 않을까?’
‘단어는? 문장은? 문법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노트북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근데 내가 이걸 왜 하려고 한 거지?’
또 걱정과 두려움들은 또렷했던 나의 목적을 잊게 만들고, 길을 잃게 만들었다. 맥이 탁 빠져 의미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하다가 한 만화를 보게 되었다.
병원을 가지 않는 이유와 비슷했다. 나는 누군가 나의 감정을 평가하고 질타할까 봐 두려웠다. 내 이야기에 대한 평가가 ‘나’와 ‘내 감정’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했다. 어떤 부분에서 ‘너는 틀렸어.’라고 말을 들을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달랐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원래 하려던 것을 다시 되세겼다. ‘그래, 또다시 두려움에 길을 잃기 전에 나의 등대를 만들자. 그러자.’ 그리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나는 아직도 정신병원에 도착하지 못했다. 명확한 단어로 진단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여전히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있다. 가끔 ‘만약 내가 제주도에 가지 않고 병원에 갔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두 가지 선택지 중 더 나은 선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했던 그 상황을 잘 넘겼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게다가 나만의 방법으로 그 위기를 넘겼으니 더 훌륭한 것 아니겠는가. 그날 나는 ‘도망’ 쳤지만, 그것도 나름의 멋진 도전의 첫걸음이었다. 그래서 도망쳤지만, 부끄럽지도 않고 도움도 되었다.
누군가 병원에 가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것 중 어떤 것을 추천하냐고 묻는 다면,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세요.’라고 할 것이다. 또 그것을 하는데 어떤 장애물이 있다면 ‘다른 길이 반드시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덧붙일 것이다.
모두 앞으로 있을 어떤 위기도 잘 넘기길 바라며... 그리고 나를 위해 시작한 이 글이 누군가를 위한 글이 되길 바라며…
이렇게 이 글은 마무리 지어본다.
소소한 생각 : https://www.instagram.com/kim_patp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