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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채 Apr 06. 2021

나를 찜질방에 가둔 마법사 할머니

5일 차

   맑은 하늘에도 태풍이 부는  바로 제주도이다.


   여름 날씨의 뜨거운 햇살 때문에 첫날부터  번도 양산을 접은 적이 없다. 그런 화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태풍이   같은 거친 바람 때문에 3일째 되는 양산만신창이가 되었다. 양산을 대신해 챙이  밀짚모자 같은 것을 사서 쓰려고 거쳐 가는 읍내 마트마다 들러 적당한 모자를 찾았지만 마땅한  없었다. 결국  망가져 가는 양산의  날개살을 양손으로 잡고 걸었다.  모양새가 얼마나 웃겼냐면달리던 차가 속도를 줄이고 나를 할끗 보고 다시 속도를 내서  정도였다. 하지만  ‘여행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 사람들은 ‘도전적인 여행을 하나 보군.’하고 지나가는  같았고, 그래서 나도 개의치 거 계속 걸을  있었다. 여하튼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29 날씨에 더위에 지지 않고 걸으려면 이렇게 그늘을 만들어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제주도를 절반 걷고 나서야 동행을 해줄 모자를 찾았다.

심지어 내것도 아닌 엄마 양산이었는데, 결국 버리게 되었다.

   ‘이제는  이상  버텨.  친구(양산) 보내줄 때가 되었어.’ 하고 양산도 나도 한계가 왔을  이중섭거리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다양한 기념품 상점들이 잔뜩 있었는데 그중 모자를 가득 쌓아 놓고 파는 가게가 있었다. ‘여기서 무조건 사는 거야.’ 작정하고  모자 저모자 들춰보는데 너무 촌스럽지도 너무 튀지도 않은 모자를 찾았다. 나는 가격도 묻지 않고 카드부터 내밀었다. 모자가게 아저씨는  카드를 건네받으면서 물었다.


“여행 왔어?”

“네”


   ‘그래도 하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나서부터는 ‘여행이라는 말이 부대끼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말에주저하지 않았다.


레길 걷고 있나 보네. 잠깐 손목  내봐요.”


   아저씨는 내민  손목에 팔찌 하나를 끼워주셨다. 색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한 여러 개의 실로 만들어진 팔찌는 촌스럽지만 그때  패션(?)에는  괜찮아 보였다.


“그게 행운의 팔찌야. 직접 만든 건데. 줄게. 남은 여행도 몸 아프지 말고 무사히 끝내요.”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따뜻하다니... 이제는 화상을 입을 정도다. 여전히 이런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당황해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아저씨는 기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에잇! 이것도 가져가!’ 하면서 양손 넘치게 귤도 주셨다. 제주도에 귤이 많긴 많은가 보다.

   모자를 사고 시장 안쪽에서 파는 흑돼지 고로케를  먹었다. 멍게 김밥 이후 제주도다운 음식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튀김은 실패가 없을 거라 믿고 도전했다. 줄까지 서서 사야 했던 고로케는 성공적이었다. ‘역시 튀김은 옳아.’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모자를 쓰고 걸으니 날개를  것처럼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양산을 들고 걸을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바람에 대한 저항감에 앞으로 나가는  쓸데없는 힘이 들었다. 그런 양산을 접고 모자를 쓰니 걷기가 훨씬 수월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동행자를 찾아 기뻤지만 그래도 그동안 나를 지켜준 친구이기에 애물단지 취급하지 않고  접어 가방에 넣었다.



# 가끔 행복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해가 거의  저물어서 성산일출봉 근처에 도착했다. 모자 덕에 날개를 달아 평소보다 훨씬 많이 걸었다. 속도가 붙어 신남을 주체하지 못하고 평소보다 많이 었더니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왔다. 그래서 바로 한방찜질방찾아갔다.


   ‘한방찜질방 내가 4  방송작가로 일할  알게  곳이었다. ‘섬마을아이템에 꽂힌 피디님 때문에 제주도의 돌부리까지 조사할 정도로 제주도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그때  블로그에서  한방찜질방에 다녀온 후기를 읽게 되었다. 그때 그 글에서 말하기를 70 정도  보이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한방 찜질방은 직접 지은 찜질복과 정겨운 분위기가 다른 찜질방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글을 본지  어래 전이라 혹여 문을 닫았을   걱정되었다.


   약간 길을 헤매다가 샛길 같은 도로변 옆에서 간판을 발견했다. 다행히 찜질방은 사진 그대로 거기 있었다. 마치 여러 번 와본 사람처럼 반갑게 찜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투명 문을 밀고 들어가니 정면에는 카운터와 연결된 작은 창문이 보였고, 흔히 알고 있는 목욕탕처럼 여자, 남자 출입문이 나누어져 있었다. 닫혀 있는 작은 창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니 문이 열리고 할머니 얼굴이 나타났다.


“혼자예요?”

“네.”

“만원~”

“네~”


   하루의 긴장감이  녹여주는 목소리였다. 이상하게 엄마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인다. 나는 할머니가 주시는 찜질방 옷과 수건을 받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25 정도  보이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는데, 남녀 입구를 나눈 것이 무색하게 들어가자마자   공간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공간은 휴게실이자, 수면실이었다. 하지만 느낌은 그냥 할머니 집의 거실 같이 아늑했다.  넓은 공간을 가운데 두고 양끝에 사물함에 붙어 있었고 사물함 옆으로 왼쪽에는 남자 샤워실이 오른쪽에는 여자 샤워실 문이 있었다. 샤워실도 성인 3명이 쪼르륵 앉으면   정도로 좁고  작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탈의실이 없었다. 정확히는 탈의를  옷을 넣는 사물함은 있는데 벽이 없었다. 찜질방은 뜨거운 한증막과 샤워실을 제외하고 벽도 문도 없이 101% 완전히 통자로  공간이었다. 당황해서 할머니께 물었더니 할머니가 손을 휘적이며 말하셨다.


“저~ 저기 자바라 있짜네. 자바라 쭉 댕겨요~”


   자바라, 할머니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 플라스틱 커튼이 보였다. 나는 ‘~’하고 가서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타다다다소리를 내며 자바라 커튼 펴졌다. 커튼이 레일을  따라 펼쳐지니 벽이 생기고 공간이 분리되면서 순식간에 탈의실이 만들어졌다. 황당하면서도 기발함에 자꾸 웃음이 났다. 처음 보는 탈의실 모양에 할머니 몰래 한참을 키득거리다가 샤워실에 들어갔다.

나름 ‘여’라고 표시되어 있는 자바라 탈의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티비를 보시던 할머니는 의자를 돌려 나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 요를 꺼내세요~’, ‘화장실 불은 저거예요~’, ‘요건 은은하게  놓은 불이 예요~’ 할머니만의 찜질방 매뉴얼을 하나씩 알려주시는데 웃음이 나오는   참았다. 나는 할머니 지휘 아래 ‘찜질방 사용법 익히고 할머니 뒤쪽에 요를 깔고 누웠다. 찜질방에 왔지만 찜질은 나와  맞지 않아하지 않았다. 내가 요를 깔고 일찍 눕자 할머니는 티비를 보던 눈을 나에게로 돌리시더니 밥을 먹었냐고 물으셨다. ‘드디어!’ 사실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어서 일부러 먹지 않았다. 그때  블로그 글에서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내심 기대하며 엄살 부리는 말투로 ‘ 먹었어요…’라고 했다.


“아이고, 올 때 사발면이라도 사 오지. 원래는 같이 차려먹고 그러는데 우리 영감 죽고 내가 기운이 없어서 뭘 잘 안 해 먹어. 배고파서 어쩐다?”


   작았던 눈이 커졌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안보이셔서 궁금했는데돌아가셨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예상치 못한 얘기에 놀라 아무 말도  하고 있는데 카운터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열었어요~ 11시까지 받아요~”


   전화를 받아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가 9 하고 반을 넘은 시간, 할머니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주섬 주섬 일어나서 나한테 리모컨을 건네셨다.


“잘 거지요? 누가 온다는데 목소리가 사내들이야. 나는 집 갈 건데 아가씨 혼자 있는데 내가 불안해서 받으면 안 될 거 같어. 내가 밖에서 문 잠그고 갈 테니 까 누가 문 두들겨도 열어주지 말고 그냥 자~”


   할머니는 내가 신경 쓰여 영업시간을 채우지 않고 일찍 문을 닫겠다고 하셨다. 할머니 배려에 감동에 젖어드는데 순간 다른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어? 그럼 내일 몇 시에 오세요? 저 내일 일출 보러 일찍 나가는데 문은 어떻게 하고 갈까요?”

“그냥 열어 놔 버리고 가~”

“네? 누가 막 들어오면 어떡해요.”

“괜찮여. 여기 훔쳐갈 것도 없고 들어오면 찜찔 좀 하다 가겠지 뭐.”


   할머니의 대답은 쿨했다. 할머니는  채비를 하시고, 나는 여러 가지 아쉬움을 안고 다시 누웠다.  기분을 아신 건지 할머니는 가시기 전에  곁으로 오셔서 누워 있는  이마를  누르셨다. 쓰다듬은 것도 아니고 토닥이는 것도 아니고 한번  누르셨다. 거칠고 따뜻하고 작은 손이었다.  손으로 마법이라도 거셨는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 안쪽까지 평온해지는  같았고, 꼬르륵 거리는 배도 잠잠해졌다. 나는   손녀 마냥 그대로 누워 할머니께 인사를 했고, 할머니는 정말 ‘철컥하고 찜질방 문을 잠그고 집으로 가셨다. 나는 안전하게 찜질방에 갇혔다.


   고작 1박이었다. 할머니와 있었던  1시간도  되지 않았고, 나눈 대화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만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기분이 나쁠 때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나아졌다. 일상  내가 지쳤을  나는 그때 그 순간을 기억했다. 사소하지만 그 작은 행복감이 나를 힘나게 했다. 이유를 모르겠다.  그때만 생각하면 행복한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찾지 못하는데 문득 ‘생각만 해도 행복한데 굳이  이유를 알아야 해? 이대로  행복에 갇히자.’고 생각했다. 그저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그때의  행복을 잊지 않으려고 여러  기억하고  여러  웃기로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다시 글로 옮기며 생각해보니 어쩌면 할머니가 나에게 마법을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주먹으로 가정을 지키려 했다는 아버지 ) 때문에 불면증도 오래 앓은 데다가 낯설고  넓은 곳에서 잠에  들지 못하는데 그날은 무언가에 취한 것처럼 스르륵 기분 좋게 잠들었다. 정말 웃기고 말도 안 되는 얘기 알지만 ‘할머니의 마법 있었다고 믿고 싶다. 이마 .


할머니는 그렇게 티비를 보다가 문을 잠그고 퇴근하셨다.



소소한 생각 : https://www.instagram.com/kim_patp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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