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차
아대를 한 무릎에 빨갛게 발진이 났다. 처음엔 가렵더니 나중엔 쓰라리기 시작해 급하게 바지를 걷어 올려 상태를 살폈다. 아대를 벗으려는데 살 껍질이 같이 벗겨지는 것처럼 아팠다. 전날 샤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나빠진 것을 보니 더운 날씨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제주도에 도망 오기 전 날, 제주도에는 한바탕 태풍이 지나갔었다. 내가 도착한 당일에 푸설푸설 내린 비는 전날 큰 태풍이 남기고 간 여운 같은 것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니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지만 다시 여름이 찾아온 것처럼 뜨겁고 더웠다. 이 더운 날씨에 꽉 조이는 아대를 하고 땀을 흘리며 걸으니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문드러졌다. 아직 무릎이 다 낫지 않았지만 피부 상태가 더 심각해 아대를 벗고 걷기로 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걷기 여행이라 제대로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메고 있는 가방 하나에 든 것만으로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가방에 처박혀 있던 양산은 비가 오면 우산으로 해가 뜨거우면 다시 양산으로 썼고, 회사에서 기념품으로 만든 손수건은 햇빛으로부터 내 목을 보호하는데 썼다. 운동화가 아킬레스건을 파고들었을 때는 급하게 사서 붙인 반창고도 뚫어버려 생리대를 반으로 잘라 상처에 붙였다. 그렇게 무식하지만 나름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었다.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다. 회사 워크숍 티에 청바지,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은 맨 얼굴, 바람에 거의 망가지기 직전의 양산을 들고, 땀에 흠뻑 젖어서 절뚝거리며 걸으니 최소 방금 막 노숙자가 된 사람 같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의 내 몰골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나는 그런 몰골을 하고 한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카페에서 의외의 대접을 받았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충전이 급해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음료도 시키지 않고 전기코드를 찾아 헤맷다. 그리고 무사히 충전기를 꽂고 난 후에야 안심하고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나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충전이 다 될 때까지 앉아 있으려면 조금은 천천히 마셨어야 했는데 이미 4시간을 걷고 더위에 탈진 직전이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받아 든 음료를 단숨에 비우자 몇 분 뒤 카페 사장님이 내가 방금 다 마셔버린 커피와 10매짜리 물티슈를 가져다주셨다. 처음에 나는 눈치를 주려고 일부러 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박대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줍게 자랑을 해보자면 나는 꽤 동안이다.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글동글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인데 화장품 하나 찍어 바르지 않으니 현실성을 더한다. 맨투맨티와 청바지는 마치 교복처럼 입고 다녔고, 노트북과 서류 때문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늘 큰 가방이 등에 붙어 있었다. 이런 겉모습만 보고 어리고 돈이 없다 생각하곤 제대로 된 손님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제값을 주고 물건을 사도 물건을 무성히 하게 던질 때도 많았고, 잔돈도 바닥에 떨군 적도 여러 번이었다. 카페에서는 자리를 잡고 앉으면 내가 앉아 있는 근처만 유난히 많이 청소해 빨리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경험이 많았던 탓에 엄마의 잔소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행하곤 했다. ‘화장 좀 하고 다녀라.’, ‘치마 좀 입고 있어 보이게(?) 하고 다녀라.’ 무시당하지 않게 하고 다니라는 의미인 것은 알겠지만 너무 이상했다. 겉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해 무례하게 군 건 저쪽인데, 어째서 내가 고쳐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은 한 가지 정체성만 가지고 있지 않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나’라는 그 자체부터 시작해 집에서는 딸이고, 생물학적으로는 여성, 어딘가에서는 학생이었다가 관객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다. 또 어쩔 땐 매일 아침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이 많은 정체성은 내가 스스로 부여한 정체성도 있지만, 남이 나에게 부여해준 정체성도 있다. 그것은 보이는 것만으로 부여가 될 때도 있고 때로는 현실적 상황에 의해 부여가 되기도 한다.
나를 비정규직이었다. 그리고 일하는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파견직이었다. 나의 근로 형태를 엄마는 아쉬워하셨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게다가 나와 밀접하게 일하는 동료들은 그런 것을 두고 차별을 하거나 거리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까 봐 계속 말 걸기를 해주고,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나를 대신해 더 큰 목소리로 싸워주었다. 하지만 ‘모든’ 동료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팥팥씨는 몰라도 돼요.”
내가 조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일급비밀도 아닌 것에도 낯가림을 했고, 리더가 인정해서 부여받은 역할에도 사람들은 ‘내년에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왜?’라며 의아해했다. 그날 저녁(프롤로그 편) 동료와의 실랑이 이후엔 예상대로 소문이 퍼져 모두가 내 사정을 알게 되고 사람들은 나를 더 거침없이 대했다.
“아! 그래서 팥팥씨는 계속 일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답답해 미치겠네.”
아니 왜 그대가 답답해하냔 말인가?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고, 동정과 연민도 정도가 없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마치 ‘비정규직은 이렇게 대해야 해’라는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비슷하게 말하고 대했다. 한마디로 무례했다.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일을 하는데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없진 않겠지만, 그것이 마치 ‘나’라는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그 정체성 하나 가지고 나를 대했다. 허탈했다. 나에게도 좋고 재미있는 정체성도 많은데, 그 한 가지 정체성을 가장 앞에 떠올리고 나를 바라보니 허탈했다. 또 그 정체성을 대하는 태도에 슬펐다. 나는 내가 ‘비정규직’이어서가 아니라 그 정체성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나를 슬프게 했다.
카페 사장님은 음료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여행 중이시죠? 더운데 충분히 쉬다 가요. 더위 먹으면 남은 여행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순간 ‘아!’하고 속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그곳에서 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색안경을 끼지 않고 볼 수 있는 정체성, 여행자. 나는 그날 이후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틈만 나면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떠났다.
카페에서 충분히 쉬고 다시 걸었다. 다음 목적지는 성산일출봉이었다. 정확히는 성산일출봉 인근에 있는 한방찜질방이었다. 과거 방송작가로 일할 때, 아이템 섭외를 위해 제주도에 대해 자료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 한방찜질방을 알게 되었다. 작고 평범해 보이는 찜질방이지만 그 찜질방을 다녀온 사람은 그 찜질방의 매력에 매료되어 다시 찾는다는 곳이었다. 이미 4년 전에 봤던 자료지만 그 찜질방이 아직 있는지 그리고 그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그렇게 찾아간 찜질방에서 이런 경험하게 되리라곤 예상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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