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닭고기 수프
주방안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방안의 남자들은 나를 빼고는 모두 20대 중후반의 젊은 청년들이다. 주로 힘을 쓰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닭삶기, 닭육수통들기, 피클만들기, 피클통 들여놓기 기타등등 무거운 것, 뜨거운 것,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것들과 관련이 있다. 그들의 젊음과 체력이 부럽다. 아~ 난 저때 저렇게 영리하고, 힘도 세고, 건강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한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고향 출신으로 우두머리 마법사님의 동향 후배들이라고 들었다. 부럽다. 모두 아는 친구들, 꼬꼬마때부터의 동네누나, 형, 동생, 친구들을 서로 알고 수다를 떤다.
그들 중 주방의 3명이 주요한 일을 하고 있고, 그 캐릭터가 서로 구별되어 꼭 한번 적어보고싶었다. 이름은 외자로 바꾸어 적어본다. A, B, C 이렇게 부르기는 좀 무엇해서.
은이라 불리우는 한명은 내 면접을 도맡아 하였고, 일종의 군대에서의 사수역할이랄까, 사부님같은 존재이다. 매우 짧은 머리에 엄청 다혈질적일 듯 했던 첫 모습이었으나, 늘 주방 사람들 하나하나의 불편함과 고충에 대해 귀기울여 해결해주는 모습을 가졌다.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또한 대부분 말이 짧고 투박한 이곳 주방에서 내게 가장 친절하게 일들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 차근 알려주고, 나의 어쳐구니없는 실수에 대해서도 절대 화내지않고, 짜증내지않고 알려주고, 실수한 것을 알게모르게 많이 커버해주는 수호천사이다. 나라면 저렇게 화나고 짜증날만한 상황, 내 몸이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저렇게 대수롭지않은 듯 넘기고, 다른 사람들을 챙겨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속마음이 많이 스트레스받겠다 걱정이 되면서도 늘 모든 일에, 바쁘고 힘들 일 앞에서도 여유로움을 잃지않고 일을 정확히 해내는 능력, 사람들을 통찰하는 능력이 매우 부럽고, 본받고 싶다. 사람들을 다 품어주는 리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매우 좋아하고, 따르는 과묵한 천사형 사부님이지만, 아쉽게도 큰 부상으로 인해 현재는 주방에서 멀어져있다.
연이라 불리우는 다른 한명은 은과 동갑이며, 내게는 까다로운 감독관의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초반부터 어리버리 실수가 많았던 나는 알게모르게 그에게 불편한 느낌과 인상을 많이 주었던 것 같다. 아, 완전 찍혔네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한동안 하고 지냈었다. 하지만 몇 개월을 넘기고 일이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그에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어느날부터 그가 매우 매우 부드러운 태도로 내게 잘 대해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냥 태도만 바뀐 것이 아니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매우 세심하고 관찰력이 좋으며, 챙기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무척 잘 챙겨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불편한 마음을 갖던 초기부터 계속 그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매우 영리하게 일하고, 늘 합리적인 태도를 가지며, 효과적으로 생각하며 일하는 방식을 가졌다는 걸을 알아차렸다. 뭐든지 두 번 일하고, 헛손질을 많이 하는 내게는 무척 따라하고 싶고, 갖추고싶은 능력이다. 지금은 주방에 거의 나오지 못하는 은 대신 나를 매우 챙겨주고, 내 아픈 허리 상황을 항상 배려해주고 있다. 내가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젊은 청년들중 가장 나이가 있는 편인 호는 말이 매우 짧고, 과묵한 편이다. 몇 마디 말을 나누어 보지 못했다. 내가 일을 워낙 못하던 시기에는 나와 합을 맞추어 일하려하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해결하는 쪽을 택하곤 했으나, 이제 그럭저럭 일을 이해하고 실수를 덜하게 되고나니, 어렵지않게 함께 일하게되곤 한다. 호는 매우 뛰어난 재주꾼이다. 어느 날 육수를 뜨는 큰 국자의 손잡이 걸이가 고장나자, 잠시 생각한 뒤, 젓가락을 구부리고, 플라스틱 손잡이를 녹여서 한데 합치더니 화살표모양 국자를 새로 만들어냈다. 말은 쉬운데, 나는 한눈에 그 디자인에 반해버렸다. 정말 상황에 맞는 효율적인 모양이면서 동시에 미적인 감각까지 두루 갖춘 그 모양에 이 사람의 관찰력과 공간지각능력, 창조적인 발상에 감탄해버렸다. 저장고 바닥이 고장나면 철로 된 커다란 육수통을 뜯어내어 못을 박고 다듬어서 바닥을 메꿔버리고, 깨를 뿌리는 통이 불편하다 했더니, 어디선가 철사를 구해서 적절한 손잡이를 만들어 붙이고, 모르고 쭉 사용했던 파전 받침대도 원래 있던게 아니라 그가 직접 만들어 붙인 것이었다. 주방 곳곳에 고장나거나 불편한 것이 있으면 죄다 그의 손길을 거친다. 놀랍다. 손재주라 표현하지만 그 손을 다루는 두뇌가 무척 뛰어난 것이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그와 함께라면 뭐든지 다 만들어내서 살아날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히 헤아리고 품어주는 통솔력, 합리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서 일하는 능력, 세심히 관찰해서 창조적으로 제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으아...
길을 걷는 세 사람. 이 모두에게 내가 배우고싶은 훌륭한 장점들이 있다. 내가 우두머리가 된다면 이 세 사람같은 능력자들을 데리고 일을 하면 무서울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쉽지는 않지만 옆에서 잘 관찰하며 모방이라도 해보고싶다. 훌륭한 마법사 스승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