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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17. 2023

공부 보다 돈?

12년 동안 아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렸을 경우. 보통 아들 둔 엄마들은 사이에서는 이런  공식이 오간다.  


사춘기를 격하게 지냈던 아들도 고2쯤 되면 대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때쯤 되면 모든 아들들이 다 달리기 때문에 열심히 해도 크게 치고 나가긴 어렵다.

그러니까 딱 1년만 먼저 정신 차리면 얼마나 좋았냐고! 


눈치채셨겠지만 돌아 돌아 돌림노래! 결론은, 아들들은 고1 때만 바싹 정신 차리고 달려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기 마련인데, 이노무들 중에 고1 때 정신 차리는 아들은 또 극히 드물다 보니, 결론적으로 이렇게 지나고 하는 말들은 다 쓸데없 말씀이란 말씀! ㅋㅋ


고3 여름방학이 지나도록 아들은 여전히 대학과 학과를 정하지 못했다. 대학은 가고 싶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는. 시험을 잘 보고 싶지만, 대가를 치르기는 귀찮은. 그리고 그건 중학교 때부터 내내 '다음 시험은 잘 볼게'라고 기약하던 아들이 해오던 다짐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 방식이었다. 성적이 별로여도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우리는 대학에 가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를 기어이 대학에 보낼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아들이 고3 여름방학 말미에 살짝 자신 없는 목소리로 "엄마, 나 알바를 해볼까?" 했을 때 나는 속으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죽어도 대학은 가겠다니, 그 결기마저 꺾으면 두고두고 내 탓할까 보아 가만 두고만 보고 있던 터. 하지만 학교에 갔다 오면 내내 침대에 누워 지내다 2~3일에 한번 꼴로 마지못해 스카를 찍고 오는 아들에게서 우리는 이미 마음을 한풀 접은 터였다. 스카에 가서 새벽에 기어 들어오는 아들이 공부를 하는지, 스카에 가서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오는지도 잘 분간되지 않았다. 주말은 어차피 하루종일 집에만 누워 있었으니, 주말에 알바를 한들 공부에 방해받을 일 또한 없었다.


고2 여름방학 때 이미 한번 고깃집 알바를 경험해 본 적 있는 아들은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동네 레스토랑에 알바를 구했다. 고2 아들이 알바를 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우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아들이 3개월쯤 불판을 닦다 보면 "엄마,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하고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3개월 동안 알바를 하고 난 아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평생 알바만 하고 살아도 될 것 같아요."


스스로도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고 싶다고 시작한 알바였으나, 아들은 되려 알바를 하며 자신의 쓸모를 깨달았다. 초등 6년, 중고등학교 만 6년을 내내 공부하는 동안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신의 쓰임을 알바를 하며 발견했다.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는 만큼 고스란히 돈으로 환원되어 통장에 꽂히는 방식에 아들은 환호했다. 그런 아들이 그대로 알바에 주저앉을까 무서워 우리는 그때 서둘러 알바를 그만두게 했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냥 두었다면, 1년간의 경험이 지금쯤 아들에게 무언가 교훈이 될 수도 있었을까. 그랬다면 아들은 우리의 바람처럼  지금이라도 학생의 소임인 공부로 돌아왔을까.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궁금한 것은 왜 아들이 12년이 넘는 학교 생활 중에 어느 과목 하나에도 흥미를 못 느꼈을까 하는 점이다. 는 늘 아들에게 재밌는 과목에 대해 물었지만, 아들은 체육 빼고는 좋아하는 과목이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정해준 빡빡한 스케줄, 영문도 모르고 하는 공부가 아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아이의 미래만큼은 부모인 내가 함부로 재단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들은 머리가 좋고 배우는 감이 좋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노출 되다보면 당연히 어느 과목 하나에는 흥미를 붙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유'가 오히려 아들에게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선택압으로 작용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몇 안 되는 진지한 대화 중에서 아들이 일관되게 표현한 욕망은 오로지 '돈'이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 남편과 나 모두 명품을 걸치고 다닐 정도는 아니어도, 아이들 원하는 학원 정도는 보내줄 만큼의 형편은 되었다. 나이키 운동화와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정도는 사입히며 키웠다. 아이들에게 엄카를 쥐어 주고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것은 늘 아끼지 말고 사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도 도대체 아들은 왜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돈'에 대한 욕망 밖에 배우지 못한 것일까.


나는 그게 여전히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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