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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18. 2023

엄마, 너무 재밌어!

내 아들은 히키코모리가 아니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 배는 안 고프고?"

"응, 이거 저거 주워 먹어서 배 안 고파요."

"알았다~ 고생했어. 쉬어~"




요즘 저녁마다 아들의 이 "다녀왔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생기에 넘치는지. 내가 다 살 것 같다.


3개월 경력자답게 아들은 알바를 시작하자마자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5개월 된 선임자 보다 감이 좋고 빠릿빠릿하다며, 매니저님께서 벌써 영입 제안까지 하셨다고 한다. 졸업하고 대학 갈 거 아니면, 여기서 함께 일하자고.


"엄마, 식전 빵 배식하는 게 이게 진짜 어렵거든. 자잘하게 신경 쓸 게 많아서 다들 잘 안 하려고 하는 거야."

"식전 빵이 뭐가 어렵냐? 그냥 사람들 들어오는 데로 깔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고. 여긴 보통 사람들이 대기 탔다가 들어오는 데다가 테이블도 많잖아. 들어오는 순서 잘 봐가면서 차례로 나가고 빵 떨어지기 전에 화덕에 딱 맞춰 주문도 넣어야 된단 말이야. 먼저 온 사람보다 늦게 온 사람한테 먼저 나가면 바로 항의 들어온다고!"  


그래. 서빙이라면 네가 내 선배지. 나도 젊었을 때 알바를 꽤 해봤는데, 생각해 보니 서빙 알바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때도 성격상 사람 상대하는 일은 좀 피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들은 몇 주 안 돼서 주중 대타까지 뛰게 되었다. 주중 알바를 몇 번 뛰었더니 격주로 들어오던 알바비 뒷자리에 0이 하나 더 붙었다. 아들의 얼굴은 갈수록 희색을 띠었다.


"야, 너 근데 일하느라 안 힘들어? 아침에 9시 반에 나가서 밤 9시 반에 들어오잖아. 무려 12시간이라고!"

"아니~ 전혀! 엄마, 너무 재밌어."


매일 침대에서 누워만 있던 아들, 도로에서 차만 좀 막혀도 집에 들어오면 피곤해 죽겠다고 바로 침대에 엎어지던 아들이었다. 근데 그 아들이 지금 "너무 재밌어"를 연발하고 있다. 사실 일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라고 했다. 풀타임으로 뛰면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이었다. 이곳은 빌 새 없이 테이블이 채워지는 우리 동네 핫 플레이스. 일이 힘들어서 시급도 13000원이 넘었다. 근데 일은 '빡세서' 힘들다가도 아는 사람이 찾아오면 그게 너무 반가워서 힘이 난다고 했다. 아니, 반갑다를 넘어서, 그게 너무 재밌단다.   


"엄마, 오늘은 초등학교 때 같이 영어방과후 하던 여자애가 엄마랑 같이 왔더라고. 근데 인사했는데 날 못 알아보더라? 그래서 마스크 벗고 다시 인사했지."


초등학교 때 알던 애가 당연히 성인 문턱에서 여드름을 애매하게 걸친 아들의 얼굴을 알아볼 리 없건만, 아들은 기어이 마스크까지 벗으며 자기를 각인시켰다. 어제 저녁엔 학교 선생님이 오셔서 너무 재밌었고, 오늘은 같은 동 사는 친구가 엄마랑 같이 저녁을 먹으러 와서 재밌고, 내일은 중국에 공부하러 갔다 잠깐 들어온 친구한테 자기가 밥을 사주기로 해서 재밌을 거 같다고 했다. 정말 이상한 아들이었다.


아들이 맨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이나 하고, 대학은 가야 될 거 같은데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를 때. 나는 내 아들이 이대로 평생 방안에 처박혀 엄마 등꼴이나 파먹는 히키코모리가 될 까봐, 그게 너무 무서웠다. 한국판 히키코모리를 심층 취재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사십이 넘은 멀쩡한 아들이 엄마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4년제 대학을 나와 한 때 백방으로 입사원서를 넣어보기도 했던 그 아들은, 잠시 중소기업에 다녔지만 그만두고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알바를 몇번 해보기도 했지만 왠지 그건 자기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몸은 어디 가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정도는 될 만큼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 흔한 알바 하나 하지 않고 집에서 놀고 있었다. 생의 어디쯤에서 '핀트'를 놓쳐 버린 것 같았다.


화면 속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공부가 전부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좀 더 재미있었을지도 모를 그의 인생에 대해 상상했다. '공부'라는 한 방향이 아니면 어쩌면 우리 모두 좀 더 일찍 행복했을 지도 모를 그 어떤 사회를 상상했다. 내 아들은 히키코모리가 아니었다. 그저 잠시 핀트를 잘못 맞췄던 어린 아이일 뿐.


게다가 이제 고작 열아홉 살이 아닌가!

지금으로선 이 사실 만으로도 내게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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