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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09. 2023

당신에게는 변치 않는 당신이 언제나 존재하고

인간 안에 존재하는 외피, 3편

 나는 저명한 심리학자들이 설파한 자아 통합이나 개성화 과정을 내가 거치고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좀 편해져서 좋을 뿐입니다. 어제 것과 아주 다른 얼굴로 거울 앞에 서 있는 나에게 왜냐고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내가 전보다 좋고 편합니다. 전에는 기를 쓰고 부정하던 내 안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잘 개켜 한쪽에 정돈해 놓는 내가.  


 나는 모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진짜 나인지. 그런데 이제는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나는 존재하는 것들을 단지 존재하는 것들로 보고 싶을 뿐입니다. 시간이 모든 존재들의 진위를 가려 주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그러거나 죽음이 그러거나 상관없습니다.  


 나는 그냥 내가 나로 존재할 때 최대한 나답기 위해 애쓰고 싶을 뿐입니다. 타자가 타자로 존재할 때 그도 최대한 자기답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믿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게 계속 살고 싶습니다. 문득문득 인간의 외피에 관해 생각하면서도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순간순간 온전하게 생생하게 존재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이것도 저것도 내가 가진 것들인 이상 내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매 순간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근거로 내가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정의해 봤자 그 이름이 한 계절도 못 가 유효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판단하는 일보다는 나로 살아가는 일에 더 몰두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겠습니다. 가진 것은 수시로 변하니 소유로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은 덧없고 인간 내면에 항구하게 존재하는 무언가는 구태여 입증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삶이 허락하는 한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내 존재를 잘 길러 나아가게 하는 일에 몰입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인간의 겉만 보고 인간의 안까지 가늠하는 이들로 신물이 날 때 이 편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 보세요. 그런 사람들한테 주의를 빼앗기는 것이 얼마나 큰 낭비인지 이곳에서 다시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당신에게 몇 개의 겹이 있건 그게 어떤 것들이건 당신에게는 변치 않는 당신이 언제나 존재하고 그 불변의 핵심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조류일 뿐입니다. 흘러갈 물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서 우리가 번번이 도달해야 할 마지막 문장은 이것 아니겠습니까(끝).  




박이로운


1992년 출생. 문학서와 인문서를 주로 발간하는 어떤 마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70여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영남대학교 환경보건대학원에서 미술치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마음을 건강하게 다루며 살아가는 일, 소외된 이들의 서사를 들리는 목소리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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