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안에 존재하는 외피, 2편
문득 껍질과 속살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껍질은 처음부터 껍질이었을까요. 속살이 외부에 닿고 닳아 굳어진 것이 껍질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별안간 듭니다. 껍질과 속살의 모양과 질감, 밀도는 다르지만 그 둘의 성질은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껍질과 속살은 인간 내면의 껍질과 속살을 의미합니다.
내가 일부러 드러내 놓은 것도 내 마음의 껍질이 될 수 있지만 내가 의도치 않게 드러낸 것도 내 마음의 껍질이 될 수 있겠죠. 그게 정말 가능하다면 내년에는 내 마음의 껍질을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고 싶습니다. 속살이었던 것을 껍질로 만드는 데 시간이 꽤 들긴 하겠죠. 무른 부분이 거칠고 예리한 무언가에 세게 부딪칠 때는 낯선 고통을 느끼기도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그 일이 가능하다면 그 일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똑같은 마음만 세상에 보여주고 산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잘못은 아니지만 그러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꼭 이다음 생에서만 다른 인생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보여주기 쉬운 것만 세상에 내놓지 말고 잘 내비치지 않던 것, 좋아하긴 한데 내심 어렵거나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도 세상에 꺼내 놓으며 살아 보고 싶습니다. 그런 걸 안 한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요. 그런 행동을 한다고 크게 잃을 것도 없는데. 그리고 그런 행동 때문에 내가 잃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원래 내 것이 아니었겠죠. 내가 가진 외피의 것이었지 진짜 내 것은 아니었겠습니다.
야트막하던 겨울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겹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겹과 겹, 그 겹과 겹 사이에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겹을 생각합니다. 요즘은 그런 것들을 생각해도 마구 어지럽지 않습니다. 내 안에 아무리 많은 겹들이 생겨도 나에게 나는 그냥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전심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살아갈수록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그냥 다 내 것 같을까요. 그렇게 싫어서 버리고 싶던 가면들을 태연히 외피라고 부르질 않나(3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이로운
1992년 출생. 문학서와 인문서를 주로 발간하는 어떤 마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70여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영남대학교 환경보건대학원에서 미술치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마음을 건강하게 다루며 살아가는 일, 소외된 이들의 서사를 들리는 목소리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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