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과연 몇 개의 외피가 있을까. 간혹 그 질문을 우물거리며 아무 데로나 걷습니다. 집 근처 주택가에서 열린 창문 개수를 세며 걷기도 하고요. 날벌레가 별로 없는 초봄이나 늦가을에는 강변 산책로로 나가 뛰듯이 빠르게 걷기도 하고요. 답을 얻으려고 그러는 건 아닌데 그렇게 바지런히 걸으며 그 질문을 곱씹다 보면 번번이 어떤 해답을 갖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외피들이 있다.’
‘인간에게는 딱 하나이지만 때마다 그 모양을 달리하는 신출귀몰한 외피가 있다.’
‘인간에게 사실은 외피가 없다. 그런 게 있다고 다들 착각할 뿐이다. 모든 게 자기 속살일 뿐이다.’
해답은 정답이 아니라 일종의 답안일 뿐이라 내가 그 해답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여전히 내 안의 거대한 물음표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해답도 어떤 답이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있으면 내 안에 제아무리 커다란 물음표가 있어도 그 무게를 버티고 있기가 좀 수월해지고요. 재미나죠. 그게 정답도 아닌데 그걸 가지고 있으면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의문에서 얼마간 자유로워진다는 게. 정답이 무조건 인간을 구원하는 게 아니고 오답일지도 모르는 대답이 때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게 참 그래요. 그렇다는 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참 그래요.
당신한테 인간의 외피는 뭔가요. 아니 그게 당신 세계에서도 인정되는 것인지 아닌지 먼저 물어야겠죠. 당신은 인간이 어떤 외피를 그러니까 육신의 살가죽이 아닌 존재 자체를 둘러싼 어떤 거죽을 지녔다고 생각하나요.
뭇사람들은 인간의 외피를 인간의 가면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가면이라는 단어가 지닌 어감보다는 외피라는 단어가 지닌 어감이 좀 더 좋아서 그리고 인간이 불현듯 다른 얼굴을 보이는 일이 꼭 가짜 얼굴을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인간의 가면을 그냥 인간의 외피라고 부릅니다. 가면이나 외피나 그게 그거 같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그게 그거라고 할 수 없겠더라고요. 가면은 가짜인 것이지만 외피는 가짜인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인간 존재의 둘레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명명하는 방식의 차이는 꽤 많은 것들에 대한 판단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인간이 여러 가지 자기 얼굴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과 인간은 반드시 하나의 동일한 얼굴만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예기지 못한 변수가 세상을 흔들 때 판이하게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대부분의 변수들이 인간들로 하여금 어떤 이면을 드러내게 하는 까닭입니다. 그 이면이 거짓된 거라고 믿는 사람과 그 또한 참된 거라고 믿는 사람은 때로 완벽하게 반대로 행동합니다. 분노나 혐오가 인간을 이끄는 곳과 존중과 인정이 인간을 이끄는 곳은 때로 대척점에 위치해 있어서(2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이로운
1992년 출생. 문학서와 인문서를 주로 발간하는 어떤 마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70여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영남대학교 환경보건대학원에서 미술치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마음을 건강하게 다루며 살아가는 일, 소외된 이들의 서사를 들리는 목소리로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