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안에서 흩어지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흩어져 관계에 도움 되는 것도 있고 흩어져 관계의 지반을 약화시키는 것도 있고 흩어지며 그 어느 곳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있네요. 흩어진 약속 흩어진 감정 흩어진 기준 흩어진 열망 흩어진 온기 흩어진 욕심 흩어진 기대 흩어진 편견 흩어진 고정 관념 흩어진 관심 흩어진 조바심 흩어진 질투심 흩어진 경쟁심 흩어진 동료애 흩어진 애틋함 흩어진 조심성 흩어진 시선 흩어진 긴장감 흩어진 배려심 흩어진 진중함 흩어진 진실성 흩어진 신뢰감 흩어진 배신감 흩어진 억울함 흩어진 기억 흩어진 대화 흩어진 호의 흩어진 미소 흩어진 목적 흩어진 적의 흩어진 취향 흩어진 안정감 흩어진 고립감 흩어진 포용성 흩어진 개인주의 흩어진 판단 흩어진 흉터 따위를 생각합니다.
관계 안에서 매일 어떤 것들은 흩어지고 어떤 것들은 결합하고 어떤 것들은 선명해지고 어떤 것들은 흐려지며 어떤 것들은 비대해지고 어떤 것들은 축소됩니다. 그 미세하지만 점진적이고 끊임 없는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대개 타자를 비롯한 온 생명을 온정적으로 대하는 섬세한 사람들입니다.
선천적으로 섬세한 사람도 있지만 사람이 너무 좋아서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사는 동안 차츰 차츰 섬세해진 사람도 있는데요. 무딘 것과 세밀한 것 중 한 가지 특성만 갖고 살아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치밀한 사람인 채로 살고 싶습니다. 신경 쓰이는 게 너무 많아 간혹 사는 일에 넌더리가 나도 더 많은 것들을 챙기고 돌볼 수 있는 삶을 가지는 편이 좋은 겁니다. 퍼 주기만 하다 분기마다 고갈되는 삶을 가지고 싶은 건 아니고 그럴 만큼 내가 선량한 것도 아니라서 나에게 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한 문제입니다.
당신은 어느 편이 더 좋은가요?
얼마 전 한 관계를 이만 끝냈습니다. 그 관계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 지 수년이 되었는데 함께한 긴긴 세월 때문에 과거 고마웠던 기억 때문에 그 관계를 쉽게 처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가 내 시간, 내 정신력, 내 지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관계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지 10년쯤 되었네요. 그 친구와 통화하거나 그 친구를 만나고 나면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신열이 올라 최소 반나절은 앓았는데요. 그럼에도 내가 그 친구 연락을 피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때껏 내 친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면 그 친구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나는 그 친구의 일방적인 하소연을 매양 인내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에 대한 그 친구 태도는 가볍고 얄팍해지기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친구 전화를 받았을 때 그 친구는 내 파탄 난 집안 사정을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비로소 결심했습니다. 이제 다 그만두어야 되겠다고.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이미 선연히 존재했던 생각들을 이만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친구도 무엇도 아닌 거라고.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여긴 붙들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그 친구 삶에 관해 모르는 것이 거의 없는데 그 친구는 내 직업이 정확히 뭔지도 모릅니다. 내 취미도 모르고 내 식성도 모르고 내가 화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모릅니다. 한 번도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내 앞에 자기 삶을 부려 놓기 바빠서. 그런 사실들을 모처럼 곱씹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너무 바보 같았습니다.
믿을 걸 믿었어야지.
모든 게 그 친구 잘못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그냥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 관계가 무효하다는 걸 내가 받아들이는 데 10년이 걸렸던 겁니다. 정말 믿어져서 그 관계를 믿은 게 아니라 믿고 싶어 그 관계를 믿은 거니 내 쪽에도 문제가 있었던 거죠. 나는 일종의 공모자였던 겁니다.
나는 담담하고 온건하게 이별을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사과하며 사실 자기도 자기 문제를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습니다. 유일하게 고통스러운 점은 내가 그 말을 조금도 믿지 못했단 겁니다. 그 친구가 여전히 자기 문제를 모르고 있을 거라 여겼던 겁니다. 자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한 사람은 조금이라도 변하니까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동요 없는 이별은 서른 몇 해 내 인생 가운데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그건 격동 없는 이별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저 먼 과거 나도 그 친구도 모르는 사이 우리 이별은 일어났고 나는 그때 내 몫의 동요를 다 치러 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쩍쩍 갈라지게 마르고 생기 하나 느낄 수 없는 이별을 나는 뒤늦게 발음했습니다.
잘 지내.
그 친구가 정말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만큼 잘 지냈으면 하고요. 후회 없습니다. 잘해 주고 싶은 사람한테 온 힘 다해 잘해 줬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나를 상하게 하는데도 그 친구가 내미는 손은 무조건 잡아 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훼손하면서까지 누구한테 잘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런 희생도 감당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요. 일방적인 의지, 일방적인 이용, 일방적인 부탁과 호소만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피하고 싶은 겁니다.
그 친구는 우리 이별을 성장의 양분 삼겠다고 했는데 나에게 우리 이별은 내 성장의 부분적인 증거입니다. 그래서 나는 기쁩니다. 그 친구와 헤어져 기쁩니다. 얼추 좋은 이별 같습니다. 인정 욕구에 휘말리거나 낮은 자존감에 시달려 원치 않는 요구에도 묵묵히 응하던 과거의 내가 흩어진 게 느껴져 나는 기쁩니다.
관계 안에서 흩어지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사이에서는 어떤 것들이 흩어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