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타자의 첫인상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너무 포괄적인 질문인가?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당신은 누군가의 첫인상을 계속 믿는 편 또는 믿고 싶어 하는 편인가요?
나는 사람의 첫인상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원래도 좀 그런 편이었는데요. 진짜 얼굴보다 더 실감 나게 생긴 가면 쓰고 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희롱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겪고 난 뒤로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뭘 믿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는 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는 마음 먼저 품고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이 된 게 조금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어떡하나요. 너무 순진하면 너무 다치고 마는데.
섣불리 다 믿어 공연히 온 데 다치는 게 전적인 내 손해라는 걸 지겹게 잘 알아도 어느 때는 15분 전에 만난 사람을 너무 믿고 싶어집니다. 저렇게 웃는 사람은 절대 사람의 등을 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사람한테 내 정신의 해저를 모조리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굳이 억누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아름답기만 한 순간 속에서 실컷 출렁거리며 이것도 흘리고 싶고 저것도 흘리고 싶습니다. 가면을 제때 집어 드는 일이 아직은 마냥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계속 시도합니다. 저 사람이 정말 나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과 내 관계에서 내가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하던 대로 계속 신중해집니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내 진면목을 당장 보여주지 않는 일에서 희미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가면 쓰는 게 순전한 기망이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디에서건 100% 진짜만을 내밀고 살아가는 일이 때로는 자해 같고요. 가면 안 쓰고 다니다 얼굴을 너무 많이 다쳐 자기조차 자기 얼굴을 못 알아보게 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면만 쓰고 다니다 자기 얼굴을 제일 먼저 잊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지만요. 이 문제에서도 결국 적당한 게 관건이네요. 그 알맞은 지점을 당신은 찾았나요. 나는 아직 그 부근 어딘가에서 서성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나는 신뢰가 어느 정도 확보된 곳에 있을 때만 내 진짜 얼굴, 심정의 민낯을 드러내 놓습니다. 낯선 이들 가운데 있을 때는 일단 가장 보편적인 얼굴,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모습을 내보이며 여러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관찰합니다. 당장 내 눈에 보이고 내 귀에 들리는 게 그 사람들 전모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드문드문 자기 실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사람 관찰하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가면 너머를 주시하는 일도 성실하게 하지만 가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가면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일도 열심히 합니다. 왜 그 사람이 하필 그런 가면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가면은 곧 방패이고 보상 기제이지 않습니까. 결국 내가 나를 가리는 데 쓰는 도구마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어디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인지 드러내 주는 지표가 된다는 겁니다. 사실은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뭘 감추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래도 실전에서 조심해 나쁠 것 없죠.
가끔 나처럼 사람 얼굴의 겉과 안을 끊임없이 번갈아 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드물게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에게 내 얼굴 안쪽의 안쪽의 안쪽의 안쪽에 있는 형이상적인 무언가를 몰래 보여주게 되는데요. 운이 좋으면 그 사람 얼굴 안쪽의 안쪽의 안쪽의 안쪽에 있는 어떤 본질적인 관념 그러니까 어떤 원형原型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런 걸 서로에게 보여주었다고 그 사람과 내가 영원히 잘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걸 나눈 사이가 그렇지 않은 사이에 비해 훨씬 견고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겠다고 그런 걸 서로에게 보여주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나는 누가 확실히 미더우면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다른 차원을 그 사람 앞에 열어 놓습니다. 아니 그게 그냥 저절로 열려 버립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누구를 당신의 심연으로 초대하나요. 나는 당신 세계의 어디쯤 있는 사람입니까(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