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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23. 2019

나를 견뎌 준 이들에 대한 감사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상대하는 화두는 ‘견딤’이다. 견딘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어려운 환경이나 상황 따위에 굴하지 않고 버티는 것. 둘째, 외부의 어떤 작용에도 불구하고 대상이 그것의 원래 모양, 상태 등을 유지하는 것. 견딤과 비슷한 단어로는 감당(堪當)이 있다. 이것은 견딜 감(堪)을 포함하는 단어인데 ‘일 따위를 맡아서 능히 해내는 것’, ‘능히 견뎌 내는 것’을 의미한다.


‘견딤’이라는 화두는 아주 느닷없이 나에게 왔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기간 동안 다양한 수준으로 나를 견뎌 주었다는 자각이 불현듯 일어나 내 어깨에 힘을 실었다. 그 자각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어째서 어떤 사실들은 너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내 시야에 잡히지 않는 걸까. 급습처럼 나에게로 오더니, 그 속도 그대로 나를 찧어 넘어뜨리는 사실들.  


아무튼 그 찰나적인 자각을 계기로, 나는 내 전반적인 과거를 둘러보았다. 견디기가 따르지 않는 일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일이 모든 순간 우리의 마음처럼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여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면서 뭔가를 그저 감당해야만 하는 시간을 겪어야 했다. 어려움이나 도전이라고 느껴지는 것을 견뎌야 했다. 그 일을 계속 하려면. 누군가를 계속 만나려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납득되지 않는 뭔가를 눈앞에 두고도, 다리를 꼿꼿하게 펴고 서 있는 날들을 보내야 했다. 힘없이 돌아서지 않고. 마음의 모양, 상태를 바꾸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견뎌 주었다는 깨우침이 처음에는 나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뭘 잘못해서 누군가가 나로 인해 고통 받았다는 식으로만 그 깨우침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만. 그 편협한 해석은 인간관계에 대한 내 자신감의 뿌리를 다치게 만들었다. 그런 종류의 해석이 끝내 다다르는 곳은 한 군데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도 만나선 안 되는 사람인 걸까. 어쩌면 나는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인지도…….”    

 

물론 나는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종류의 잘못을 저질렀다. 그런 순간들 속에는 분명한 나의 허물이 있다. 하지만 나를 견딘 모든 사람들이 내 허물 때문에 나를 견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들과 달라서 나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거기에 대한 이해가 손쉽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견뎠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누가 나를 견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엄밀히 따져 보면, 누군가의 잘못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은 거의 없었다. 있긴 있어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내가 누군가를 견뎌야 했던 대부분의 경우, 나는 상대의 잘못을 인내한 게 아니었다. 그게 잘못이라고 느낄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잘못이 아니었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주로 견뎌야 했던 건, 상대와 나의 불일치였다. 우리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심지어 우리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 우리는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우리는 각자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임한다는 사실. 우리는 각기 다른 접근법으로 인생에 다가간다는 사실. 우리는 동일하지 않은 인생 목적을 각자의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내가 나라서 나답게 살아가는 것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죄가 아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상대가 나를 견딘 것 가지고 내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런 문제에서 내가 정말 느껴야 하는 것은 감사였다.

 

본인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내가 문득문득 불편할 만도 한데, 그런 나를 차분히 이해하며 내 곁에서 오래 걸어 준 사람들. 그들에게 나는 고마워해야 했다. 그건 무엇으로도 값을 매기기 힘든 감내일 것이기에.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 나와 다른 것들을 냉담하게 밀어냈던가. 그 점을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내 모든 삶에 미소를 보내 준 이들의 관용은 결코 사소한 것일 수 없었다. 오히려 눈물겹게 대단하고 커다란 것이었다.      


내 방식을 앞세우지 않고 상대의 방식을 뒤로 밀치지도 않는 관대함. 상대가 자신의 방식을 나에게 강요해도, 상대와 다투지 않고 나의 방식을 여유롭게 지켜 낼 수 있는 천진한 끈기. 그 관대함과 끈기의 자리 앞에 나는 서 있다. ‘견딤’이라는 화두가 결국 나를 이르게 한 곳이다. 


나처럼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은 이것을 모른다.” 하지 않고 “그 사람은 저것을 안다.” 할 수 있는 너그러움. 그 너그러움의 조각들을 부지런히 주워 모아 내 안에 새로운 집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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