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선시대 최고의 풍류인이자 시와 예술의 천재 안평대군은 가야금 연주가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안평대군은 음악기보집인 '정간보'를 창안하고 박연과 함께 아악을 정비하고 온갖 악기를 다룰 줄 알았던 아버지 세종대왕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자신도 수많은 연주를 접했건만 방금 한 기녀의 가야금 연주는 태어나 처음 듣는 천상의 연주라는 생각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기녀의 손가락은 가야금의 줄을 부드럽게 타고 지나가며 마치 세상의 슬픔과 기쁨을 담아내는 듯했다. 깊은 산속의 호수처럼 맑고 고요한 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떨리며 나무들도 고개를 숙였다. 그 음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마치 천상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그리고 가야금의 연주가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무계정사를 감싸고 있는 숲 속 나무 사이로 스치 지나갔는데 안평 대군의 귀에는 그것이 마치 천상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처럼 들렸었다. 안평대군이 이 무계정사를 자신의 은신처로 정한 이유가 꿈에 보았던 도원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였는데 그런 이 무계정사에서 가야금 연주를 들으니 자신이 있는 이 무계정사가 꿈속에서 보았던 실제의 도원이 된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자신과 달리 문종 즉위 후에도 궁궐에 연연하는 수양대군 때문에 난처해하실 아버지 세종대왕의 고초를 알고 있는 안평대군의 울적한 마음이 한순간에 가야금 연주로 날아가 버렸다.
"참으로 듣고 들어도 아름다운 가락이로다."
안평대군은 자리에 다시 앉고는 가야금 연주를 마친 어린 기녀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정녕 자네가 바라는 소원은 '몽유도원도'밖에 없느냐?"
"그러하옵니다. 나으리."
사실 안평대군은 화가 안견을 통해 자신의 꿈을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를 어디엔가 숨겨놓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꿈은 단순한 무릉도원의 꿈이지만 자신 같은 왕자가 임금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상향에 몽유했다는 꿈은 해몽하기에 따라 문제를 야기할 여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태종시대 때 한양에 사는 한 백성이 태종의 옛 친구이자 개국공신이었던 정승 이무가 임금이 된 꿈을 꾸고 그 꿈 이야기를 동네 사람에게 발설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소문으로 퍼지면서 '이무가 왕이 된다'는 말이 되어 이무는 실제로 참수되고 꿈을 꾼 사람은 물론 그 꿈이야기를 발설한 사람모두 참형에 처해진 일이 일어났었다.
태종은 태종실록에 이렇게 말했다
'꿈에서 하는 짓은 혹은 하늘에도 오르고 혹은 공중에도 날고 하니 허탄 허망하여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꿈에 큰일을 보고 남과 말을 했으니 이것이 죄다!'
-태종실록 1410 7월 4일
안평대군의 주위에는 친한 벗들이 많았었는데 다들 한결같이 이런 말을 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낮에 한 일을 밤에 꿈으로 꾼다'라고 했으니 평소 이러한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이러한 꿈을 꾸었겠습니까? 실제로 역적으로 몰릴 만한 꿈을 꾸었어도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마땅히 두려워하여 감히 발설하지 말았어야 할 것인데 발설했으니 그게 대역죄가 되는 것입니다. '
꿈을 그린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닌데.... 특히 자신이 왕의 후손으로서 꿈을 그려서 남길 때는 신중에 신중을 가했어야 했었는데.... 안평대군은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견을 시켜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하고 그림을 본 자신의 벗 22명에게 찬문을 쓰게 하게 한 이유는 아바마마 세종대왕께서는 꿈에 대해서 열린 태도를 가지셨고 자신은 왕의 자리는 꿈도 꾸지 않는다는 의지를 드러내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저 무릉도원 같은 곳에서 남은 여생을 시와 글을 쓰며 보내고 싶다는 뜻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자신의 꿈을 그리게 한 것이다
안평대군은 오랫동안 침묵한 뒤 기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내일 새벽에 자네가 떠나는 길에 몽유도원도를 가지고 갈 수 있게 다 조치해 두었으니 너무 심려치 말라. 그나저나 또 한곡 부탁해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나으리"
기녀는 다시 자세를 잡은 뒤 가야금 연주를 시작했다.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안평대군은 술잔을 들어 눈을 감고 천천히 음악을 안주 삼아 술을 들이켰다. 취기가 돌자 자신이 홍진을 떠나 도원에 은거하겠다는 결단을 열렬히 지원해 주고 '도원도'그림을 보고 쓴 박연의 찬양 시가 생각났다.
깊은 뜻있는 아름다운 꿈은
반드시 징험이 있으리니
황제의 화서지몽 이상향은
가히 믿을 만한 이야기이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형황이 베개 맡 꿈속에서
부암으로 가지 않고 무협으로 향했음을
그대는 또한 알지 못하는가?
장자가 병풍 아래 꿈속에서
조공을 흠모하지 않고
호랑나비를 그리워했음을
비심은 진실로 들판에 나간 뒤에야
문장이 아름다워졌고
자천은 거문고를 타기만 했는데
정사는 저절로 다스려졌다네
초연히 물외로 나아가
성정을 기쁘게 지니니
참으로 커다란 저울대가
절로 그 가운데 있다네
쉽사리 그림을 논하지 말지니
내 이제 눈 크게 뜨고
천지의 편안함을 보리라
끼익..
이른 새벽, 한적한 곳에 위치한 무계정사의 정문 열렸다.
문이 열리자 검은 천으로 온몸을 두른 하늘과 몽유도원도를 담은 수레가 나타났다
하늘을 태운 말과 수레는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아 이제 다 끝난 것인가
수면 DNA지도의 기초가 되는 몽유도원도를 찾아 조선시대까지 시간여행을 오게 된 하늘은 임무가 다 끝났다는 생각과 그동안 인간계와 수면계의 균형을 잡기 위해 자신이 했던 노력이 결국 결실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자 허무함이 막 밀려왔다. 그러다가 안평대군이 나중에 역적으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또한 하늘의 마음이 미어져 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잠시지만 자신을 대하는 안평대군의 사람됨에 깊은 존경심을 느꼈었다.
알려드렸어도 자신의 자리는 떠나지 않으셨을 거야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영혼의 숙제들을 미뤄두고 얼마나 허황된 것을 쫓아 시간을 낭비하는가.
자신을 진정으로 구원할 수많은 기회들을 인간들의 역사들을 통해 무수히 전달되었음에도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지....
어차피 인간들이나 수면계의 존재들에게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는 것이다.
조물주의 편이냐 악마족의 편이냐. 이 두 가지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존재의 근원이 바로 조물주이기 때문이다
음수사원 굴정지인 飮水思源 掘井之人
물을 마실 때에는 그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수많은 길이 존재한다고 혹은 다윈 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후에는 타인의 마음속에 간직된다는 둥의 거짓말은
말초신경을 자극시키는 주식게임을 한답시고 함부로 수면 DNA지도를 만든 인간들과 함께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