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

by 하루살이

산을 오르다 보면 운동량이 부족한 몸뚱이 곳곳에서 금세 삐거덕거리며 신호를 보내온다. 머리끝에서 시작해등줄기를 지나 온몸에 땀이 흘러내리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에 맞춰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곤 한다. 십여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걸어온 발자국을 따라 고대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찾아온 수고가 아까워 망설여진다. 그러다가 나를 제쳐두고 올라가는 어린아이들이나 또래를 보기라도 하면 비루한 자존심을 지킬 요량으로 꾸역꾸역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이 아깝고 귀해서 신중한 걸음을 말이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 보면 반대편에서 오는, 나를 스쳐지나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들이 눈에 찬다. 저 사람들은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길일까. 아니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일까. 사정이야 어찌 됐든 부러운 건 매한가지고, 괜한 일을 벌여 산을 오르는 나를 탓할 수밖에. 호젓하게 봄 경치를 걸으려던 계획은 진즉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들이 편해 보여서 그런지, 내가 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 힘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도. 이래저래 목표는 사라진지 오래고 가던 길이니 체념하고 그냥 걷는데, 그러다 앞을 보니 구불구불 오르막이 내 험난한 인생이랑 비슷한 것도 같다.


산을 인생에 비유하면, 나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살고 싶었다. 치열하게 산 적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진 못 하겠으나 언제나 그 끝에는 편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부귀영화도 명예도 아닌 평온한 휴식 말이다. 졸리면 잠을 자고, 다리가 지치면 쉬고, 벚꽃이 만개하면 또 거기에 머물고. 그러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오면 반기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가고. 그런 게 부러워 내리막을 걷는 사람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내가 걷는 오르막보다는 편해 보였으니까. 그게 마냥 부러웠다.


나는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연례행사로 산에 가면서도 정상에 닿기도 전에 내려갈 궁리만 하지만, 등산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올라가는 것을 즐거이 여긴단다. 조지 말로리의 ‘산이 그곳에 있어서 오른다’는 말처럼 자기만의 이유를 등에 메고서 말이다. 그러나 이유나 목적을 차치하고서도 나에게 산을 올라가는 행위는 고통에 불과하다. 막상 내려가는 것 또한 힘이 들고 지치는 것임을 알면서도. 산다는 것 역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삶 그 자체로 힘든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며 왜 내리막을 살자고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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