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혼자 살겠다고 집을 나왔다. 어려서 했던 가출과는 다르다면서, 걱정하는 부모님을 달랬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짐을 꾸리는데, 사실은 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모든 순간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들었다. 차라리 계속 부모님의 그늘에 얹혀산다면 자잘한 스트레스야 있겠지만 몸은 편할 테지. 가끔 하는 잔소리에 귀를 막고 틀어박혀 있으면 곧 그치겠지. 여유롭게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살아도 괜찮겠지.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 집을 나왔다.
짐을 다 풀어내는데 반년이 걸렸다. 회사를 다녔지만 바빠서는 아니었던 거 같다. 내 집이라고 생각지 않은 기묘한 공간에 살짝 기대고만 있었다. 정말 살아야 하는 물건만 간신히 내놓고는, 장기 여행이라도 온 사람인 양 언제고 떠날 것처럼 굴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내 집은 나를 포근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우린 서로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살고 싶은 집이 있다.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탓에 나는 종종 미래의 집을 머릿속에 그리곤 했는데, 망상이 오랜 동안 공들여지어놓은 집은 어느새 엄청나게 부풀어 화려해졌다. 조용히 책에 파묻혀 시간을 잊을 정도의 커다란 서재, 아무리 음악을 크게 틀어도 이웃집에 피해가 가지 않는 음악 감상실, 그리고 너무 포근해서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을 것 같은 따뜻한 침대. 나는 망상과 지금의 공간을 일일이 비교해가며 살기 싫은 이유를 만들었던 것도 같다. 살고 있는 건 현재인데 나중에 언젠가 살아볼지 모르는 집과의 간극이, 지금 이 공간을 점점 멀어지게 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를 그대로 살았다. 변함없이 계절은 지나간다. 이사하고 처음 맞이했던 그 계절이 다시 나에게로 온다. 그동안 나의 망상과 지금의 공간을 비교하던 나는, 떠나보냈으나 다시 돌아오는 계절에게 나의 일 년 간 성과를 보고해야 할 때가 왔다. 작년의 그 계절과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흐르지 못하고 단지 머물러만 있었던 건 아닐까.
다시 돌아오는 계절을 속이기 위해 공간을 정리했다. 가구의 배치도 바꿔보고 사소한 물건들의 위치도 살짝 움직여 보고. 사랑받지 못한 슬픔을 쌓인 먼지로 드러내는 장식들의 우울함도 툴툴 털어주고. 손님맞이 준비에 열심인 내가 새삼스럽다. 계절이 바뀌는 때다. 나는 무난히 계절에게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동안 소원했던 나의 공간은 좀 나아졌을까. 곳곳에 손을 대고 나니 애정이 조금 붙은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