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by 하루살이

잠에서 깬 새벽에 뒤척이다 창을 열었다. 먼발치에서 귀뚜라미의 울음이 들린다. 사람들의 시간에 온종일 숨어만 있더니, 아직도 세상에 나설 생각을 못하고 울어대기만 한다. 그 소리가 제법 가여워 한동안 가만히 듣는다. 누군가 이 새벽에 제 노래를 들어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늦은 여름의 새벽이 조용히 소란하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어린 추억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의 밤, 모닥불, 그리고 귀뚜라미 소리.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상적이던 시절이 생각나서, 나는 또 기억을 추억으로 삼키는 일을 한다. 말없이 모닥불을 바라보던 그 밤들을. 추억이 떠오르면 우두커니 홀로 커피를 마시는 나이가 되었어도 이 밤은 여전하다.


가을이 온다. 낙엽이 익어 간다. 날이 쌀쌀해 창문을 닫고 나면 귀뚜라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실이 못내 그리울 것이다. 또 이내 사그라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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