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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Aug 20. 2017

내 마음대로 사는 삶

13개월간의 배낭여행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선물



18개국, 13개월, 391일.

그녀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어 한국을 떠나 있었던 기간이다.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했을 때, 몇몇 사람들은 결국엔 현실적 문제들에 치여 못 떠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그녀의 결심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동물을 조금 무서워해서 강아지 곁에도 잘 못 갔던 그녀가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캠핑을 하고, 물을 두려워했던 그녀가 세계 다이빙 명소인 이집트 다합에서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땄다. 스스로 엄살이 많다고 생각해왔는데, 상처투성이인 다리와 발을 붙들고 밤마다 피고름을 짜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기도 했다.


긴 여행 동안 자신도 잘 몰랐던 모습들을 발견했던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그녀. 여행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현실의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지만, 그녀의 고민들은 이제 여행을 떠나기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또다시 새로운 떠남을 꿈꾸는 그녀가 지난 여행 동안 조금씩 덜어내고 다듬어갔던 생각들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여행이 가져다준 ‘무엇’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입사한 지 두어 달이 지나고,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제가 상대적으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거든요. 저의 20대 초반의 시기를 회사에서 전부 보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돈을 일찍 모으게 되었으니, 그걸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역회사에서 일했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회사 책상 늘 세계 지도가 있거든요. 힘들고 지루할 때마다 저길 내가 직접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빠른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정말로 실현하셨네요. 누구나 꿈꾸는 일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제가 세계일주를 결심했을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세계일주를 떠나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주변 대부분이 막상 그때 되면 못할 거라고 했어요. 내가 꿈꾸는 일인데 왜 남들이 못할 것확신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어요. 그리고 오기도 더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는 ‘내가 진짜 보여줄게. 정말 가나 안 가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더 결심을 굳혔죠.


-아무래도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으니 그런 반응이 나왔을 것 같아요. 혹시 부모님께서도 반대 없이 허락해주셨나요?


저도 분명 여자 혼자 배낭여행을 1년간 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부모님이 반대하시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랜 기간 투쟁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결심이 생기자마자 바로 말씀드렸거든요. 그런데, 뜻밖에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적극 지지해주셨어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꼭 가라고 하셨죠. 특히 아버지께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우세요. 아버지도 친구분들께 자식이 배낭여행 중이라고 하면 다들 ‘아들이지?’라고 물어보신다고 하세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화를 내신다고. (웃음) 왜 아들은 되고 딸은 안되냐면서 그런 생각 좀 버리라고, 한마디 하신대요.


-멋진 부모님이시네요.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세계여행이 보편적인 경험이 된 분위기도 있긴 하죠.


최근에는 SNS의 영향으로 여행 관련 콘텐츠들이 엄청 인기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여행을 떠나면 무조건 다 성장하고, 모든 게 해결될 것이고,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사실 막상 여행을 떠나면 그런 것들은 없거든요. 여행에 대한 환상만 심어주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모두가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만약 본인은 정말 여행을 가고 싶은데, 여러 이유로 포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안타까워요.


-그럼에도 여행을 떠난 후에 달라 점도 많을 것 같아요. 특히 장기 여행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아요. 저의 첫 여행지가 인도는데 힘든 시작이었지만 정말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힘든 환경에서 여행을 시작하니까, 내성이 생긴 거죠. 그래서 다음 여행들이 모두 수월해진 편이에요.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크레더블 인디아’라는 유명한 말이 있거든요. 말도 안 되고, 힘든 상황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 말을 외치면서 여기는 인도니까 받아들이자 하는 말이이에요. 상황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 태도랄까. 그런 것이 인도에서 더 생긴 것 같아요. 원래도 긍정적이었지만 더 긍정인 성격이 된 거죠.  


또 여행 도중에도 계속 새롭게 도전해야 할 일들이 생겼고 그걸 하나씩 하다 보니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물을 무서워했는데, 다합의 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쿠버다이빙에 도전을 했어요. 두려움을 극복한 거죠. 변화한 내 모습을 경험한 순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것들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실행해보려는 게 더 늘었죠.


-그렇게 스스로가 변화하는 경험을 계속하다 보면, 이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을 것 같아요. 혹시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따로 기록을 하신 것도 있나요?


개인 블로그에 여행 기록을 남기기도 했고요. 엽서를 썼어요. 배낭여행자이니까 짐이 되는 기념품을 살 수가 없었거든요. 간직할 선물을 생각하다가, 나라별로 엽서를 써서 한국의 집이나 친구들에게 보냈어요. 원래도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요. 그게 특별한 기념품이 되었어요. 그동안 여행지에서 보낸 엽서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엽서에 썼던 말들 중 이건 지금 봐도 멋지다 하는 구절들을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마지막 여행지에서 보낸 아이슬란드 엽서가 지금 와서 보아도 참 애틋한 것 같아요. 마지막 순간까지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이 그대로 들어 있어요.


“여행을 시작한 순간을 떠올리니 어느덧 까마득한 옛날 느낌이 강해졌고,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정말 집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다. 내가 느끼고 배우고 달라진 나의 가치관들이 내 나라에 돌아가서는 다시금 무의미해질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숫자의 장벽이 없는 곳에서 나의 미래를 펼치고 싶은데, 그러기에 한국은 너무도 어려운 환경인 것 같다.”


이런 부분도 있네요.

“까미노를 걸으면서, 정말 생각보다 내가 독한 사람이구나를 느꼈다. 발목과 발바닥의 상황이 걷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정말 절뚝거리면서 걸었다. 밤에는 피고름을 짜면서. 나는 스스로 엄살도 있고, 나약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음을 느꼈다.”


“엄마, 아빠가 해준 이야기들 늘 되새기며 조심하는 편인데, 내 덕분에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거나, 생각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어. 정말 기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러기에 더욱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나 최근에는 너는 어쩌면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남 험담하지 않고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냐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모습이 나도 모르는 사이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무엇’인 것 같아.”


-공유해 주신 엽서에서 까미노를 걸을 때 했던 생각이 인상 깊어요.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만난 순간이네요.


스스로 잘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되었죠.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나 자신을 잘 알게 되었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가치관을 정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은 취향들까도 말이에요. 대단한 변화는 아니지만 소소한 발견, 작은 변화들이 많았어요.


-그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서 큰 생각의 변화를 만들었을 것 같아요.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즐겁기만 했을 것 같지만 여행 중에 힘들었던 순간은 없으셨나요?


여행하면서 초반엔 압박감이 컸어요. 이 여행을 나만의 여행, 특별한 여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준비를 많이 하고 떠나고 싶었는데 결국 계획대로 하기 어려워서, 무계획 여행이 되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이 여행이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고, 이를 수단으로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렸죠. 그러니까 그 이후로는 끌리는 대로 다녔고, 오히려 마음 편하게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온 지금, 그리고 나에 대하여



-최근의 당신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요?


“개썅마이웨이”에요. (웃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더 강하게 들었던 생각인데요. 여행을 다니면서 익숙해졌던 행동이나 옷차림을 그대로 하면 약간 시선을 받게 되더라고요. 틀에서 벗어난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 강한 것 같아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나대로 살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태도가 타인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사회가 보편적으로 정해 놓은 규격에 저를 맞추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나의 소신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최근에는 자기계발이나 노력에 대한 신화가 많이 깨지기도 했잖아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같은 과거의 발언도 새삼 화제가 되었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실적 제약들이 많긴 하죠.


여전히 언제 무엇을 해야 한다는 보편적 시선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대학 입학과 졸업, 취업, 결혼 등에 대한 보편적 시선과 규칙들 있잖아요. 이전에도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고,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여행을 다녀오니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거죠. 그래서인지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기도 하고요.



-그런 보편적 규칙을 깨고 나만의 길을 찾는 것 자체가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요.


어려운 일이죠. 그리고 최근에 친구랑 이야기해보며 깨달은 것인데, 친구는 제가 답답하다고 느꼈던 평범한 일상을 갖는 게 목표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성향도 도전하거나 다이내믹한 삶은 오히려 피곤하고 힘들다면서요. 그 친구의 말도 맞는 것 같아요. 그런 성향의 사람도 있겠죠. 모든 사람이 규칙을 깨고 모험을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의 가치관이나 목표는 각자 다를 수 있으니까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가치관이고,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친구분이 이야기했던 평범한 일상을 갖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것이 문제겠죠.


맞아요. 평범에 속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들이 필요하고, 현재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타국의 문화에 새롭게 적응하는 것도, 실제 문제로 닥치게 되면 어려울 수 있겠어요.


걱정되는 문제들은 많아요. 대표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도 크죠. 그렇지만 사회적 시선 자체가 약간 다르긴 한 것 같아요. 가장 놀랐던 건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에 있어서 나이 제한이 자유로웠던 것이에요. 저도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그런 환경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나이뿐만 아니라 다른 편견들에서도 조금 자유로운 편이기도 하고요.


이번에도 영국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왔었는데, 외모 지상주의나 미의 기준의 획일화가 심하다고 느끼더라고요. 외부의 시선으로는 그게 더 크게 보이는구나 싶었어요. 타인의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칭찬도 타 문화권에서는 무례하다고 느끼더라고요.


-도전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있던 꿈인데 뮤지컬 무대에 서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가슴속에 간직한 꿈을 오래 꾸고 있으면 이루어지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그게 꼭 백 프로는 아니어도,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것이 꽤 큰 차이로 다가와요. 그래서 다시 떠나고 싶은 것이고요.


-최근의 관심사나 하고 있는 생각들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구체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잘 몰랐지만 알게 되면서 새롭게 보이는 억압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자유롭기 위해서 공부하려고요. 어떤 엄마나 아내, 그리고 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과거에는 조금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어떤 '나'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죠.

그리고 여전히 저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커요. 과거에는 어떻게 해서 경제력을 쌓고,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오히려 어떻게 보면 조금은 이기적으로 된 것 같아요. 돈을 모으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이런 것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그냥 조금이라도 돈을 모아서 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자주 들어요. 막연하게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직업적인 것을 떠나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직 내 앞엔 많은 인생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정말이지 이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야.
지금은 빈센트 반 고흐의 고향에 와 있단 사실만으로도 설레.
 많은 곳에 가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을 만나고.
매일매일이 참 값진 날들의 연속이야.

(암스테르담에서 쓴 엽서 중)




인터뷰이 :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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