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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Aug 31. 2017

나선을 그리며 천천히 성장하는 삶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이유


인터뷰를 부탁하던 입장에서 인터뷰이가 되었다

학생 기자 활동을 하며 1년간 12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을 경험한 사람들, 서로 다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배운 것들이 참 많았다. 그렇지만 과거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그들의 이야기가 가까이 와 닿지 않을 때도 있었다.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들이라는 것에서 막연한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이번엔 반대로 인터뷰이가 되었다. 약간의 부담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과거 인터뷰 기사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지금 와 다시 읽어보니 정말 좋은 말들을 많이 나누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금의 그녀가 그들을 만났다면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솔직히 인터뷰를 통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 인터뷰를 다시 보았을 때, 내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하며 새삼스레 놀라고 싶다는 작은 기대도 해본다.




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



-인터뷰에 앞서 원래 학생기자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를 하셨다고 했는데, 이번엔 인터뷰이가 되어서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부담 가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굉장히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네요. 예전에 인터뷰이가 1시간 동안 말을 하다 보니까 스스로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게 진짜일까 싶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정말 생각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크게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나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어요.


-인터뷰라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죠.


당시에 섭외 요청을 하다가 거절을 당하거나 하면 서운하기도 했거든요. 짧은 학생 인터뷰인데 왜 부담스러운 걸까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 거절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 당시 그분들도 제가 볼 땐 대단했지만, 그분들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요. 타인에게 이야기를 오픈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이미 잘 아시겠지만, 이 인터뷰는 무언가 이루어 낸 것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도 현재의 생각이나 모습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목적이니까 편하게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진실한 것을 좋아해요. 이게 되게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물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기의 뚜렷한 주장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도 포함돼요. 언제부터인가 지조 있게 자기주장을 펼칠 줄 아는 것이 좋더라고요.


물론 그게 틀렸을 경우에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남에게 쉽게 휘둘리고 자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는 뚜렷한 견해가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타인과 의견이 달라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발전이 있고 무언가 더 나아지는 것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만의 견해를 갖추는 것, 그리고 그것이 꽤 괜찮은 곳을 향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계속해서 다듬어가야겠죠?


네. 그리고 계속 변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며 사는 것을 되게 싫어해요. 그래서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굉장히 낯설어하고, 또 남이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면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혼자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기준을 좀 좋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다듬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성향이 조금 있는 편이라 공감되네요. 꼭 좋은 성향이 아니라는 것도요. 저도 요즘은 그런 성격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어요.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면 조금 편협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친구한테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요. 어떻게 보면 필요한 것을 어필하지 못하는 성격인 거죠. 그런데 제 친구 중에 부탁을 잘 하는 성격이 있어요. 그렇게 친하지 않아도 쉽게 남에게 부탁하는 모습이 신기했죠. 그런데 그 친구는 부탁해서 받게 된 거에 대해서 나중에 보답하면서 관계가 더 깊어지기도 하더라고요. ‘부탁’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무너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렇게 해보려 노력하려고요.


-사실 부탁을 선뜻 하지 못한다는 건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거절당해도 괜찮다는 그런 용기요.


알게 모르게 자존심 같은 게 센 편이거든요.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존심일 수 있는데. 상처받는 걸 싫어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남들이 이걸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서 행동을 못했던 것도 많아서. 어쩌면 과도하게 남들을 의식해서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금 말씀하신 남들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준다는 건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죠.


남의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타인의 생각을 고려하고 배려한다는 건 좋은 태도이긴 하죠. 그런데 배려에 대한 기준을 지어놓고, 그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건 지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도 이렇게 소위 꼰대가 되는 건가 고민해요.(웃음)


-맞아요. 요즘은 꼰대라는 단어 자체를 웃음 코드로 사용하고 가볍게 이야기하게 된 분위기인 것 같아요. 그래도 권위주의가 어느 정도 깨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최근에 정말 그런 농담들을 많이 보았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예전에 꼰대라고 하면 정말 싫은 존재일 뿐이었는데, 약간 이해가 가기도 해요. 사회가 빠르게 바뀌면서 생각을 다르게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서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을 해주면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최근 유행처럼 꼰대를 비꼬는 유머가 뜨고 있는 것도 어쩌면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 못하는 분위기가 싫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어떤 부분이 답답할 때, 그걸 표현해주고 얘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고민하며 성장하는 지금의 나



-정말 그렇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지양하는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되고 싶은 모습을 이야기해볼까요?


요즘 자칭으로 밀고 있는 별명이 있는데, ‘낙타’ 예요.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이 별명을 붙여줬어요. 속눈썹이 좀 긴 편이라 낙타를 닮았다며 낙타 혜진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는데 별명 붙일 게 마땅히 없더라고요. 그때 ‘낙타 혜진’이었던 별명이 생각나서 닉네임이 ‘노낙타’가 됐어요.


굳이 의미를 찾다 보니까 낙타의 특징이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랑 비슷하더라고요. 저는 예전부터 다재다능하고 다방면에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낙타가 혹에 물을 비축해두고(사실 물이 아니라 지방이라고 하긴 하지만) 그걸 빼서 쓰잖아요. 그런 모습이 다양한 지식을 비축해두고 적재적소에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아무 의미 없이 지은 별명이었지만, 이제는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과 닮은 별명인 것 같아요.


-좋은 의미네요. 스스로가 되고 싶은 모습에 대해서 잘 알고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맞아요. 하지만 저도 아직까지 저를 한마디로 정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정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이죠. 오히려 확고한 정답이 있다고 믿고 있으면 그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훨씬 힘들게 무너질 수도 있어요.


사실 주변에서 한 가지 방향을 깊게 파고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느낀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해 준 대사가 인상 깊었어요. ‘계속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사실 나선을 그리면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대사였어요. 지금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는 거죠.


그걸 보고 나니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지나고 나서 보면 어떻게든 달라져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현실적인 취업 고민들로 허덕이고 있는 것 같아서 우울하기도 해요. 또렷해지는 거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되고요.


-취업을 하려면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격들이 있으니, 그런 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당연한 고민인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또렷하게 개성을 지킨다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제가 이번 방학 때 덴마크와 스웨덴을 다녀왔어요. 탐방 프로그램에 뽑혀서 가게 된 거여서 그 사회의 시스템을 관찰하는 목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단순 여행 때와는 달리 관찰을 많이 했어요. 사회의 복지 시스템에 대해서도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았죠.


하지만 그렇게 많은 것을 느끼고 왔는데 다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3일 후에 토익 학원에 등록하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죠. 다시 현실에 순응해야 한다는 게 조금 서글펐어요. 아침에 학원을 다녔는데 만차 버스를 타고 가는 그 길 자체가 스스로 안타깝고. 여유로웠던 마음이 현실을 만나 순식간에 바뀐 것 같아요.


-현실 문제에 따라서 마음의 여유가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는 느낌이 들죠. 하지만 그 당시에 느꼈던 것들이 많다면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아무래도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겠지만, 혹시 그 외의 다른 고민들이 있다면 나누고 싶어요.


최근에는 계속 영원함과 영원하지 않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영원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변해간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며 조금 씁쓸함을 느끼는 중입니다.


-영원함과 영원하지 않음에 대한 고민이라니, 굉장히 심오하게 들리기도 하네요.


사실 엄청 심오한 고민은 아닌데요. 일상에서 종종 그런 기분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최근에도 동아리 선배가 결혼을 하셨는데 신입생 시절에 편하게 놀았던 언니 오빠들이 결혼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하는 것들을 보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 갑자기 허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요. 나는 그대로인데 선배들은 급격하게 변한 것 같고 한 거죠.


저는 사람을 사귈 때 정을 많이 주고, 좁고 깊게 사귀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인지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나는 정을 줬는데, 상대방은 그게 아닐 때가 있잖아요. 인간관계에서 반복되는 고민인 것 같아요. 동시에 아까 말했듯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어쩌면 제자리인 것 같지만 저도 많이 달라졌겠죠. 조금은 아쉽고 씁쓸하긴 하지만요. 그게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고 여전히 좋아할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누군가와 이 이야기를 하면 참 행복하다 하는 것이요.


혼자 영화 보는 시간을 정말 좋아해요. 좋아하는 분야에서 조예가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하고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깊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안목을 키우고 싶어요.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얘기할 때 느낀 것들이 깊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행 가는 것도 그런 것 중 하나예요. 한번 다녀오고 나니 계속 여행을 가고 싶더라고요. 장기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에 굉장히 스스로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교환학생도 가게 되었고, 두려움이 사라져서 혼자도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되었죠. 여행도 하면 할수록 나만의 스타일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꾸준히 반복하면서 진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거죠.


-계속 고민하고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혜진 씨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해보니 이미 가까이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언제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일지라도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나중에 지나고 보면 제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고요. 고민의 과정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새에 그 고민 자체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겠죠. 고민을 안 하면 바뀌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 생각했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지만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그렇겠지.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 '나선'은 커지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힘이 나더구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중





인터뷰이 : 노혜진

blog http://blog.naver.com/nhj9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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