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결과보다 오늘의 과정이 중요한 이유
그는 스스로 마감을 정해 놓고 글을 쓴다.
페이스북 페이지 ‘열렬히 마감을 하는 학곰’을 운영하면서 말이다. 브런치 매일 리뷰 쓰기 프로젝트는 종종 멈추기도 하지만 또다시 도전한다. 정해 놓은 마감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많다. 사실 이 반복적 작업에서 가장 반복되는 건 그야말로 미루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 밤늦게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마감을 하기도 하고,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하니까.
그렇지만 오늘도 그는 열렬히 마감을 한다.
지쳐서 잠시 멈춘 적도 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일. 누가 시키거나,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 아니라 그가 하고 싶어서 하는 유일한 일. 그래서 힘들지만 끝까지 붙잡고 있게 될 일. 때로는 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다시 튼튼히 세워주기도 하는 일. 바로 그런 일이 그에게는 ‘글쓰기’이다.
-브런치 매일 리뷰 연재나 팟캐스트 ‘기린책방’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해오신 것이 인상 깊어요.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신 건지도 궁금하고요.
졸업을 앞두고 무슨 일을 해야 잘 할까 고민했어요. 어떻게든 돈을 벌긴 벌어야겠는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죄인가 싶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동시에 스스로 철이 안 든 건가를 되물어야 했어요. 주변 가까운 이들이 만류하니까 자책도 많이 했죠. 그런데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제가 할 수 있는 것, 어쩌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 계속 해왔어요. 당장은 어떤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일이겠지만요.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맥락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결과만 보길 원하는 것 같아요. 어디에 취직이 되던가, 등단을 하던가, 돈을 많이 버는 그런 결과들이요. 그러고 나면 그 전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맥락 아닐까요? 결과 이후에 더 중요한 건 그 삶이 '어떤 맥락'을 가지고 거기까지 왔느냐죠. 그래서 제 글도 쌓아두고 맥락을 보고 싶었어요. 소설 습작도 꾸준히 해온 것 중 하나인데, 소설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말로 가기까지의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사건에서 ‘결말’만 중요하다면 소설을 읽을 이유가 없겠죠. 소설을 읽는 건 결말까지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함이기도 하니까요. 소설을 쓰게 된 이유 깊은 곳에는 맥락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들어있을 것 같기도 해요.
브런치에 과르디올라가 독일의 명문팀에 4년간 있으며 밀착 인터뷰를 한 책을 맨 처음 리뷰했던 것이 기억나요. 지금 보면 그 리뷰가 조금 조잡스러워 보이기도 해요.(웃음) 그런데 꾸준히 리뷰를 기록하니 그 맥락을 내가 스스로 알게 되더라고요. 저의 리뷰가 점점 정돈되고 패턴이나 스타일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독자로서 꾸준히 올리시는 글을 읽으면서 그런 패턴이 생겼다는 게 느껴졌어요. 스타일이나 패턴이 혁진 씨가 쓴 글이라는 게 느껴져요.
제가 글을 쓸 때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하나는 제가 쓴 글이라는 걸 딱 보면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문체’에 신경 써서 글을 써요. 후에는 저만의 문체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둘째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쓰자는 것이에요. 최대한 어려운 말을 지양하려고 합니다. 어려운 문학 용어들 말고, 쉽게 이해되는 말들을 쓰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결과보다도 스스로 이런 원칙을 세우고 글을 써가는 과정과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흔들리거나 무너질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같은 것은 적으니까요. 그럼에도 꾸준히 그 과정에 전념하는 건 꽤 의지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몇 번의 무너짐이 있었어요. 친구랑 유럽여행 준비를 했었는데요.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고 거의 계획을 다 세웠었어요. 당시 <겨울 왕국>에 꽂혀서 여행지도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정하고.(웃음) 그런데 여러 여건들이 허락하지 않아서 포기해야 했어요. 그게 엎어지면서 남들은 다 가는 여행 한번 못 가게 된다는 데에 굉장히 우울했어요.
그땐 좌절이 와서 난 뭘 해도 안된다 싶은 심정이었고 휴학하고 실컷 쉬었어요. 한동안 백수처럼 생활하다가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할 수 있는 걸 찾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찾던 중에 스토리텔링 교육을 받게 되었어요. 그것을 계기로 조금씩 연재에 더 집중하고,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는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도 한 이유인데요. 올해 초에 아르바이트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고 제게도 좋은 기회 같았는데 노트북이 없다는 것 때문에 하지 못했어요. 돈이 없어서 알바를 하려고 하는 건데 어찌 보면 돈 때문에 못하게 된 거잖아요. 너무 원통하더라고요. 내가 실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타리스트 신대철 씨가 언젠가 ‘기타가 펜더(명품 기타 브랜드) 면 뭐하냐 손가락이 펜더여야지’ 말했던 게 생각났고요. 나도 손가락이 펜더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그 상황에서 그냥 좌절하고 멈췄다면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 수도 있겠죠. 현상만 보면 너무 우울했던 상황이니까요. 그래도 상황이 별로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이 제가 내린 답이었어요.
-그런 이유들이 글쓰기의 동력이 되었던 거군요. 힘든 상황들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최소한의 그 무엇이 ‘글쓰기’였고요.
이동진 씨가 ‘빨간 책방’에서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두 가지 있다고 했는데요. 첫째는 당신이 이 업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다른 업종을 선택했을 때보다 절반 그 이하의 보수를 받을 확률이 높다. 이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재능을 40년 이상 반복할 수 있는가, 반복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드는가. 하는 것이 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본인이 알 수 있는 거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21일 간 매일매일 리뷰 쓰기 프로젝트에 돌입했어요. 처음엔 21일로 잡고 점점 늘려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요. 저도 반복할 수 있는 재능인 지를 테스트하고 싶었던 거죠. 처음엔 읽는 속도가 느려서 얇은 책이나 그림책, 잡지, 웹드라마, 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리뷰를 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의무감은 있는데 힘들고.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가 11시쯤 하게 되더라고요. 2-3시까지 쓰고 늦게 일어나고 이것을 반복하니 지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21일 이후에는 안 쓰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이게 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두어 달 지나니까 또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힘든 것으로 그쳤다면 다시 도전하지 않았을 텐데 쓰려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던 거네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텍스트를 읽고 글을 쓰는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책’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제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쓰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꾸준히 책 리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마감’을 스스로 정해놓는 것이 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기도 할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에게 마감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데.
그렇게 매일 마감을 하는 규칙은 최근에 세운 건데요. 상반기에 취업 준비를 하면서 7월이 됐고 마음은 조급해졌어요. 남들이 하는 것들을 나도 해야겠다는 압박감에 토익스피킹 학원도 등록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하기 싫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제가 한 것들은 여태껏 해야 해서 해온 것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럼 나는 언제 진짜 하고 싶은걸 할까 의문이 들었어요. 행복을 계속 이월하는 태도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러니까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점점 더 하기 싫어지고, 딴짓이 재밌어졌어요. 제가 해온 일들을 정리해보면 보편적인 스펙과는 정말 동떨어진 일들이었어요. 소설 습작, 팟캐스트 진행, 스토리텔링 교육, 드로잉 모임 등등. 옆에서 보면 단지 취미가 많은 사람으로 보일 것 같은 일들이었죠. 그런 딴짓에 더 열중하게 되었어요.
남들이 하는 것을 의식하고, 사회의 기준들에 맞추는 삶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하는 생각들에 힘이 생기려면 우선 실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빠듯하게 기준을 잡고 글을 쓴 것 같아요.
-무언가를 쓰고 만드는 일들을 처음에는 팀 이요마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시작하신 걸로 알아요.
예전에 국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학원에 가기 전에 항상 두 시간-네 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고, 그 시간에 카페 가서 시간을 때웠어요. 그러다가 심심해서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짧은 엽편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다가 사람들이 페북에서 긴 글 안보는 것 같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못 그린다는 주변의 코멘트가 하도 많아서 상처만 받았고, 영상으로 갈아탔어요. 영상은 뭐 고등학교 때 방송부 선배 등 뒤로 알음알음 배운 기본 정도였지만 시작부터 해보았죠. 동네 친구 꼬셔다가 유우-머 한마당 찍으면서 시작했어요. 팔로워가 70명 즈음되니까 더 이상 뭐 코멘트도 댓글도 좋아요도 없더라고요. 반응이 없으니 재미도 없어지고. 그래서 현재는 브런치라는 매체로 옮기게 되었죠.
-본격적으로 소설을 습작하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군대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행군을 하면서 지루하고 힘드니까 지금까지 인생에 대한 기억에 대해 말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 인생이 그렇게 단조로운지 처음 안거죠. 그래서 내게 특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정말 사소한 것들까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어요. 찾다 보니 초등학교 때 일기를 10쪽 이상 쓴 기억, 선생님이 낭독을 시키신 기억이 좋게 남아있었고. 중학교 때도 시를 써서 대상을 받았던 경험들이 있었어요. 그런 의미들을 생각하자 나에게 주어진 능력이 있지 않을까 치기 있게 생각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글 쓰는 것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인정받은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심심해서 공모전에 글을 냈다가 당선된 이후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겼죠. 관심이 생겨서 책을 읽어나가게 되니까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기록하는 것이 재밌더라고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대 후에는 ‘필담’이라는 창작 학회에 가입하게 되었죠. 초반엔 참 자신 있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학회에서 함께 글을 쓰던 친구가 책을 읽은 것에 비해 글을 잘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글을 쓰면서 저의 재능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 옆에서 보기에도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했을 때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올해 초부터 자기애에 대해 관심이 커졌어요. 처음에 ‘기린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4명이서 시작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세 친구들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거든요. 나중에는 나만 이것에 매달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도 자격지심이 생겼고, 남들이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실망도 많이 했어요. 좋아서 하는 일들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밖에서 보기에 한량 같지 않을까 싶었어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거죠. 그 과정 중에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학회에서 혁진 씨가 쓴 소설을 읽어보고 함께 활동하고 했을 때에는 그런 고민을 하는 줄 전혀 몰랐어요. 소설에서 자기 스타일에 대한 신념 같은 것이 강하게 느껴졌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스스로를 저평가하는 게 저의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다운 것, 나의 색깔, 나의 자존감 같은 것들이 저의 화두예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아요.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을 정해놓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약간 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들을 떨쳐내려고 이런저런 일들을 했던 것 같아요. 아마 글에도 그런 노력이 드러나기도 했을 거고요.
원래 스스로 정의 내렸던 모습이 ‘나는 조용하다, 목소리가 크지도 않다’는 것이었어요.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입대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해야 했는데 목소리가 작은 편이라서 지적을 자주 받았었거든요. 그러면서 제 목소리가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편집을 하며 듣다 보니 생각보다 제 목소리가 좋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웃음)
-기린 책방을 듣거나 이야기해보면서 목소리가 정말 좋다고 느꼈었는데, 콤플렉스인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내 속에 있는 것과의 차이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타인이 생각하는 나, 타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나에 대해 동경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 안의 나에 대해서는 부정하게 되었어요. 어느 순간 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뒤늦은 사춘기인지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전까지는 스스로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내향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사회적으로 그냥 퉁치는 느낌이죠. 그래서 늘 내가 잘못되고 소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사람들과 이것저것 하는 것도 좋아하고, 제가 좋아하는 일들에는 적극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바깥으로 '보이는 나'와 '내 안의 나'가 화해하기 시작했고 거리가 좁혀진 것 같아요. 저는 이것이 자기애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미움>이라는 책에서 읽은 건데요. 사람들은 이걸 하면, 이걸 가지면 나아질 거라는 조건을 자꾸 달게 된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 조건들이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드는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는 것 자체로 ‘난 괜찮다’고 말해주면 마음이 나아지더라고요. 내가 가진 것과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게 되고, 그게 누적되고 데이터가 쌓이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기록이 쌓이면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어떻게 보면 하루하루, 일상적으로 쌓아야 하는 노력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조금 넓은 의미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들을 수 있는 귀"와 타인의 입장에까지 닿을 수 있는 "상상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자취가 있어서 자기의 기준, 자기의 눈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내 생각이 옳은 것처럼 다른 사람 생각도 옳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죠. 그렇게 되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내 편이 아닌 쪽으로 퉁치게 되어요. 배척하고 배제하면서. 그런데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이긴 하지만 인터넷 댓글을 보면 정말 심한 것 같고요. 인터넷 상에서는 극단적인 워딩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혐오 표현들이 넘쳐나잖아요. 하지만 그런 워딩은 워딩에 그치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여기서도 맥락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행동의 맥락이 있을 텐데, 깊게 생각하기는 싫으니 내 편이 아닌 것으로 퉁쳐버리는 것 같아요.
-인터넷 댓글은 굉장히 극단적 표현들이 많은 공간이죠. 극단적인 태도가 현실보다 더 심해지는 공간일 수도 있고, 그게 현실에서는 가리고 사는 맨얼굴일 수도 있겠죠.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내가 공격받았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의견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거죠. 나와는 다른 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자기 방어가 생기거든요. 그것이 모든 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타인의 입장을 상상해보지 않았고, 그 상상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도 그런 것 같고요.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특권을 가진 이들은 그 반대편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없던 거죠. 그렇다면 최소한 들을 귀를 열어두면 좋을 것 같아요. 나랑 생각이 다를지라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맥락을 들어줄 여지가 있다면 최소한 사회가 ‘헬’까지는 안 되지 않을까요? 최소한 그런 조건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책을 보고 문학을 읽는 것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문학의 효용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 가상의 인물에게도 쉽게 몰입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입을 못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거죠.
독서를 통해 반복해서 타인에게 몰입해보는 경험을 하다 보면 그게 현실에서도 가능해질 것 같아요. 저는 절대적인 선악은 없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어떤 쪽으로든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타인을 상상해야 하죠. 제가 글을 쓸 때에도 늘 고민하고 노력하는 일이에요.
내가 가진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 자체로 ‘난 괜찮다’고 말해주면 마음이 나아져요.
내가 가진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게 되고, 그것이 누적되고 쌓이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인터뷰이 : 홍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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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기린책방' : http://www.podbbang.com/ch/1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