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만난 그냥 그 순간의 나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상한 보통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커피에 빠지게 된 계기도, 인류학을 운명처럼 생각하게 된 계기도 다양함에 대한 관심이었다.
하나의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갔고, 이제 그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났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언젠가 그와 그의 생각이 지금보다도 더 먼 어딘가에 멋지게 도착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자신을 나를 표현해줄 수 있는 문장이나 단어를 미리 여쭤봤었는데요, 생각해보셨나요?
한마디로 저를 표현하는 게 조금 어렵긴 하지만(웃음). 많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이상한 보통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상한 보통 사람, 역설적 표현이어서 그런지 단번에 이해가 가는 말은 아닌데요.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뜻도 궁금해요.
이상함과 보통이 동시에 있는 것이 조금 어색할 수도 있고 모순일 수도 있죠. 음 이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에 저항하는 표현이에요. 누군가는 저에 대해 평가할 때 좀 이상하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평범하다고 평가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상반된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처음엔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고민도 했었는데요. 특히 저는 스스로의 양면성에 대해서 강하게 자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런 평가를 하는 타인에게 마음도 닫히고요.
그런데 이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타인의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열린 해석으로 알려주고 싶은 거죠. 어떻게 보면 누구나 이상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이상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모두 특별하지만 보통 사람인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모두가 누군가 보기에는 이상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곳을 가도 그런데, 어떤 소리에 신경 쓸지는 나의 선택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설명하면 할수록 원래의 의미에서 멀어지고 해석이 달라지게 되는 것 같아서 열린 해석으로 두고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제 정체성이에요. 내 모습이 누군가에겐 이상할 수 있지만, 보통일 수도 있다고 늘 생각해요. 나는 그냥 누군가에게 그 순간 비치는 나고요.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누군가를 대할 때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겠네요. 여러 관계들이 중첩될 수밖에 없는 최근 사회관계에 있어서 꼭 필요한 내면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말씀하신 마음가짐 이외에도 타인을 대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하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웃기고 편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누구나 나와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거죠. 가식을 떨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어느 공간에서나 자연스러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이건 자신감이랑 매우 깊이 연결되는 문제 같은데요. 자신감이 있고 자존감이 높아야 어디서든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에 대한 확신, 자기애가 없으면 어디에서든 누구나 무너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언제나 그것들을 지키고 싶고,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자기 암시도 많이 하고 있어요.
-나에 대한 정체성이 여러 타인들의 눈에 굉장히 상대적으로 비추어진다는 것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멋진 말씀이네요. 이런 상대적인 시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신 건 혹시 전공(문화인류학)의 영향도 있으실까요?
맞아요. 제가 이런 생각을 좀 더 갖게 된 데에는 인류학 수업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가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저와 어울리는 일을 만났을 때 이게 운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는 그 기분을 처음 느껴보았던 것이 인류학을 전공으로 택하고, 전공 수업을 듣게 된 것이었어요. 물론 신입생 시절에는 그다지 학업에 집중하지는 못했지만요(웃음). 복학 후 2년간의 수업이 정말 인상 깊었고, 여전히 제게 많은 영향을 줘요.
-어떤 점들을 배우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거시적인 것과 미시적인 것의 차이나 새로운 시선, 소수 문화에 대해서 배울 때 그랬어요. 종교, 이슬람, 공동체, 정치라는 키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지금까지 주류의 이데올로기, 세계에서 당연시되던 역사의 흐름이 사실은 정말 부당하고 부조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죠. 그러면서 제가 지금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주류의 시선을 의심하게 되고 벗어나게 된 것이 나에게 큰 행운인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를 배우신 것 같아요. 앞으로 삶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 같네요.
네 그래서 학교는 졸업했지만,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할 생각이에요. 얼마 전에는 한 역사 인류학자가 쓴 책을 읽었는데요. 그 책에는 충청도 빨갱이 마을로 불리는 한 마을의 생애사, 즉 문화기술지가 담겨 있어요. 인류학자가 현지조사보고서를 담은 책인 거죠. (도서_<인류학자의 과거여행: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그 책에서는 말그대로 '빨갱이 마을'이라고 불리던 한 마을에 집중하고, 여성들에 집중해서 구술사로 살펴보아요. 실제로 작은 마을 안을 들여다보니까 그건 가족들의 문제, 마을 사람들의 문제, 즉 미시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었죠. 그런데 거대한 이념이 혈육까지 넘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거예요. 사실 그 시절에는 어떤 이념이 있느냐 없느냐 선택권이 없었던 상황이 느껴져요. 이기는 역사의 편에 섰던 이들이 결과론적으로 승자가 되고, 그 반대에 섰었다는 이유로 죽임 당하거나 매도당해온 과거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봐오면서 마을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생존을 위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시절인 거죠.
결국 그 마을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조금 더 지지하는 쪽이 되었고 나중에는 많이 처형당하고, 빨갱이 마을로 오랫동안 불리는 불명예를 겪어야 했죠. 불과 80년대만 해도 그랬던 거예요. 개개인들은 이념이나 다른 것에 대해 판단할 상황이 아닌데 사상검증을 하고 개개인에게 선택을 강요했던 역사가 놓여 있어요.
-그렇군요. 역사의 기록은 많은 부분을 생략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개인의 목소리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네 역사가 말해주지 못하는 개개인의 사정을 연구해보는 것이 인류학 생애사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이 책의 경우에도 결국 다 들여다보니 그 마을 사람들의 선택들이 모두 잘못되었고, 나쁘다고 판단할 수만은 없는 미시적 역사의 기록이 나타난 거죠. 더 나아가서 이 책의 저자는 주류의 역사(이데올로기)가 있고 그에 대항하는 민중의 역사가 존재하는 데 두 역사 모두 권력에의 의지가 담겨있는 역사라는 거에요. 그래서 헤게모니 싸움에서 벗어나 대안의 역사로 제3의 기록을 남겨두자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주류의 역사와 대항의 역사에서 벗어난 제3의 기록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것은 중앙의 시각에서 벗어나 지방민과 여성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에요. 기록되지 않고, 모르고 지나쳤으면 어떤 해석도 못했을 이야기들이니까요. 이런 책들을 접하게 되면서 어떤 사건을 보는 눈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권력을 잡으려 하는 역사에서 벗어나서 이런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3의 기록으로 있는 그대로 남겨둔다는 생각이 인상 깊어요.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사회 문제나 역사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시선도 조금 달라질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사실 앞에 제가 이상한 보통의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도 그런 생각의 영향도 있어요. 저는 그냥 저만의 인생을 살아온 거고,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르게 평가하겠지만, 사실 제 모습에 가장 가까운 건 제3의 기록(만약 있다면)의 내가 되겠죠. 그러니까 저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기 어렵고 그냥 순간순간의 모습들이 모인 것들을 좀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바리스타로 활동하시는데, 커피를 제대로 배워보아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무슨 일을 처리해야 할 때 닥쳐야 하는 성격인데요.(웃음) 항상 뭔가 정해지지 않으면 불안한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빨리 결정을 내야 할 때는 추진력이 생기는 성격이에요. 때문에 스물한 살 쯤부터 사업을 해야겠다, 내 가게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커피를 선택했던 건, 커피가 가진 다양성이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에요. 커피 자체뿐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다양성이 매력적이었죠. 공간이나 문화, 그리고 한잔을 만들기 위해서 바리스타들의 장인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등이요. 그런 것들을 알게 되자 커피를 통해서 파생되는 다양성이 좋았고, 정말 커피에 푹 빠져서 혼자 공부도 해보고 관련된 여러 아르바이트들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려 했어요.
-자신이 좋아하고, 어울리는 일을 추진력 있게 선택하셨네요. 최근에 새로운 카페에서 본격적으로 바리스타가 되셨다고요. 어떤 곳인가요?
감사하게도 본격적으로 일하게 된 곳이 공동체에 대한 깊은 철학이 있는 회사예요. 이력서 질문이나 면접에서도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깊은 질문들을 했었죠. 예를 들어 회사와 공동체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냐 같은 질문이요. 그리고 대표님의 철학이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추구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일하는 곳이 회사에 소속된 느낌이라기보다는 한 마을에 가서 살게 된 느낌이 강해요. 공동체의 최소한의 규칙이 존재하고, 서로 그 규칙들을 지키면서도 더 이상적으로 바꾸어 나가려는 공동체죠. 한 마을의 구성원이 된 느낌이 강하고 배울 점도 많아요. 마을 사람들의 특성이 굉장히 다양한데, 그 다양성을 존중받는다는 느낌도 많이 받고요.
-맞아요. 저도 '공동체'에 대해서 요즘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는데 개개인의 자유와 책임감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그런 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합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늘 서로가 강조하는 것이 완벽한 공동체는 아니고, 우리에게도 단점이 있다는 거예요. 외부에서건 내부에서건 누군가는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 있는 단점을 인정하는 공동체인 거죠. 우리 공동체에는 단점도 있고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합의는 진행 중이죠. 무엇보다도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한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계속해서 활발히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르게 평가하겠지만,
사실 제 모습에 가장 가까운 건
제3의 기록(만약 있다면)의 내가 되겠죠.
그러니까 저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기 어렵고
그냥 순간순간의 모습들이 모인 것을
좀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이 : 김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