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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Mar 25. 2018

나를 채워가는 삶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부족함이 느껴지면 채우면 돼요


패티를 굽는 고소한 냄새와 유쾌한 에너지가 가득한 곳에서 그를 만났다.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의 햄버거와 칠리 프라이즈, 그리고 맛있는 병맥주를 마시며 시작해버린 인터뷰였다. 꼬리를 물고 흘러가는 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는 채워가는 삶을 꿈꾸며 누구보다 열심히 차곡차곡 순간들을 채워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언가 놓고 온 것은 없는지 그래서 앞으로 채워갈 것은 또 무엇인지를. 하지만 끊임없이 시도하며 답을 얻어 온 그였기에 요즘의 고민도 조만간 해소할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삐삣버거는 한남동의 예쁘고 트렌디한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골목 입구에서부터 존재감을 뽐내며 네온사인을 빛내고 있다.





삐삣, 유쾌한 시도로 얻은 것들



-우선 이렇게 멋진 매장을 오픈하신 것 축하드려요! 하지만 처음엔 푸드트럭으로 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시작부터 이렇게 매장을 오픈하기까지 꽤 여러 난관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되어요.

처음 시작을 하는 것 자체가 약간 어려움이 있었죠. 사실 제가 부모님께 푸드트럭을 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할 때 반대하실 것을 예상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제 계획을 발표할 때 정말 철저하게 피피티 까지 보여드렸죠.(웃음) 저의 계획이 이렇게 확고하니 건드리지 말라는 것을 뚜렷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일단 시작은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사실 초반엔 그렇다 할 것을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당연히 처음이기도 했고, 여러 시행착오도 많았기에 그렇다 할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정말 무언가 보여주고 싶었던 강한 열망이 있었으니까,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일을 가리지 않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일들을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는 지금 이 일을 함으로써 나중에는 더 큰 것을 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과 암시를 해왔어요.


-그렇군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견딜 수 있었던 건 미래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을 거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과정이나 경험들 중에서도 얻어갈 수 있는 게 많으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가 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참다 보니, 생각보다 잘 하더라고요(웃음). 마트에서 물건을 팔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작은 것들에서 재미를 느끼기도 했어요. 그렇게 이런저런 경험들을 하면서 제게 남은 것들도 참 많죠. 어쨌든 어떤 일을 하든 점점 더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고 그게 느껴지니까 스스로 대견하고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했고요.



-대학교를 다니면서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 생겼던 꿈 중 하나가 광고쟁이가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군대 가기 전 반년 정도는 광고 회사에서 인턴을 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경험을 해보았더니 광고계의 현실은 제가 상상하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요.


군대에 들어가고 나서는 이것저것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이제 뭘 해야 하지 하는 고민도 많이 하고. 그러다 다시 복학을 했고,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현재 동업자인 형을 만나게 되었어요. 친하게 지내면서 미래에 대해 그려보다가 '이런 것 해보지 않을래?' 하는 느낌으로 의기투합하게 된 것이에요. 그런데 처음부터 푸드트럭을 했던 건 아니었고요.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봤어요.


-어떤 일들을 해보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그런 일들이 실패했을지언정 여기까지 오게 된 원동력이랄까 흔적이기도 하니까요. 

처음엔 '같이 키친'이라는 대학가 공동체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자취하는 대학생들을 묶어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한 기획인데요. 자취하는 학생들은 집밥을 해 먹거나 과일을 사는 것이 부담스럽잖아요. 먹는 것에 점점 소홀해지기도 하는 편이고. 그런 것들이 아쉽고 불편해서 공용 주방을 생각했어요. 공용 주방을 만들고 반찬 셰어도 하고, 요리해서 같이 나누고 이런 것들을 생각했죠. 음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교류도 될 것 같았고 학교 동아리와는 또 다른 새로운 공동체가 될 것 같았어요. 실제로 계획도 구체적으로 세워보고 시도도 했어요. 물론 그때는 자금도 없고 실력도 부족하니까 결국엔 무산이 되었지만요.


이후에도 낮잠카페나 파티룸 대여 사업 등등 이것저것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사업자 허가 절차라던가 복잡한 단계들이 많더라고요(웃음). 사실 잘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도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일들이 무산되고, 그냥 일단은 알바를 시작했어요. 돈이라도 모아보자는 생각으로요. 그러다가 푸드트럭 규제 소식을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었어요. 그때까지 모은 돈 600만 원으로 작은 트럭을 샀고 본격적으로 푸드트럭 사업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시작은 장난스럽게 한 것 같지만, 굉장히 재밌게 일하고 있고 만족스러워요. 가끔 꾀를 부리게 될 때도 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는 중이에요(웃음). 그렇게 3년 동안 우여곡절을 통해 많이 성장한 것 같고요. 만들고 싶었던 브랜드도 만들었고, 작지만 인정도 받으며 브랜드 자체도 성장시키고, 결정적으로 나도 성장했으니까요.


-특히 스스로의 어떤 점들이 성장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능력적으로, 인간적으로도 성장한 것이 가장 크게 얻은 것 같아요. 특히 다양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니까 '관계'에 대해서도 배운 점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간 길 자체가 남들이 가르쳐줄 수 없는 새로운 길이었거든요. 작게는 당장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니까요. 스스로 의지하게 되기도 했고 단단해지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능력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것 같고, 감정적으로도 안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어려운 경험들이 많았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하나씩 헤쳐나가다 보니까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스스로 자존심을 안 부렸을 때와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을 때가 좋은 결과로 나타나니까 더욱 좋았고요.


-'삐삣버거'라는 브랜드의 더 큰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중간 목표는 직영 매장을 5군데 정도 내는 것이고요. 더 큰 목표는 미국으로 진출하는 것이에요. 미국 하루 햄버거 소비량이 한 사람당 1끼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버거집이 많지만, 역으로 그래서 망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버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인정받으면 진짜 인정받는 것이니 기회가 된다면 미국으로 진출하고 싶어요. 삐삣버거라는 브랜드로는 그런 목표가 있어요.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고요.



Lifill ; 채워가는 삶



-손목 타투가 예뻐요. 쓰여있는 문구 "Lifill"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데요. 

Life와 Fill을 합친 단어예요. 제 좌우명이기도 한 '채워가는 삶'이라는 의미죠.


-좋은 의미이네요! '채워가는 삶'을 좌우명으로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해지네요. 

어렸을 때부터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제가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생각으로 인해서 주눅 들어 있었고 소심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고,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후에는 스스로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채워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채워나가는 삶'이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선택을 했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도 좋은 쪽으로 변화하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안 맞을 때에도 저 사람은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나랑 안 맞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안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 참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것도 참 어렵고 성숙한 태도인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미워질 때, 저 사람이 밉거나 싫은 게 아니라 그냥 그렇구나 인정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면서 그렇게 살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꽤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요. 꽤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변화하고 나서는 정말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가 되게 좋아졌어요.(웃음)


-개인적으로 저는 내가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네요. 비법은 뭘까요?

생각을 바꾸고 나니까 그냥 나를 인정하게 되었고, 만약 다시 부족함이 느껴지면 채우면 되는 거라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까 스스로가 싫었던 적은 없어요. 지치고 힘들 때는 있지만요.


-일상을 대하는 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유지하기 위해 일상에서 하고 있는 노력들이 있나요?

저는 크게는 두 가지 방식을 잊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일단 첫 번째는 '돌아보는 것'이에요. 어떤 순간들을 지내고 나서, 혹시 내가 이 관계들에서 내가 과하게 행동했거나, 혹은 낮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곰곰이 내 선택과 행동들을 돌아보는 편이고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돌아보는 습관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는 '기도하는 것'인데요. 기도의 내용은 보다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하는 것이에요. 어떻게 보면 기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저는 저의 부족한 면들을 어떻게 채워나가면 좋을지 제가 완벽하게 알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틀릴 수도 있고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으니, 최대한 노력하되 흘러가는 길을 알려달라는 것이죠. 어떤 능력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지켜봐 달라는 것이고,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짐하는 것이에요. 막막하고 힘들 때를 극복하는 나만의 습관이죠.



나를 위한 시간



-오래 준비하셨던 매장 오픈도 하신 요즘은 참 바쁘실 것 같은데 어떤 것이 가장 고민인지도 궁금합니다.

지금 현재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죠. 지금까지 건강도 나빠질 만큼 막노동도 하면서 열심히 해왔는 데 앞으로도 계속 달려야 하는 순간들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죠. 최근에 성격 자가테스트 같은 것을 재미 삼아 해봤는데, ‘일만 좋아하는 꿀벌’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재미 삼아한 것이지만 결과를 보고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죠.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속으로만 하던 고민이었는데 '너 사실 그렇지?'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 같았고요. 스스로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주지 못하고 혹사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각성하게 되었달까요?


채워나가는 삶도 좋고 스스로도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모두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고민해요. 나를 위한 취미를 즐길 시간도 없고요. 겉보기에는 자신감 있고 좋아 보이지만, 점점 속이 메말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래서 이제는 지금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다짐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


-그럼 지금 그냥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음악이 제일 하고 싶어요. 원래 첼로 연주도 했었고, 작곡도 취미로 했었거든요. 예전에는 밴드에서 객원멤버(첼로)로 참여해서 음반 녹음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작업들이 굉장히 호흡이 길게 필요한 일이고, 공을 많이 들여야 하니까 요즘엔 거의 못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남는 시간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여건이어서 그것이 제일 하고 싶더라고요.


-어쨌든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당장은 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라도 기회와 여유가 찾아오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이 생기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고 싶어서 달려오기도 했고요. 이젠 균형을 잘 맞추면서 하나씩 해나가려고 해요.


-그럼 이제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즐기고 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셈이네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제가 알지 못했던 부족한 것들을 느끼기도 해요. 이제 내가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다는 자만을 주의해야겠죠. 그렇지만 나의 시간도 갖고, 취미 생활도 할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싶은 그런 마음이 강한 요즘입니다.


어려운 경험들도 많았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하나씩 헤쳐나가다 보니까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스스로 자존심을 안 부렸을 때와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을 때가
좋은 결과로 나타나니까 더욱 좋았고요.




인터뷰이 : 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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