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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un 07. 2018

내가 주인공인 삶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니,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트로트, 피아노, 판소리, 그리고 영화?

내가 아는 사람 중 트로트를 가장 멋들어지게 부를 수 있는 그녀는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내게 조용한 연주곡을 들려주었다. 그러더니 언젠가는 판소리를 배워서 함께 길을 걷다 말고 심청가의 한 부분을 빠짐없이 불러 주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를 내뿜고 있어서 너무나 사랑스러운데,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최근엔 어느 활동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제 연기에까지 욕심이 난다고 말하며 웃는다. 다음번에 만났을 땐 또 어떤 관심사와 이야깃거리를 가득 안고 달려올까 기대되는 사람.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인터뷰를 다시 편집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가장 자연스러운 나에 대하여



-제가 꼭 묻는 질문부터 시작해볼까요. 유나씨는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로 표현하실지 궁금해요.

미리 질문을 듣고 사실 '관종'이라고 할까 '오지라퍼'라고 할까 고민했어요. 저는 오지라퍼인 것 같기도 하고 관종인 것 같기도 한데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거든요. 마치 이 문제는 닭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아요.(웃음) 둘 중에 뭘 먼저 하다가 된 건가 싶네요. 저는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좋아하고, 앞에 나서는 것도 좋거든요. 발표라던가 이런 긴장을 요하는 것보다는 무대 위에서 누군가 즐길 수 있는 퍼포먼스를 하는 내가 좋아요. 또 생각해보면 저는 삶에서 뭘 하면 주목받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남들은 인정 안 해줘도 나만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저를 말로 표현해내는 건 역시 어렵네요.(웃음)


-조금 의외인데요? 표현하는 것을 잘하고 좋아하셔서 무대에 나가고 싶어 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저는 관심받는 것이 좋지만, 무대 위에서 받는 것이 좋지 일상생활에서는..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개그 욕심은 있지만 평소에는 모든 말과 행동을 주목받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또 말로 나를 설명하거나 표현하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실은 오히려 몸으로 때우는 거예요. 노래를 부르라 하거나 춤을 추라고 하면 정말 잘 하겠는데, 말로는 못하겠어요. 그래서 이 인터뷰도 음악을 듣고 춤으로 춰달라, 나에 대한 노래를 불러달라 하면 더 쉬울 것 같아요.(웃음) 저는 머리 쓰는 것보다 몸 쓰는 게 더 쉬운 사람이에요. 


-그렇게 이야기하시니까 오히려 더 타고난 것 같아요 성향적으로.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데요.

제가 생각해도 타고난 것 같아요.(웃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엄마 아빠도 비슷하셨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어머니들끼리 반 대항으로 춤을 춰야 했던 기억이 있었는데요. 누가 할까 눈치 보시 더니 엄마가 나가서 추셨어요. 엄청 얌전하신 줄로만 알았는데 놀랐죠.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반전 매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아버지가 피아노 치실 줄 모르는데도 어느 날 혼자 엄청 감정을 느끼면서 막 치시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내가 부모님을 닮았구나' 생각했어요.


-첫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듣는 게 참 재밌어요. 또 다른 표현 중에 오지라퍼도 말씀하셨는데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사람들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그냥 일상적으로 예의상 하는 말일 수 있는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늘 진짜로 약속 잡고 만나요.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참 즐겁고,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나누려고 하는 편이에요. 



나를 직시한다는 것


-객관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나를 표현해보려 하면 약간 추상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유나 씨의 표현방식은 굉장히 거침없고 솔직해서 신선하네요. 

저에게는 관종이나 오지라퍼 그런 표현들이 되게 익숙한 말이라서 오히려 지겨워요.(웃음) 저도 처음에는 좀 더 있어 보이는 표현법을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그 말들이 저를 설명해주는 단어라고 하기엔 부족했어요. 그래서 그냥 제게 제일 자연스러운 것을 골랐죠. 


-유나씨에겐 자연스러운 일상이 제겐 특별해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왠지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몇 년 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무엇인가요?

기억에 크게 딱 하나만 남는 것은 특별히 없어서 오히려 언제나 열심히 살았고 재밌게 살았구나 싶어요. 뒤돌아보니 많은 것을 해온 것 같고요. 그래서 약간 후회가 되기도 해요. 하나를 제대로 더 해볼걸 하는 거죠. 피아노도 배우고 판소리도 배웠는데 하다가 만 느낌이어서 아쉬워요. 


그리고 수술을 했던 것도 제겐 특별한 일이에요. 안면비대칭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했는데요. 생각해보면 수술이 제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것도 있어요. 외모적인 관심도 많이 생겼고요. 수술 이후에 제가 외모를 콤플렉스로만 생각했었다는 것도 새삼 느꼈어요. 외모에 대한 관심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옷을 찾고 하는 일들이 즐겁게 다가왔어요. 외모지상주의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정말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자신감이 붙어서 더 적극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큰 수술이었지만, 굳이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숨기려 노력하지도 않아요.



-공감해요.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가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를 자세히 보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들을 알고 하는 과정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전에는 사진 찍히는 것도 굉장히 싫어하고 어색해했거든요. 예전 사진을 보면 항상 턱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거나, 자신감 없는 표정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가리지 않고 사진 찍는 것이 좋아요. 또 요즘 영상을 찍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카메라를 두려워해서 아예 염두하지도 않았던 일일 텐데 말이에요. 실은 저번 영상 수업에서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배우를 구하지 못해서 제가 연기를 직접 했는데 결과물이 나쁘지 않았고요. 나를 똑바로 보게 되고 가꾸는 것에 재미를 붙이니까, 외면이든 내면이든 나한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직시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나한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직시할 수 있는 태도는 정말로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어쩌면 최소한의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받쳐주고 있어야 가능한 태도이기도 하죠. 최근 유나씨가 직시했던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일단 최근에 미투 운동이나 위드미 운동의 전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제가 성별에서는 여성으로 약자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기득권일 때도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해요. 복잡한 문제이지만요. 그리고 이것과 결이 살짝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 또한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저지른 과오들이 많다고 느껴요. 잘 몰랐던 것도 많고,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혐오적인 말들을 했던 걸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요. 어떻게 하면 상처를 주었던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을까 싶어요. 


당시에 속으로 미워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제가 성숙하지 못해서 했던 행동들로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요. 그러니까 저는 여성으로서 피해받아온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내가 가해자였던 순간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싶은 생각인데요. 그것이 타인들에게 단지 이야깃거리로 소비되지 않고, 당사자에게 사과로 닿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 친구에게 내 진심이 전해질까 고민을 하고 있어요.


-최근의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감각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럴 의도 없었다고 발뺌하기 바쁜 가해자들 앞에서 오히려 피해자인 약자들은 자기검열을 심하게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어서 속상하기도 하고요.

작은 폭력이라도 그것에 민감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점점 더 직시하면 내가 나에게는 어떻게 했나 당연히 생각해보게 되고요. 그러면 나도 가해자였다는 감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젠더 문제를 떠나서도 '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저도 장난을 치다 보면 무의식 중에 혐오 발언을 하게 되고, 집에 가서 생각해보면 '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었는데' 싶을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저 또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감각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고 과도기여서 그런 것 같아요. 



지금 느끼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서서히 변해가고 있고, 저는 이렇게 여성들이 문제를 자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되어요. 사전 인터뷰에서 요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거기서 느끼는 것들도 많다고 하셨는데요.

노동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요. 정말 공멸하는 구조인 것 같아서 숨 막히고요. 진짜 갑은 보이지도 않는데 을들끼리 싸우는 것 같은 이런 식의 구조가 참 답답해요. 저는 프랜차이즈 빵집 아르바이트생인데 직원과는 또 직급 차이가 있고, 직원들 간에도 계약직과 정규직의 구분이 있어요. 개선이 안 되는 문제들인 것 같아서 답답한데 구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여기서 번 돈으로는 여행을 갈 계획인데요. 아일랜드에 가면 거기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거기서는 어떤 식으로 알바를 하는지 잘 관찰해보고 싶기도 해요. 


-노동하며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저도 요즘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또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랑은 다른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신가요?

일하며 가장 스트레스받는 것이 최저 시급을 주면서 일은 최고로 시키려 하는 태도예요. 이 시간을 꽉 채워서 나를 빼먹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바쁠 때는 너희가 일을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혼날 때도 있고. 그런데, 그런 말들 속에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는 느낌이 들거든요. 시급 때문에 사람을 많이 쓸 수는 없고, 그래서 최대한 사람을 굴려서 어떻게든 해내게 만드는 시스템이요. 결국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보니까 문제인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생의 복지는 정말 최악이죠. 쉬지 않고 앉을 시간도 없이 일할 때도 많거든요. 그렇게 알바가 끝나면 몸이 정말로 아파요. 그런데 아르바이트하면서는 몸을 잊게 되어서 아프지도 않아요. 이렇게 몸도 정신도 억압하니까 여유도 생기지 않고, 그러니까 그 화가 내게 내재되는 것 같아 슬퍼요.


-내재된 화를 잘 풀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여유를 가지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애초에 그런 화를 떠넘기는 근로 상태가 기형적이기도 하고요. 어렵네요. 분위기를 조금 바꿔서 마지막 질문인데요. 최근 생긴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작은 것이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무엇이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한 가지를 잘 아는 전문가가 되는 것보다는 이것저것 조금씩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거창한 배움이 아니더라도 자잘한 배움들을 많이 배우고 싶고요. 요즘 가장 배우고 싶은 건 뜬금없지만 바느질이에요. 바느질을 잘 해서 옷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의식주는 스스로 어느 정도 해결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목공 같은 것도 배우고 싶어요. 내가 입는 옷, 먹는 것, 사는 집을 만드는 것에 대해 잘 알고, 관여할 수 있으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그것이 결국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에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니까요! 혹시 방금 관종 같았나요.(웃음)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해 결과물을 내놓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편집이 덜 된 브이로그부터 올려야겠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물을 올리고 꾸준한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고요. 덧붙여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언니가 오래 이 인터뷰 연재를 진행해서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때 꼭 다시 찾고 싶어요. 솔직히 이 말은 미리 준비했어요. 감동이죠?



의식주는 스스로 어느 정도 해결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목공 같은 것도 배우고 싶어요. 
내가 입는 옷, 먹는 것, 사는 집을 만드는 것에 대해 잘 알고 관여할 수 있으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그것이 결국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에요. 






인터뷰이 : 최유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samyo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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