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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ul 11. 2021

요령 없이 걷기

요령 없이 걸어가던 그 모든 시간들



"나, 전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날 수 있었는데…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해서 날았는지 생각이 안 나."

- <마녀 배달부 키키> 중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엔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꼬마 마녀 키키의 성장기가 담겼다. 키키는 타고난 능력으로 하늘을 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슬럼프가 찾아온다. 그리고 이내 아무 생각 없이도 잘 되기만 하던 모든 일에 삐그덕, 제동이 걸린다. 빗자루를 타고나는 것도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던 것들도.


'갑자기 왜 안 되지?'

'예전엔 대체 어떻게 되었던 거지?'


키키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아무 생각 없이 하던 것들은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만 진다. 슬럼프에 빠지고 만 것이다. 과거엔 잘만 하던 것에서 갑자기 버림을 받은 외로운 기분. 키키의 고민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오래 노력했던 것들에 갑작스레 흥미가 떨어질 때, 꾸준히 해온 일에 슬럼프가 찾아온 후 회복이 어려울 때,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갑자기 새삼 낯설어질 때.


오히려 조금 더 잘해야지, 좋은 결과를 내 보아야지 하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행동들이 낯설어지고 모든 것들을 계산하게 되는 것이다. 키키의 고민처럼, 어쩌면 많은 일들은 우리가 가장 요령이 없었을 때 잘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3년 전 만났던 친구들의 인터뷰들을 시간이 쌓인 후 묶어 내려니 어쩐지 키키의 고민이 떠올랐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거나, 막 회사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자기의 일을 찾아 열심히 일상을 일구어 가던 우리의 이야기들은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애틋하고 새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때와 비슷한 고민과 생각들은 여전히 이어져 있기도 하고, 아주 약간씩 달라진 모습으로 우린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몇몇 인터뷰이들은 과거의 인터뷰를 보고, 과거의 자신에게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우린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고, 그때엔 더 요령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지금보다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해 나가던 일들도 있었다. 만약 지금의 내가 복잡한 생각과 고민들로 인해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면, 과거의 나의 대답들이 들려주는 용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상황이 바뀌어 버린 2021년, 3년 전 인터뷰들을 다시 브런치 북으로 묶는다.


이제 우리에겐 그때보다 조금은 더 요령이 생겼을까? 무엇들이 바뀌었고 무엇들은 그대로일까. 모두가 특별하다기보단 모두가 고유하다는 생각이 이 인터뷰들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 그러니까 우리가 앞으로도 각자에게 있는 고유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기를, 더 많은 시간이 지나게 되더라도 요령 없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진 않기를.


문득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순간 다시 찾아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결국 과거의 나의 목소리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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