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씨앗 Jun 22. 2021

[엄마 일기] 엄마는 나를 안 좋아해...(1)

우리 집 삼순이는~ 우리 집 삼 순위는~ 우리 집 3순위는~

 "엄마는 어차피 별로 내 생각 안 하잖아."

 핸드폰을 쳐다보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엄마는 무심히 대답했다.

 "자식을 생각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어? 형편 상 못 챙기는 거지..."

 커피를 홀짝이던 나는 엄마의 대답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다시 질문을 이어간다.

 "자식 중에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며? 어차피 나는 덜 아픈 손가락이잖아. 엄마, 솔직히 자식 중에도 더 이쁜 자식이 있고, 덜 이쁜 자식이 있잖아. 말해봐. 그렇지? 나는 있던데.."

 엄마는 여전히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체, 무심히 말을 한다. 하기 싫은 대답을 하듯이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내 내가 기다리던 대답을 한다.

 "더 마음이 가는 놈이 있기야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말로 있다고 하냐."

 "그래, 맞아 말로는 못하지. 하지만 있기는 있잖아."

 나는 알던 대답이니 굳이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 중에 검정소와 누렁소 이야기*가 있다.


 두 마리다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고 물었을 때,

농부의 처신은 참 현명했다. 어릴 때는 궁금했었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 중에 누가 제일 좋은 지...?'

아마 그때 나는 엄마 말을 가장 잘 듣는 내가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는 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 둘 중에 누가 더 좋아?"

 라는 대답에 우리 삼 남매는 항상 당연하듯이 "엄마"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아빠 앞에서는 그 대답이 사실 쉽지가 않았다.

 자식 중에는 아픈 손가락이 있고, 예쁘지만 챙겨주지 못하는 자식도 있다는 걸 엄마로 살아보니 느낀다.


손녀들에게는  "너네 엄마는 어릴 때 말 잘 들었다. 너네 엄마는 스스로 다 잘했다."

남편에게도  "얘는 뭐 속 썩이는 건 없었지."

 다른 이들에게도 "내가 뭘 챙겨줄 시간이나 있었나, 다들 스스로 다 컸지."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 항상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셨다.

 나는 누구에게든 '나 혼자서 컸다.'라고 얘기하곤 했다.

 어린 시절, 자립심있게 했던 행동에 대한 자긍심과 뿌듯함이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어떻게 커? 부모가 다 뒤에서 고생해서 키워놨더니...."

엄마는 나의 그런 발언에 가끔은 수긍하셨고, 가끔은 발끈하셨다.


 물론 나 혼자 큰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혼자서'는 언니나 동생처럼 엄마 도움 없이 혼자서 스스로 하는 것이 많았다는 의미였다. 둘째인 나는 언니를 보고 배우고, 동생의 부족한 점은 누나로써 챙겨주려 노력했고, 엄마의 심부름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노력했고, 가족들에게 미움받는 아빠도 사랑하려고 노력했었다.

 

 "여보, 우리는 애 둘만 낳아요. 둘까지. 셋은 절대 안 돼요. 노! 노! 노! 절대 노!"

 "나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한 5명쯤?"

 "절대 안 돼요. 못 낳아요. 못 키워요. 네버 네버 네버."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아이들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하나는 외로울 것 같고, 셋은 키우기 힘들고,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둘은 낳아보자.'


 늦된 첫째를 키우면서 첫째에 비해 또랑또랑한 둘째는 자연히 뒤로 밀리게 되었고, 둘째는 욕구불만이 생겼다.

 "엄마는 왜 언니 친구들만 챙겨줘? 왜 그건 언니만 사줘? 왜 언니만 공부시켜주는 데?"

 둘째는 날마다 언니와 비교해 자신이 부족하다며 울부짖었다.


 "왜 동생은 공부 안 하는데? 왜 맨날 나만 숙제하라고 하는데? 왜 동생만 사랑해주는데?"

 첫째는 날마다 동생과 비교하며 자신은 공부와 숙제만 시키고 사랑도 뺏겼다며 엉엉 울었다.


 엄마는 몸이 하나고, 사랑이 고픈 아이들은 둘이었다.

 부모는 둘이고, 아이도 둘이다. 첫째는 남편이 둘째는 내가 데리고 다닌다.

 엄마의 손은 둘이고, 아이도 둘이다. 왼쪽엔 둘째를 오른쪽엔 첫째를 데리고 다닌다.

 양 손에 딸 둘을 데리고 다니면, '어린 나'가 뒤에 따라오며 가끔 훌쩍인다.


 "언니는 언니라고 챙겨주고, 동생은 동생이라고 챙겨주고, 나는 언제 챙겨주는데?"

 나는 화가 날 때,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면 엄마에게 매일 떼를 썼었다.  

 엄마는 내가 '이상한 일에 떼를 쓰는 버릇'이 있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이 아플 때, 떼를 쓰는데 엄마는 내가 마음이 아픈 이유를 모르니 '이상한 지점에 떼를 쓰는 이상한 버릇'이 되어버렸다.


 나의 양 손을 하나씩 내어주어도 부족하다고 하는 아이 앞에 가끔 두 손을 놓고 엉엉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잡아보지도 못했던 손이건만, 늘 상 잡았던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은 당연한 것이니까.

 

 

 

  --------------------------------------------------------------------------------------------------

* <검정소와 누렁소>
황희가 늙은 농부에게 물었다.
"누렁소와 검정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그러자 늙은 농부는 일손을 놓고 일부러 황희가 있는 그늘까지 올라오더니
황희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누렁 소가 더 잘하오."
황희는 농부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만한 일을 가지고 왜 일부러 논 밖으로 나오시오?
또 귓속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늙은 농부는 이 말에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두 마리가 다 힘들여 일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더 잘한다고 하면
못한다고 하는 쪽의 소는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잖소?
황희는 농부의 말을 듣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달았다.

-----------------------------------------------------------------------------------------------



이전 16화 [엄마 일기]아이가아프면...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