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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Oct 16. 2020

[엄마의 일기]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

2020년 6월 어느 날, 애초에 나는 엄마처럼 될 수 없었다.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애 셋에 직장 다니면서 맏며느리로 사는 엄마의 삶은 고달퍼보였다.


나는 밤마다..

혹은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엄마가 화를 낼 때마다

'엄마가 우릴 다 버리고 떠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노력했던 거 같다.

(말썽 피우지 않기, 엄마 화내지 않게 심부름 먼저 하기 등)


엄마가 화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나 하나 잘한다고 엄마가 고된 삶이 나아지진 않았다.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건

엄마에게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삼 남매 중에 나는 딱히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는 자식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사고를 잘 치지 않는 내가 엄마를 위해 '말썽을 덜 부리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엄마의 삶이 더 편하거나 나아지지는 않았다.


엄마를 이렇게 애틋하게 생각하면서도

내가 아주 효녀이지는 못한 관계로 엄마를 많이 도와준 건 아니므로 

엄마의 삶은 그냥 늘 그렇게 늘 힘들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과

엄마의 힘듦의 많은 원인들이 아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원망과 미움이 아빠에게로 옮겨갔다.



아빠가 좀 더 월급을 꼬박꼬박 전달했더라면

아빠가 모임에 덜 나가고 엄마를 좀 도와줬더라면

아빠가 엄마를 위해서 뭐라도 좀 해줬으면....


아빠는 분명 나쁜 분은 아니셨지만 무심한 사람이었다.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해서 결혼해놓고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엄마는 아이들을 돌보고 회사에 나가 돈을 벌어왔고 살림도 해야 했으며

시부모와 시동생까지 보살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다 엄마가 번 돈으로 엄마의 시간을 쪼개서 엄마의 육체적 노동이 뒤따라야 했다.



대학 중학교 정도의 시기였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엄마 아빠는 싸우셨고, 엄마는 아주 진지하게 아빠와의 이혼을 고민하셨다.

우리 중에 나이가 젤 많았던 언니는 쿨하게 이혼하라고 했다. (중학생~)

우리 중에 나이가 젤 어렸던 동생은 상황 파악을 못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초등 3학년 이상~)

우리 중에 걱정이 젤 많았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초등 5학년~)


아빠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아빠 없는 아이로 자라고 싶진 않았다.

(아빠는 우리에게도 나쁜 아빠는 아니었다. 그저 좀 무심한 아빠였을 뿐...)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 그런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싶었다.

그것은 엄마의 희생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었지만 당시의 간절한 소원은 그것이었다.

'엄마가 버텨주는 일...'

 우리가 클 때까지 만으로라도 아빠랑 제발 이혼하지 말고 살기를....



결혼 30년차의 부모님..  2011년


그랬던 내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엄마처럼 방목하는 엄마가 아닌 좋은 엄마가 돼야지.'


3개월 딸에게, 아빠에게 선물받은 초코케잌을 바치는 엄마(나)   2013년


그런데 막상 내가 살다 보니 가끔은 그렇지가 못하다.

적어도 엄마는 애들 밥은 잘 챙겨줬고

적어도 엄마는 애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형편껏 사줬고

적어도 엄마는 육아와 일 모두를 병행해냈다는 것이다.



아직 나는 요리도 서툴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도 가격과 필요성을 따졌고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했지만 육아 또한 썩 완벽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다.



맞벌이 부모님을 둔 나는 어린 시절 평안한 자유의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엄마가 퇴근하고 오면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어질러진 집에 대해서 혼나고, 밀린 숙제를 했으며, 저녁을 먹고 씻고 자야 했다.


나는 그때, 그저 다른 집처럼

누군가(엄마)가 나를 옆에서 기다려주고

필요할 때 옆에 (함께)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실제로 아이들과 떨어진 적이 단 열흘도 없다.

첫 아이의 경우 둘째 출산했을 때를 제외하곤 나의 항상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필요로 하지 않든

열심히 보진 않지만 항상 아이들 곁에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 부족함

아내로서는 부족함

작가로서 아무것도 아님을...


모든 면에서 다 빵점을 받은 느낌...

엄마처럼 살기 싫은 게 아니라

애초에 나는 엄마처럼 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치열하게 살던 60대의 엄마는 

지금 늙어서 너무 좋다고 하신다.

어중떠중 살던 30대의 나는 나이 드는 게 싫다.


나도 한 때는 치열하게 살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가슴속의 불꽃이 모두 꺼져버린 느낌이 든다.


어릴 때는 엄마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다.

'엄마처럼은 못살겠다.'

그래서 다시 다짐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자.'

그럼 되지. 꼭 엄마라고 모든 걸 다 바쳐서 희생하고 내어줄 수 있는 건 아니다는 생각.

엄마가 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나도 사람인데... 사람답게 살자.'


그래, 엄마도 사람인데....

우리 엄마도 사람인데 참 힘들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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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무너진 어느 날....

일도 육아도 살림도 완벽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는 순간이 있었다.

엉망이 된 집에 엄마가 오셔서 예순이 넘은 나이로 바닥을 쓸고 닦고 정리를 해주셨다.

"나도 예전엔 청소 잘 못했어. 너도 알잖아. 근데 하다 보니깐 이것도 늘더라."


엄마는 젊어서도 애쓰고, 늙어서도 애쓰며 살고 계셨다.

한 직장을 18년을 다니셨고, 삼 남매를 대학까지 가르치고, 시집 장가를 보내고

손자들을 키워주며,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돌보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엄마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처럼은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참 애쓴다. 애썼다. 대단하다.


모처럼 청소된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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