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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May 17. 2021

[엄마일기]10살,아이에 대한 기대

"이제 할 때도 됐잖아..."

위로가 되는 한 마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로서 분노를 통제할 수 없는 날들이 있다.

시작은 대부분 매우 사소한 일이다.

준비물을 깜빡했다던지, 물건을 잃어버렸다든지, 언제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소소한 실수들

그런 것들이 엄마의 나쁜 컨디션(?)과 만나면 기폭제가 되어 폭발하게 되기도 한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난 어제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내가 우리 아이한테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내가 한 번 말하면 한 번에 하질 않고 3번 4번도 아니고, 6번 ~7번을 말해도 전혀 듣지 않고 꼭 화를 내야만 움직이는 아이... 자기 물건 하나도 안 챙기고, 학원을 가야 하길래 가방을 찾으라고 하니 같은 자리만 30분 동안 뱅글뱅글 돌고 있어.

 영어 과외 선생님은 아이가 요즘들어 집중력이 떨어지고, 저번 시간엔 50분 수업시간 중에 5분도 집중을 안했다는 거야. 종종 수업 도중 딴짓도 잘하고...

학교수업도 그래. 코로나라서 학교 온라인 수업 해야하는데 컴퓨터만 켜놓고 계속 딴짓만 하고, 엄마인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도 그때뿐이야.

 엄마 마음은 급한데 아이는 전혀 안 따라오니깐 나 혼자 열 받아서 애를 잡는 것 같기도 하고...

엄청 공부잘하게, 혹은 대단하게 키우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것조차도 욕심이 되어 버리네."



올해 3학년이 된 딸에 대한 나의 고민이었다.

화가 난 나는 나도 모르게 딸에게 무서운 소리(?)를 펑펑 쏟아내고 태권도학원을 가는 아이를 울려버렸다.

훌쩍훌쩍하는 아이를 달래기는커녕, 더 울려버리는 못난 엄마.


'무엇이 문제일까?'

심리상담사 일을 하는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래도 공부 이외에는 힘들게 하는 건 없잖아."


그렇다. 우리 첫째의 경우 행동이 굼뜨고 학습에 느린 것은 있지만 심성이 착하고 예술적 소질이 다분하다.

그런 장점도 물론 있지만 엄마인 나는 아이의 장점보다도 아직 부족한 점에 매달려있다.


"종합 심리 검사를 해 보는 건 어때? 그러면 왜 힘든지 나오지 않을까?"


친구와 전화를 하고 아이에 대한 상담을 하고 심리검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그러다 문득, 이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은 기억이 났다.

작년에 언니가 조카에 대해 나에게 하소연했던 내용과 똑같았다.

(작년 코로나 시기에 우리 조카는 3학년, 우리 딸은 2학년이었다.)


"3학년인데 E학습터 갔더니 수업만 듣고 교과서랑 배움 노트는 깨끗해. 수업을 들은 건지 만 건지... 숙제도 해놓고 다 놓고 갔더라고.. 오늘 담임선생님한테 전화 왔었어. 내가 회사를 다닌다고 애를 너무 방치한 걸까? 아 그래도 J도 이제 3학년인데 이제 스스로 할 때도 됐잖아."  -언니 말


 언니의 말에 나는 말했었다. (작년에...)

 "초등학교 3학년이면 10살이야. 10살은 아직 어린애야. 엄마가 옆에서 다 붙어서 하나하나 가르쳐 줘도 못 따라가는 애들이 수두룩하다고... 그런 아이들인데... 그래도 혼자서 그만큼 한다면 칭찬해줄 일 아닌가? 3학년이라도 옆에서 하나하나 다 챙겨줘야 해 아직은..."     - 작년, 내 의견


 분명 내 일 아니라고 생각나는 대로 막말했던 말은 아닌데.. 그렇게 조리 있게 아이의 편(?)에서 말했던 내가 1년 만에 똑같은 소리를 다른 이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화를 누그러트리고 신문 기사를 찾아보았다.

육아전문가인 오은영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


아이의 행동 교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20살까지 계속해줘야 하는 것이다.


이런 짓을 앞으로 10년 더 하라니... 눈 앞이 캄캄해졌지만 한 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아이다. 나는 뭐 안 그랬나. 나 또한 우리 엄마에게 굼벵이, 거북이, 느림보 소리 달고 살았던 과거가 있는데... 참을 인(忍)을 가슴에 새기며 내 업보려니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친구하고 통화를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찰나에 사촌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친구에게 그러했듯이 사촌동생에게 딸의 문제점을 나열하여 '엄마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더니 사촌동생은 딱 잘라 말한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지금이 딱 그럴 때야."


머리가 띵했다.

음악을 전공한 사촌동생은 대학교,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종종 초등 아이들 개인 레슨을 해주고 있다. 사촌동생에겐 내 딸 만한 제자들이 있었다. 사촌동생은 엄마가 아니기에 선생님으로서 아이들과 소통한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는 것들을 아이들은 음악 선생님에게 사소한 것(?)까지 모두 조잘거리며 다 이야기한다고 했다.


뭔가 전문가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라는 진단을 받은 것처럼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쩌면 내가 조금 예민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주변에 육아의 고충을 토로할 곳도 없고, 내 아이가 또래들과 비슷하게 잘 성장하고 있는지 엄마는 초조해할 수밖에 없다.


사촌동생의 말을 곱씹어본다.


"지금은 다 그럴 때야."

위로가 되는 한 마디...

시기적으로 다 그렇다는 말

그 말 한마디가 참 위로가 된 하루였다.

나만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길고 긴 2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 3학년 새 학기 시작과 개학을 했던 3월 초에 썼던 일기였다.  

2개월이 지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니 아이는 다시 안정되었다.

여전히 느리고, 여전히 잘 잃어버리고, 여전히 허둥대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화가 덜 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문제는 아이의 성장 속도보다 엄마인 내 마음이 항상 더 빠르다는 것이다.

내가 늘 FM처럼 살고자 노력했듯이 내 아이도 '남들만큼'만 하길 바라는 건데

그것이 엄마의 욕심이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학원에서 딴짓중인 태권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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