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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Aug 21. 2018

[엄마 생각] 늦된 아이의 말버릇

"OO 이는요~" 자기 이름을 먼저 얘기하는 우리 아이!  3인칭 화법?

엄마 : "이거 누가 했어?"

딸 : "다 O이요."

엄마 : "이거 누가 먹을 거야?"

딸 : "이다O이요."

딸 친구 : 야, 근데 너는 말할 때 왜 이상하게 말해?

딸 : (못 알아듣고..) 으응? 뭐가?

딸 친구 : 왜 대답할 때, 저요? 나라고 안 하고 니 이름을 말하냐고.

딸 :.... (뭐가 이상한 지 모름)


머리를 '쿵' 하고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어서 나조차도 이상한 지 모르고 있었는데

딸아이의 친구는 내 아이의 사소한 말버릇을 지적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누가 할 건지 물으면... "나. 저요." 등 1인칭으로 대답을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의 딸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릴 땐 

"내가 할래. 내가 할 거야."

라고 분명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는데... 4살인지 5살부터 '이다O'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꼭 붙여서 얘기했다.

듣는 엄마로서는 솔직히 귀엽기도 했고, 자신의 이름을 명확히 얘기하는 모습이 대견할 뿐이었다.


그런데 딸이 유치원을 다니면서 그 화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다른 아이들은 쓰지 않는 특이한 말투, 말버릇이 있으면 아이들은 재미 삼아 따라 하거나 놀려대곤 한다.
그런데 그 특이한 말버릇이 내 아이에게 있고,
내 아이의 친구들이 그것을 지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우리 아이는 갑자기 이런 이상한 말투를 쓰게 된 걸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인터넷에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고
여러 가지 추측성 댓글이 달렸다.
1. 자아가 강하거나 자존감이 높아서 그럴 수 있다.
2. 아직 어리기 때문에 크면서 고쳐지기도 한다.
3. 집에서 엄마가 무의식 중에 '엄마가 해줄게~' '다O이가 해봐~'등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한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댓글 중에 자존감이 높아서 그럴 수도 있다는 글을 보면서 한 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무의식 중에 한 말이 내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가 되고,
나의 사소한 행동들이 내 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 딸에게 자존감을 키우기 좋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빠'다.
지독하게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존재 자체로는 자존감이 자동으로 생길 것 같다.
우리 딸은 확실히 나와 있을 때와 아빠와 있을 때 다르다.
아빠와 있을 때 더 활발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아마 믿는 든든한 빽(?)인 아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 여행, 4살 딸


아이의 자존감, 특히 딸의 자존감은 아빠의 영향이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대학교 시절 알던 선배의 경우, 자존감이 꽤 높았는데 그 언니의 아버지에 대해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
가부장적이고 딱딱한 우리 집과는 반대로 너무도 자유분방하고 딸과 친구 같은 사이였다.
그 언니의 경우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원래 본인의 성격인지 자존감도 높고 자신감도 넘쳤다.

나는 좀 보수적인 경향으로 딸을 제어하는 역할이라면
나의 남편이자 나의 딸의 아버지인 신랑은 자유분방하고 매우 개방적인 편이다.
딸의 말이라면 앞 뒤 생각도 없이 무조건 YES를 외치는 아빠
내가 딸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엄마는 조금 부족해도 멋진 아빠를 구해줬으니 엄마의 역할은 다했다며


어쨌든 딸 사랑이 지극한 아빠와 살다 보니
육아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육아방법에 대해서 많이 부딪히기도 한다.
도와주는 만큼 발언권이 생기기 마련이니 도와준 만큼 참견도 많이 하는 편이다.
나는 징징대고 떼쓰는 아이의 성격이 아빠의 영향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이가 원하면 아빠는 대부분을 들어주려 노력한다.

잠 못 자면 안아서 재워주는 다정한 아빠.
딸 바보

아이가 뽀로로를 좋아하면 뽀로로가 지겨워질 만큼 많은 뽀로로 영상을 구해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게 있음 그게 얼마든 바로 결제하려고 한다.
아빠는 아빠만의 방식으로 딸을 사랑하고 딸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했다.

엄마인 나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가끔은 나의 편함을 위해
그것을 눈감기도 했었다.


그중 하나가 뽀통령 다음으로 인기 있는 캐리 언니였다.
캐리 언니를 만난 순간 내 딸은 캐리 언니와 사랑에 빠졌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이상하게 혼자 상황극을 하며 놀고 가짜 웃음소리를 냈다.

TV에서 캐리 언니의 말투
"캐리가 한 번 해볼게요. 캐리는 요 이렇게 만들어서 먹어볼게요."
등을 보며 따라 하다가 변하게 된 건 아닐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는 모른다.
4살인 둘째 딸은 자신의 이름을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무조건 내 거, 나 혼자 할 거야. 를 외친다.
7살인 언니는 내년에 학교를 가야 해서 갑자기 말버릇 고치는 게 시급해졌다.


뭘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많을까?
우리 어릴 때는 그냥 다 학교에 갔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안 그래도 늦된 우리 딸이 준비 없이 학교에 입학해서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엄마는 늘 걱정이 된다.

어릴 때 나도 늦됐다.
나는 12월생도 아니고, 보통 빠르다는 둘째에 7월생이었다.
그래도 나는 말도 느리고, 걷는 것도 다 느렸다고 했다.
한글도 늦게 떼고, 구구단도 늦게 외웠다.

그렇게 보면 늦된 것이 태어난 달 때문만은 아니다.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다른 친구들은 안 그러니까.
비교적 일찍 태어난 나도 어릴 때 발달이 느렸으니까.

그냥 느린 것을 인정해주고, 천천히 격려해주면 되는 것인데...
엄마인 나의 조급증 때문인지 쉽지만은 않다.


우리 아이의 3인칭 화법도 아마 머지않은 시간 안에 고쳐질 것이다.
이것이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에서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 아이가 조금 발달이 느린 것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12월생 아이를 키운다는 거..
조금 느림을 인정해주며 천천히 가도 되는데
엄마가 너무 우리 딸을 재촉해가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곧 눈이 오고 겨울이 오면 내 딸의 6번째 생일이 돌아온다.
6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면 내 나이는 8살이 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나는 부모에서 학보모가 된다.
부모와 학부모의 마인드는 다르다고 했다.

그럴 때 보면 사느라 바빠서...  아님 애가 셋이라서...
어찌 됐든 방목하며 키우신 우리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만 사는 게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이런 생각할 여유가 없으셨던 걸까.
아님 그냥 아이들을 믿고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두신 걸까.
어릴 때 너무 방목했다며 투덜거렸는데...
나는 오히려 내 아이를 너무 옥죄는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교육에 육아에 정답이 있기는 할까?
그리고 사람이 모두 다른데, 모두 같은 방법으로 살아야 할까?
다양한 사람이 사는 만큼 다양한 육아, 다양한 삶이 있을 것인데...
알면서도 끌려가는 것만 같다.


내가 자라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많이 변했는데..
한 편으로 큰 법칙들과 암묵적으로 원하는 것은 그대로 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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