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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Dec 20. 2016

[엄마 일기] 엄마와 딸, 끝나지 않는 핑크 전쟁.

핑크 핑크 한 유혹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등원 중인 첫째 딸.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가 늘 하던 고민이 있었다.


"엄마는 왜?! 핑크색 옷을 사주지 않는가?!"  


딸. 딸. 아들을 키우던 집에서 둘째 딸로 자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둘째 딸 피해의식(?)이 있었다.


아들 귀한 집에서 대우받지 못한다는 서러움(?) 때문에 언니에게도 대들고, 동생도 구박했다.

(12살 전 후로 미묘하게 온 감정의 변화로 집안의 얌전이가 쌈닭(?)으로 돌변)


나는 둘째라서 차별을 받았다라며 서러워하는 일화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핑크색 vs 회색 원피스'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명절을 맞아 새 옷을 사러 옷가게에 갔다. 언니와 나는 동시에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발견했다.


고학년인 언니는 깔끔한 회색 원피스가 좋겠노라고 했고,


아직 10살이 갓 넘은 3~4학년이었던 나는 환하고 빛나는 핑크색이 좋았다.


언니는 회색, 나는 핑크색 같은 원피스를 입으면 이쁘겠다고 생각했고, 엄마에게 우리의 의견을 말했다.


엄마는 원피스 이야기를 듣더니 고민에 잠기셨다.


그리고 잠시 후, 회색 원피스 하나를 언니에게 사 줄 테니... 언니가 입고 작아지면 나에게 입으라는 것이었다.


"싫어! 나는 핑크색 원피스가 좋아. 나도 새 옷 입을래... 왜 나만 맨날 헌 옷 입으라고 해."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였던 나의 꽤 큰 반항이었다.


그만큼 나는 절실하게 그 핑크색 원피스를 갖고 싶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결국 나는 엄마한테 혼났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주황색 나팔바지가 이쁘다며 엄마 마음대로 옷을 골라서 가게를 나왔다.


 나는 사람들에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간절한 소원마저 이루지 못한 둘째의 서러움'을 강조하며 나의 처지를 이해받고자 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번듯한 직업이 있었고, 요리도 잘하고, 삼 남매를 키우면서도 학교에선 기죽지 않게 해주었고, 6남매의 맏며느리, 물건을 고르는 센스도 있어서 제법 시골에선 '잘난 여자'였다.


그렇게 잘난 엄마지만, 엄마는 독불장군인 면이 있어서... 한 번 아닌 건 아니고, 아니라고 하면 우겨도 해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한번 안 된다고 하면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 영향이 있어서 인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남에게 부탁을 잘 하지 않는다. 부탁했는데 안된다고 하면 상처받을까 봐 그런 것도 있고, 두세 번 부탁을 할 수 없는 성격에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부탁을 한다.   )


불쌍한 삼 남매의 둘째는 그렇게 서럽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자, 비루한 어린 시절 얘기는 여기서 잠깐 접어두고,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그 가여운 둘째는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


 나에게는 딸이 둘 있다. 큰 딸, 작은 딸...


첫째는 예민하고, 둘째는 둥글둥글하다. 엄마는 우리 둘째 딸이 나의 어린 시절과 많이 비슷하다고 하셨다.


내가 봐도 둘째는 나와 닮은 점이 많다. 그에 비해 첫째는 신랑과 친언니를 반반 섞어놓은 느낌이다.


12월생이라 또래보다 늦되면서, 첫째이기에 챙겨줘야 할 건 많고, 잔병치례도 더 많고, 잘 운다.


나는 우는 소리가 거의 없어 제때 밥을  못 얻어 먹은 적이 있는가 하면, 언니는 2시간마다 울어서 엄마가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첫째는 정말 2~3시간마다 울어서 내 혼을 다 빼놓는가 하면 둘째는 정말 1년 간 거저(?) 키웠다.


둘째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나, 조용하고 얌전하다 보니 정말 엄마 말대로(?) 무신경해져 갔다.

엄마가 그랬다. 우는 아이한테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이뻐서 주는 게 아니라고, 떡을 안 준다고 안 이뻐하는 게 아니라 똑같이 사랑한다고.


나는 그것이 엄마의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내가 그 '비겁한 변명'을 다시 하고 있다.

(첫째도 둘째도 모두 똑같이 사랑한단다. 아가들아~)


둘째 딸을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확실히 떼를 덜 부리니까 관심을 덜 받는 게 사실이고,


너무너무 이쁘지만 둘째다 보니 언니 옷을 물려줄 생각만 하고

(가끔 새 옷을 사주긴 하지만... 언니 옷이 너무 많으니... 사기 아까워지는 게 사실이다..ㅠ.ㅠ)


첫째를 키우면서 핑크와 빨강만 보다 보니...

기왕이면 핑크 아닌 빨강이나 주황, 노란색도 사보고 싶고

평소에 안 사보던 연두색이나 하늘색도 사고 싶고, 모던한 갈색이나 회색 빛깔의 옷도 입혀보고 싶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독불장군(?)처럼 핑크색은 안 사주고, 회색 원피스 언니 꺼 물려 입히려고 했는지... 

내가 키워보니 알겠다는 것이다.

 (알긴 알겠는데... 이게 머리와 마음이 따로 가는 게 문제...)


그것은 엄마가 독불장군이고, 내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딸 둘 키우는 보편적인 엄마 마음이었던 것이다.


다만, 비극적 이게도 내가 헌 옷을 물려 입는 둘째였던 것일 뿐...

(참고로, 밑에 동생은 남동생이라 새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음...)


집에 안 간다고 길 바닥에 시위하는 중.  (바지 안 입어서 내복 바지)




 요즘 들어 둘째 딸에게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첫째 딸을 신경 쓰다 보면... 언니에 비해 후줄근한 둘째가 마음에 걸린다.

동생 옷 언니가 먼저 입어보는 중..

둘째도 이쁘게 해주고 싶긴 한데... 시간도 없고, 돈도 두배로 들고, 엄마 말도 안 듣는다.

노란 잠바에, 우산을 꼭 들고 가야한다고 우기심.

(이쁜 옷 사줘도 안 입으면 못 입히는 게 지금의 시기라 변명하고픈 엄마)




엄마에게는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하지만 그때 나의 마음은 절실했다. 그 핑크색 원피스가 꼭 입고 싶었다.

'언니만 맨 날 새 옷 사주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 나의 둘째도 혹시 그때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때의 나는 10살이고, 우리 딸은 2살이니... 아직은 괜찮다고 외치고 싶지만...ㅠ.ㅠ)



아마 우리 둘째도 커서 나한테 서운함을 토로할 것이고,

나는 아마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무신경한 엄마처럼 그 말을 건성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가 어린 시절에 대해 투덜거리면 늘 하는 말이 있다.

"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그 정도 해준 것에 감사하라.!"


우리 삼 남매는 궁시렁거리면서도 엄마의 말대로 그 정도에 감사하긴 한다.


엄마는 그 당시,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안 좋은 상황이었으므로 그 정도 해 주었다는 것은 대단한 게 맞으니까.


딸들에게 미안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변명처럼 말한다.


'지금 내가 해주는 것들이 비록 남들에 비해 부족하고 모자랄지라도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라고...

(엄마도 나름 최선을 다한 거야~ 아가들아....)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고민한다.


'지금 삶이 정말 최선일까? 더 최선을 다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에게 내가 종종하는 말이 있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살고, 자기가 만족하면 된 거라고...

비교할수록 불행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비교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아래를 보고 비교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위를 보며 비교를 하다 보니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줘야 할까? 나의 사랑스러운 두 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말한다.


"둘째의 서러움을 제일 잘 알면서 왜 그러느냐고...."


둘째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제는 둘째 딸이 아닌 엄마로 살고 있다 보니....


둘째의 마음이 아닌, 엄마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

(나중에... 너도 딸만 둘 낳아서 키워봐~내 맘을 알 거야~)


 겪어봐야 안다는 것...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어렵다... 엄마로 사는 거.)



머리만 안 묶어도 너무 쉽게 거지 패션(?) 완성하는 사랑스런 둘째 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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