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씨앗 Sep 08. 2016

[엄마의 정원] 3. 엄마의 화장대 A

예쁜 엄마와 공주님!  공주 엄마로 사는 일...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우리 엄마의 둘째 딸...



주말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문화센터에 간다.   

큰 딸이 1년이 넘게 다녔던 ‘트니트니’ 수업을 이제는 둘째 딸이 다니고,  

큰 딸은 또래 여자 아이답게 ‘발레’에 입문했다.

같은 어린이집에 '공주 취향'인 친구의 영향인지 다들 겪는 '5세 여아'의 취향인지...

부쩍 공주틱한 것들을 좋아하는 딸을 위한 선택이었다.


엘사 발레복 입은 딸 1


한동안 내가 계모(?)가 아닐까 하며 의심을 품게했던 지독히 '아빠바보' 딸내미가 요즘 변했다.

다소 신경질적이고 예민했던 딸이 천사가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엄마가 좋다며 나에게 안겼다.  

딸 아이가 자주 보는 트니트니 동영상 노래 중에 ‘우리 엄마는’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는 이러하다.  

 
 우리 엄마는 너무나 예뻐 / 우리 엄마는 향기가 나요
 우리 엄마는 너무 포근해 / 예쁘고 포근한 배게 같아요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해 / 자랑스러운 아들 될게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해 / 예쁜 딸이 될게요 오오오오
 
 우리 엄마는 너무나 예뻐 / 우리 엄마는 향기가 나요
 우리 엄마는 너무 포근해 / 예쁘고 포근한 배게 같아요
                                                                 -트니트니, 우리엄마는... 中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 가사인가?  

이 노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딸이 TV 앞에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엄마는 예뻐요~”라고 할 때, 나는 감동했다.  


“엄마가 예뻐?”  

“응, 예뻐…”  

나의 확인사살 질문에 천진하게 대답하는 귀여운 녀석을 칭찬해주기 전에 나는 거울을 꺼내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엄마가 예쁘다고?’   

그래, 엄마도 한때는 예쁠 때가 있었지.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도 꽃다울 시기이겠지만, 지금보다도 더 파릇파릇한 꽃다운 시절이 있었다.  

공주네 엄마의 꽃다운 시절 (27세)

그 좋은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이렇게 귀여운 고슴도치 새끼들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아이의 이 좋은 칭찬에 기뻐하기엔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은 비루했다.  

임신했을 때보다 5kg에서 최고 9kg까지 더 쪄버린 나는 어릴 때 보던 엄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툭 밀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동글동글 동글~

몸은 물론이고 눈, 코, 입, 턱 등 얼굴 구석구석 살이 붙을 수 있는 곳엔 야무지게 달라붙었다.  

푸석해진 얼굴, 기름진 머리, 가슴.배. 다리가 모호한 몸매까지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싫었다.  

(친절하고 자상한 우리 신랑은 나를 얼굴 큰 '키티'라고 비유해주심)

그래도 키티는 얼굴이 귀여우니 괜찮아~


핑계라면 핑계지만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느라 내 관리를 전혀 못하고 그저 전전긍긍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이고, 놀아주고, 아이가 잠들면 그때 끼니를 때우고, 또 놀아주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나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결혼하고도 아직도 총각 같아 보이는 신랑에 비해 나는 갈수록 아줌마스러워졌다.  

특히나 4년 동안 임신 -> 모유수유 -> 임신 -> 모유수유를 거친 나는 변변찮은 옷도 없었고, 늘 동네만 다니는 나는 화장 대신 모자만 쓰고 살았다.


아가씨 때는 화장품 값이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화장을 했던 나였는데, 지금은 스킨로션은커녕, 세수를 안 하는 날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면 그건 엄마가 게을러서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 시간만은 충분한 사랑을 주고 싶었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버틴 시간 40개월… (3년 좀 넘는 시간)  

기나긴 겨울 끝에 나에게도 봄이 왔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입성하게 된 것!  

단체생활 시작한 딸 2

물론 첫 달은 그냥 고생이었다. 건강하던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고, 한 달 내내 병 수발하며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고  나는 변신(?) 도모했다.  

결혼할 때 혼수로 산 화장대는 이미 딸내미 옷장이 돼버린 지 오래고, 오래된 화장품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화장품이 없었다.  나는 새 옷을 사고, 화장품도 새로 구입했다.


적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지만 지금은 꾸질꾸질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었다.

외모에서 오는 열등감은 생각보다 컸다. 아무리 공들여서 꾸며도 왠지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달라지고 싶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더 예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비루한 나의 차림과 관리 안된 나의 얼굴이 어느 순간 우리 아이의 얼굴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엄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는 꽤 ‘멋쟁이’였다.

직장생활도 하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로 미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같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 일찍 학교가 끝나면 나는 엄마의 화장대를 탐색했다.

내가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목록은 립스틱, 마스카라, 알로에 팩이었다.  

뭘 모르던 시절에도 화장하면 립스틱이었다. 뭔가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 엄마처럼, 아니 나도 조금 더 예뻐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알로에 팩은 붓처럼 생긴 솔로 얼굴에 바르고 시간이 지나 마르고 나면 껍질처럼 벗겨지는데 그 뜯는 재미가 너무 좋았다. 또 팩을 하고 나면 맨질맨질해지는 느낌도 좋았다.   

그리고 가장 나이 들어서 시도해본 것은 마스카라였다. 마스카라는 정말 신세계였다.

물론 어렸기에 화장하는 솜씨는 없었지만 마스카라는 대충 발라도 눈썹이 길어져서 정말 신기했다.

무겁게 떡진 마스카라를  하고 거울을 보면 왠지 예뻐 보이는 그런 신비한 힘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    덕선이 화장하는 장면


엄마는 아실까? 어린 시절 나와 언니가 엄마의 신발장을 구두를 신고, 엄마를 장신구를 걸치고, 엄마의 화장품을 바르고 미스코리아 흉내를 내며 걸어 다녔던 것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유쾌하다.

어린 시절 엄마가 집에 안 계신 것은 서운한 일이었지만 그때만은 엄마가 집에 안 계셔서 좋다고 생각했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첫째 딸이 요즘 부쩍 외모에 관심을 가진다.

아니 사실 이전부터 그랬다.

말을 하기 전에도 유독 핑크색을 집착을 보인 적은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대놓고  

“엄마 언니들 입술이 빨개요. 나도 저거 사주세요.” 한다.  

여름에 못난 발가락 커버해보겠다고 바른 핑크색 매니큐어를 보고도   

“엄마, 나도 이거 해주세요. 엄마처럼 이렇게 예쁘게 해주세요.”  

“엄마, 나도 핑크 드레스 사주세요. 공주 드레스 사주세요.”    


 44개월 된 딸내미 눈에도 걸그룹의 빨간 립스틱 화장이 이쁘고, 알록달록 매니큐어는 이뻐 보이나보다.


아, 딸 키우는 일은 어렵다. 아니 공주님 뫼시는 일이 어렵다.  


누군가는 딸 키우면서 꾸며주는 게 로망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천성이 부지런하지 못해 꾸며주는 게 자신 없었던 나로선 꾸며주는 게 싫어 아들을 바랐던 적도 있다.   

특히 절약해서 잘 살아보자고 조카가 입던 옷을 물려 입혔을 때는  

“너는 딸을 왜 그렇게 키우니…”  

“아들이에요?”  

“너무했다. 이건 남자 옷 아니야?”    

이런 가혹한 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난 그냥 편한 옷을 입히고, 편하게 왔을 뿐인데 딸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꾸미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당해야 했다.  

딸1, 5개월
딸1, 8개월
아들 아닙니다다~ 딸이에요, 딸!

참 슬픈 일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식으로 ‘여자는 미모’를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소신 있게 우리 큰 딸을 내 맘대로 키웠다.


그런데 이제 딸내미가 컸다고 지가 하고 싶은 것들을 주문했다.  

‘아, 나도 한 때는 핑크색 원피스를 안 사준다며 두고두고 엄마를 원망했었지’  

그런 걸 생각하면 사줘야 하는데…. 사줘야 할 게 너무 많다.  

쇼핑이 허락된 명절을 맞이하여 ‘핑크 드레스, 핑크색 구두, 미미인형’까지 사줬지만 우리 딸은 내일은 다른 걸 또 사달란다.  


공주를 키워내는 일은 어렵다.  

그런데 우리 집에 앞으로 공주로 자라날 꿈나무가 하나 더 있다.   

오늘도 아들이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앞으로 공주가 되실 우리 둘째 공주님~   

아직 18개월인데, 질투심이 늘어서 언니 옷을 입어야 한다며

옷장에서 언니 옷을 꺼내와 자기에게 입혀달라고 떼쓴다.

언니 옷을 입고, 언니 구두를 신고 신나서 웃는다.  

어린이집 하원하시는 둘째 공주님
언니 왕관 뺏어쓰고 흡족한 공주2

아, 공주 키우기 힘들다.    

문득 엄마가 학창 시절 내게 지어주신 별명이 생각난다.  

일명 <거. 지. 공. 주>였다.  

공주는 공주인데, 가진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거지 공주.  

돼지우리처럼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거지꼴을 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공주라서 거지 공주.  

그리 유쾌하지 않은 뜻이지만, 나는 그래도 공주라서 좋다며 그 별명을 흔쾌히 받아들였었다.

거지라도 공주라면 좋다는 나.  

공주병 충만한 엄마 닮은 딸 내미는 벌써부터 공주다.

그런 딸을 볼 때마다 우리 엄마가 나 키울 때 나도 저랬나 싶다.


이전 03화 [엄마의 정원] 2. 엄마의 탄생 B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