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껍질을 까고 있을까?
추석이었다.
아빠는 산에 다녀오시면서 알밤 한 보따리를 주워오셨다.
그날 저녁 엄마는 저녁 식사 후 TV 앞에서 알밤 껍질을 깠다.
밤톨을 깎아서 새하얀 알밤을 꺼내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고 계셨다.
TV를 보다가 무심결에 알밤으로 손이 갔다.
알밤 하나를 먹었더니 고소하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하나를 더 먹었다.
엄마는 알밤을 까고 나는 알밤을 먹고
엄마는 알밤을 까고 아빠는 알밤을 먹고
엄마는 알밤을 까고 언니는 알밤을 먹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소쿠리에 담긴 알밤 껍질을 다 깠으나
그릇에 담긴 알밤의 개수는 5개도 되지 않았다.
엄마는 수북이 쌓인 알밤 껍질과 몇 개 남은 알밤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나는 엄마가 그 알밤으로 뭘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추석이 지났으니 제사상에 올리는 것도 아닐 테고
먹어도 뭐라 하지 않으니 먹은 것뿐이었다.
추석이 지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냉장고에 들어있던 음식이며 과일들을 주섬주섬 꺼내 가방에 담으셨다.
그중에 아빠가 산에서 주워온 알밤도 있었다.
집에 가서 맛있게 삶아서 먹으리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알밤을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뿔싸..
벌써 벌레서 생긴 듯했다.
나는 알밤을 까기가 두려워졌다.
그래도 아빠가 산에 가서 힘들게 주워온 알밤을 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나는 싱크대에 서서 알밤을 깠다.
그중에 무시무시한(그들에겐 내가 더 공포스럽겠지만) 알밤 벌레도 있었다.
귀염둥이 둘째 딸이 거실을 지나가다 싱크대에서 알밤을 까던 나를 발견하고 물었다.
"엄마 모해?"
"알밤 껍질 까"
호기심에 찬 초롱초롱한 눈으로 둘째는 알밤을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크게 벌린다.
나는 깨끗하게 깐 알밤을 귀염둥이 입 속에 쏙 넣어준다.
"음~~ 맛있는데?"
딸은 그 자리에서 알밤 서너 개를 더 얻어먹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비웠다.
알밤 껍질을 깨끗하게 까기까지 시간은 꽤 걸리는데 먹는 건 순간이었다.
'오호라 알밤 껍질만 까면 아이들도 잘 먹겠구나~'
거실에서 블록 놀이하던 딸을 불렀다.
알밤 까서 하나는 딸을 입에 넣어주고 하나는 내가 먹고
둘이서 싱크대에 서서 알밤을 까먹고 있자니 다리가 아팠다.
'이럴 바에 편하게 까자'
아예 자리를 잡고 식탁에 앉아 알밤을 깠다.
아직 벌레에 친하지 못한 나는 알밤 벌레를 발견하고 생밤 까기를 포기했다.
'살아있는 벌레를 볼 바엔 다 삶아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알밤을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고 전부 삶았다.
그리고 알밤 껍질을 까서 딸 하나
알밤 껍질을 까서 나 한 입~
알밤 껍질을 까서 신랑 하나
온 가족이 돌아가며 골고루 먹었다.
아무리 삶았다지만 아직은 단단한 알밤 껍질을 까려니 손이 아팠다.
입은 4개인데.. 알밤 까는 손은 하나뿐이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묵묵히 사라져 가는 알밤을 까던 엄마.
그리고 빈 소쿠리와 알밤 껍질만 들고 유유히 떠나던 뒷모습...
엄마도 누군가 알밤을 먹기를 바라고
혹은 누가 알밤을 계속 집어먹으니 알밤을 계속 까셨던 게 아닐까?
제비들처럼 알밤을 쏙쏙 먹는 아이들을 보며..
접시에 내려놓기 무섭게 사라지는 알밤을 채우기 위해
그날 밤 나는 열심히 알밤을 깠다.
소쿠리의 가득한 알밤을 거의 다 까고
묵직한 허리를 펴본다.
딸이 자라면서 나는 어릴 때 내 모습을 보고..
어릴 때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30대가 반 지났다.
직장다니느라 애 키우느라 바빴던 우리 엄마의 30대..
그때를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도 참 젊고 이뻤는데...
시간이 흘러 내 아이들이 클 때가 되면
지금의 나도 참 좋은 시절이었구나 할 텐데..
아등바등 힘들어하지 말자.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일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