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초반 친구를 만나면 자기소개를 했고, 새 학기에는 나를 소개하는 글을 작성해서 교실 뒤 벽에 붙여놓기도 했었다.
1. 이름 : 김 OO
2. 나이 : (다 같은 데 왜 굳이 적어야 했을까?
3. 사는 곳 : (사는 동네도 비슷한데 굳이...)
4. 취미 : (취미는 좋아하는 것이니 마음대로 적을 수 있다.)
5. 특기 : (문제는 특기는 진짜 남보다 뛰어난 재주인데... 적을 게 별로 없었다. 나는 그림 그리기라고 적었던 것 같다.)
6. 좋아하는 OO.......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으로 시작하는 여러 개의 무수한 질문이 나를 향해 몰려왔다. 어느 것은 쉽게 어느 것은 아주 고민 끝에 적었다.
학교 소개에서는 10가지였으면, 내가 자랄수록 소개의 항목을 점점 늘어나 언젠가는 나를 소개하는 100문항의 답을 적은 적도 있었다. (좋아하는 색, 숫자, 음식, 날씨, 계절,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그 답변을 적기 위해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늘 생각하고 기억해 두는 편이었다.
아마 그 질문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엄마, 나는 어디가 제일 예뻐?"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열 살 전후의 나이에 내가 엄마에게 물었던 질문이었다. 아마 가장 자신 있는 신체부위는?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친구들끼리의 대화였을까? 아니면 자기 소개하면서 필요한 것이었을까?
엄마는 정말 진심으로 고민에 빠진 눈빛으로 한참을 뜸을 들이셨다. 그때 깨달았다. 모든 엄마들이 고슴도치는 아니라는 것을... 적어도 우리 엄마는 외모를 평가할 때만은 고슴도치 이론을 접어놓는 팩폭러(?)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참을 내 얼굴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엄마는 무겁게 말을 꺼냈다.
"음... 눈썹?"
"에이~ 눈썹이 뭐야~"
"넌 눈썹이 날 닮아서 참 그린 거 같다."
애써 나를 위로하려던 건지, 자신의 눈썹을 자랑하는지 모르는 엄마의 말에 나는 잔뜩 심술을 부렸다.
우리 아름다운 동요에 있지 않은가?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그런데 왜 내 얼굴에는 반짝이는 부위가 없단 말인가. 그리고 그중에 겨우 찾은 곳이 고작 눈썹이라니... 눈, 코, 입술 등을 생각한 나로서는 많이 실망했었다. 나는 잔뜩 심통을 냈고 엄마는 다시금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셨다.
"아~ 맞다."
엄마는 뭔가 생각나신 듯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진짜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엄마의 말을 기다렸다.
"넌... 손이 예쁘지. 손이 나를 닮았어. 내가 어릴 때 손이 딱 이렇게 생겼는데... 나이 먹으니까 손도 미워지네."
엄마는 문득 내 손을 잡더니 자신의 손과 비교해보셨다. 짧고 통통한 손, 짧은 건 똑같은데 통통하고 주름진 엄마의 손은 내 손과 달라 보였다.
"나도 왕년엔 손이 참 예뻤는데... 나도 아가씨 때는 이쁘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망가지기 전엔..."
결국 그 날밤 엄마는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뭐야. 그럼 내 눈, 코, 입이 못생겼다는 소리야?"
"못생겼다는 건 아니고, 하나하나 다 뜯어보면 예쁜데... 뭔가 다 합쳐놓으니까...."
엄마는 말끝을 흐렸지만 이미 나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한참 외모에 신경 쓰일 어린 소녀에게 그런 막말(?)을 서슴없이 하던 엄마였다.
"얼굴도 아닌 손이 예쁜 여자는 뭐야. 이쁠 거면 보이는 데가 이뻐야지. 누가 손을 본다고."
사춘기에 한참 외모에 심취했을 때도 얼굴을 보고 생각했다.
눈이 작은 눈은 아닌데 그렇다고 막 예쁜 눈은 아니고, 코가 아주 낮거나 못생긴 건 아닌데... 뭔가 예쁜 거 같지는 않고, 입이 딱히 미운 건 아닌데 입만 보면 예쁜 입은 분명 아니었다.
'정말... 하나하나 뜯어보면 괜찮은데 합쳐놓고 보니 인물은 아니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엄마의 평가는 제법 정확했다.
젊은 시절, 미남 미녀 소리 좀 들었다는 부모님에 비해서 우리 삼 남매의 얼굴은 그저 그런 평범한 얼굴이었다.
"엄마, 아빠는 예쁘고 잘생겼다는데 우리는 왜 이래."
객관적으로 엄마 아빠의 외모가 우리 삼 남매의 외모보다는 우수했다. 엄마의 동그란 눈과 아빠의 오뚝한 콧날은 아무에게도 유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받은 좋은 유전자를 찾고 찾은 것은 '가지런한 눈썹'과 '그나마 예쁜 손'이었다.
[ 예쁜 손 ]
언젠가 탤런트 이혜영이 다리보험을 들었다고 해서 나온 적이 있었다.
"다리 보험을 왜 들어?"
어린 나는 이해가 안 됐다.
기사 내용을 보면 2000년도에 국내 연예인 최초로 미국계 보험 회사의 다리 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이혜영이 납입한 보험료는 월 60만 원 선으로 보험금이 최대 1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모델 중에 부분 모델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 그럼 나는 손이 예쁘다. 어디 가서 제일 자신 있는 신체부위를 물으면 손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엄마가 내 손이 예쁘다고 했다니 너도나도 자신의 손을 꺼내 나와 비교해보았다. 정말 나는 반에서 손이 예쁜 편이었다. 하지만 반에서 제일 예쁜 손은 아니었다. 가지런한 손톱과 하얀 손, 선은 고은 편이었으나 문제는 손가락 길이가 짧았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서 길쭉길쭉하고 예쁜 손을 가진 아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때 알았다. 나의 손은 그저 내 몸 중에 가장 나은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굳이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지만, 굳이 하나를 뽑으면 제일 자신 있는 것이 '손'이 되었다. 손과 함께 발가락도 참 예쁘다는 칭찬을 들었는데... 정말 어린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맨날 양말 신고 다니는데 누가 내 발가락을 본단 말인가?'
나름 '손발 미녀(?)'였는데.... 지금의 내 손은 참 못생겼다.
여전히 굳은 살도 없고, 손톱도 가지런하지만, 뭔가 쭈글거리고 마음에 안 들었다.
애 키우느라 관리 안 한 10년의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컴퓨터 파일 속에 얼굴 대신 가득 찍혀있는 손 사진을 보니 문득 그 시절 생각이 났다.
아이의 예쁜 손을 보니.. 어릴 적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젊었을 때는 손이 참 예뻤는데... '
그때의 엄마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는 그때 자신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젊은 날의 그때의 예뻤던 손이 그리웠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