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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17. 2019

#10

손잡고걷기, 말을놓다, 두려움

연애 아니 연애 비슷한 것에도 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누군가와 만나면 대부분 그 사람에 맞추려 노력한다. 그리고 끌려간다.     


이것은 연애 혹은 만남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는 말도 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에게 대상이 되었던 누군가들이 모두 나로 하여금 더 낮고 약한 위치에 서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이용하거나 내가 그들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내가 만나보기로 결심했던 이들 모두가 근사한 사람이었다고.     


5시간이 넘도록 가방에 고이 넣어두고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 이것저것 하고 난 후에, 닭똥집을 먹던 가게 야외테이블에서 나는 그녀에게 선물을 건넸다. 나로서는 그곳이 오늘 만남의 마지막 장소라고 여겼었기에.     


소주 3명을 둘이 나눠 마시고 맛있는 안주를 함께 먹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서로가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집에 언제 들어가는지도 묻지 않은 채 그냥 홍대 방향으로 함께 걸었다.      


.     


첫 앨범 때부터 가장 최근의 책을 낼 때까지 쭉, 내가 참 좋아하는 이석원님이 그의 책 ‘보통의 존재’에 밝혔었다. 손잡는 것을 좋아하고, 아주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나 또한 손잡는 것을 참 좋아하고 특별한 일이라 여긴다. 서로 함께 손을 잡는다는 행위를 그 어떤 다른 행위와 비교할 수 있을까. 서로의 체온과 모든 마음이 전해지는 유일한 통로.     


“우리 손잡고 걸어요.”     


그녀는 그녀의 왼손을 내 오른손의 아래에 슬며시 내밀었다. 나라면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걱정하며 절대 할 수 없었을 제안. 걷고 싶은 거리 근처, 야외 공연하는 이들이 애용하던 계단이 많은 장소. 나보다 한 계단 위를 걷고 있던 그녀가 허리를 숙여 왼손을 건넸다. 나는 그녀의 왼손을 잡고 그녀를 나와 같은 고도 위 공간으로 이끌었다.     


손으로 그녀를 잡은 나의 오른 팔뚝과 몸 전체가 기분 좋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손을 잡는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일지는 모르지만, 빛나는 순간.     


“커피 마시고 싶어요.”

“네, 저도. 카페에 가요.”     



지금은 뉴발란스가 위치한 곳, 당시 그 건물 1층에는 안경점이 있었고 2층에는 ‘H’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손을 잡고 2층 카페에 올랐다. 나로 하여금 자연스레 다음 공간으로 안내하게 한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라떼 한 잔씩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약간 취기가 오른 그녀와 나 사이의 대화는 오늘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편해지고 경계가 없어졌다.     


.     


“말 놔요, 계속 이렇게 존댓말 하는 거 싫어. 불편해.”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제가 말을 잘 못 놓는 편이어서요.’     

이런 멍청한 대답을 할 뻔 했으나, 가끔은 술이 많은 것을 해결해준다.     


“그래! 근데 술 진짜 잘 마신다. 하나도 안 취한 것 같아.”

“우리 둘 다 안 취한 것 같은데!”

“난 좀 취한 것 같아.”

“근데, 오늘 카레 맛있었어. ㅇㅈㅎ 공연도 너무 좋았어.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     


쓸데없는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그녀는 내게 말했다.      


“우리 집 갈래?”     


마침 창밖으로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분명히 들었다.   

  

.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고 나는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못들은 것처럼 다른 종류의 쓸데없는 말을 했다. 두 문장 정도를 이어서.     


그래, 라고 답을 해도 실제로는 안 갈 수도 있고, 집에 간다고 한들 무슨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지만,      

나는 그 때 왜 그 말을 못들은 척 했을까? 뭐가 두려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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