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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Nov 17. 2019

#9

임무완수

ㅇㅈㅎ님은 나도 팬으로써 좋아하는 뮤지션이다. 보통 뮤지션이라면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에 크게 팬심을 드러내지 않거나 본인 음악에 갖는 자부심이 강해서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음악을 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만큼. 나는 그냥 여기저기의 언저리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 공연은 ㅇㅈㅎ님을 비롯해서 여러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공연이었다. 클럽 빵의 관객석 배치도 평소에는 의자석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모두 바닥석이었다. 평소 12천원 혹은 15천원 하던 관람요금도 이날은 25천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평소 같았으면 늘 공연을 하던 곳이었던 클럽 빵에서, 나는 그녀와 바닥에 깔려있던 매트리스에 나란히 앉아 훌륭한 뮤지션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이날은 특집 공연이었던 만큼 모든 아티스트의 공연 때 분위기가 다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설 때, 빵 사장님과 한 차례 마주치며 나는 인사를 드렸다.     


“어, 잘 지내니?”

“네. 잘 지내시지요?”     


.     


클럽 빵을 나서며 그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내리막길을 걸으며 홍대입구역 방향을 향했다. 사실 공연이 끝날 무렵부터 나는 이 다음 일정을 언제 제안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나는 그녀와 보낼 추가 일정을 획득할 수 있게 될 것인가.     


그런 고민으로 인한 결과물은 대체로 허무하게 혹은 어색하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고민들을 하다 나는 그냥,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음, 좋아요. 소주도 좋고.”     

‘오, 그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일은 아니지 뭐...’     


.     


3~4분쯤 걷다가 그 유명한 청운부동산 옆 닭똥집과 대구식 불고기를 파는 작은 집 앞에 머물렀다. 늘 보도에도 테이블이 많이 깔려있던 그곳.     


“여기서 소주 한 잔 할까요?”

“네, 좋아요.”     


그곳은 ‘담벼락’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는데, 연탄불고기, 똥집볶음, 소금구이 등이 유명했고 늘 사람이 많았다(현재는 없어졌다). 우리는 연탄불고기와 소주를 시켰고 오늘 공연은 어땠는지, ㅎㅂ에서 먹은 카레는 어땠는지, 등등 물었다. 나는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     


한 잔, 또 한 잔. 나도 술을 적당히 잘 마시는 편이었지만, 그녀는 나보다도 더 변함이 없었다. 술을 어디로 흘리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여하튼 서로 한 병 정도씩 마실 때까지 그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취할 것만 같은 기분.     


사실 그날 그녀에게 주려고 사두었던 선물이 있었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립글로우’. 립스틱과 립글로즈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나는 전혀 몰랐지만 그냥 샀다. 요즘 여성들이 좋아하는 선물이라길래. 나는 취하기 전에 그것을 그녀에게 건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언제 헤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     


연탄불고기 한 접시를 비우고 우리는 똥집볶음을 시켜서 먹었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도 좋았지만 그 집의 안주도 참 맛있었다.     


“어, 저기 김간X 지나가네요.”

“그래요?”     


나는 그 당시에는 뮤지션 김간X에 대해 이름만 알고 잘 모르던 때였다. 지금도 잘은 모르지만, 그녀는 그에 대해서 친숙하게 말을 꺼냈고 그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다.     


똥집볶음도 거의 비워가고 소주 세 병이 다 비워질때쯤 가방에서 나는 선물을 꺼냈다. 만나기 한 시간 전쯤 먼저 홍대에 나와서 구입해서 고이 포장해두었던 그것을 나는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노상의 닭똥집 집에서.   

  

“이거, 드리고 싶었어요.”

“아, 네. 이런 곳에서...”

“...”

“고마워요(피식).”     


.     


그녀와 카레도 먹었고, 공연도 봤고, 저녁 겸 술자리도 갖고, 준비했던 선물도 건넸다. 정해놓았던 목표를 다 이루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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