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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피free dompea ce Sep 13. 2024

나의 할아버지, 다니엘 1.

아직 제목을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 다니엘 1.



 다니엘을 만나러 갈 때면 늘 지나온 생을 되짚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백화점과 고층 빌딩이 도미노처럼 늘어선 8차선 도로의 끝, 나는 흡입기처럼 차들을 빨아들이는 고속도로 입구로 우회전하지 않고, 정면의 좁고 낮은 굴다리를 향해 직진한다.

우측으로 우르르 쓰러지는 도미노의 행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동시에 강가로 튕겨나온 물고기의 파닥임같은 불안함이기도 하다.       


 ‘인생은 배워서 아는 게 아니야, 아는 만큼 배우는 게 인생이지.’


 굴다리를 지날 때면 다니엘의 말이 떠오른다.

 누구나 맞이하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벼랑 끝인 몇 개의 굽이들을 넘기면서, 어둠을 막아 선 빛을 알게 되었고, 그것의 서늘함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곧 새로운 길이다.’     


 단전에 힘을 모으고 허리께의 한기를 누른다.


 흡입기에 빨려 들어간 차들이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내 머리 위를 달리고 있을 고속도로 아래,  첫 번째 굴다리를 지나면서 도로는 4차선으로 좁아진다. 길은 두 번째 굴다리를 지나면서 곧장 초등학교 앞으로 이어진다. 학교 앞 노란 횡도보도는 마치 다른 세계의 경계선 같다.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은 언제든 환영이지만 여기에 머무는 것은 안 된다.’     


 제한 속도 30km.

 나는 다니엘의 말을 떠올리며 잔뜩 긴장한 발목으로 느릿느릿 그의 세계로 들어간다.      

 

 나의 할아버지 다니엘.

 할아버지를 이름으로 그것도 생경한 외국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은 내가 당신에게 처음으로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부터였다.  오그라드는 뱃속에서 단어들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지만 꽉 막힌 목구멍 때문에 내 마음의 외피는 부풀대로 부풀어 올라 새하얗게 얇아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무심한 말투로 이제부터 당신을 할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 내 왼쪽 고개와 눈썹이 동시에 위로 올라가자 할아버지는 이름으로,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당신을 부르라고 했다.       


 ‘우리 그만 할까?’


 그의 말에 내 고개도 내 눈썹도 주춤했을까?      

 차에서 내리며, 차에 오르던 그가 떠올랐다.


 짧은 쉼호흡을 하고 문앞에 섰다.      


 다니엘의 공간은 '틈'이다. 나는 그 틈에 들어앉아 넓은 하늘도 올려다 보고, 갈라진 골짜기로 쏟아지는 햇빛의 냄새도 맡고, 새들의 날카로운 부리도, 자동차의 둔중한 타이어도 겁나지 않았다. 푸른 초원의 갈라진 흙 사이에 들어앉은 작은 콩알처럼 비로소 내가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드라운 흙이 나를 감쌀 때면 깊은 틈 아래로 뿌리를 뻗고, 푸른 하늘로 줄기를 뻗치며 더 자라고 싶어졌다.       


 ‘여기는 머무는 곳이 아니야.’     


 초인종을 누르며 당신의 말을 되뇌어 본다.


 “다니엘, 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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