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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이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자유를 얻을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하루하루가 어떤 기분일까요. 다른 사람보다 돈이 많다는 심적 우월감으로 매일매일이 충만한 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각자 자기만의 고민을 가지고 있겠죠.
돈이 많았다면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돈은 매사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마음가짐 상태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돈이 많았다면 그 돈에 종속되는 삶에 갇혔을 수도 있을까요.
돈은 인간의 갖가지 욕망이 투여되어 만들어진 살아있는 생물체 같습니다. 돈의 생리가 인간의 기분과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데다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그 물리적 실체가 세상을 실제로 지배하고 있죠. 인간이 돈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돈이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형국이랄까요. 돈의 생명력은 어쩌면 영원한 것처럼 보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집을 나오다 보니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가불을 반복적으로 하며 하루 벌고 하루 탕진하고의 연속이었죠.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습니다. 당시에는 학력이 고졸이었으므로 일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공사현장에 나가거나 음식점 등에서 서빙을 하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로 먹고살았습니다.
영리하게 돈을 벌어 투자하는 방법도 몰랐고 자금을 쌓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스킬도 없었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처음부터 돈이 없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굉장히 좁을 수밖에 없던 것 같습니다.
누구처럼 가고 싶은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미래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런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노숙생활을 이어가다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고시원으로 들어갔고 돈을 모아 보증금을 마련하여 월세방으로 옮겼습니다.
군대를 제대 후 진지하게 제 진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했습니다. 결국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늘 잠이 부족했던 거죠.
당장 다음 달에 들어가야 할 방세, 관리비, 폰비, 각종 공과금, 학자금 대출 이자, 식비, 생활비 등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난감했거든요.
갑자기 일감이 사라지거나 알바를 못하게 되면 그 공포감은 이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우울한 상황인 듯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우울증이라는 감정 자체가 있을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당장 먹고살 궁리를 해야 했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우울증이 들어올 자리에 생존 욕구가 크게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든 대학 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취직을 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거의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힘으로 말이죠.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다른 사람과 늘 쪼달리는 내 처지가 저절로 비교가 되어지니 자격지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또 다른 자신만의 고민과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이제는 그런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본인만이 자신이 갖는 고통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기에 타자의 상황에 함부로 단정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최근엔 학자금 대출도 거의 다 갚았는데, 여전히 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제 이름으로 된 집이나, 차 아무것도 없습니다.
강제적인 무소유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아직까지 크게 물욕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이 안 느껴지는 게 심각한 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지,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 필요한 만큼도 없는데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게 저의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죠.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 먼 훗날 노후 대비를 위해서 이제라도 경제관념을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직장을 오래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모으지 못한 결정적인 요인은 돈이 생기면 빨리 소진하고 싶은 욕구의 발현 때문인데요.
쇼핑을 함으로써 장기간 억눌렸던 제 결핍 욕구를 해소하는데 몰아적으로 빠져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눈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광고가 저를 결핍된 인간이라는 사실을 연속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소비를 촉구하게 만든 것도 큰 몫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소 직장에서나 대인관계에 있어 자존감이 많이 상실되다 보니 희한하게도 멋진 옷을 입은 나의 모습에 매료되어 옷 쇼핑에 집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여행 장비를 사서 국내 여행을 참 많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더 늙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돈은 없지만, 어쩌면 산과 들, 바다를 다니며 자유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경험들은 아무래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