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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로서 살기 위해 한 선택

한양도성길 낙산구간

by 그믐

가족이 남긴 상흔이 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새겨 놓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같은 아픔의 흔적들이 있죠.


왜 나는 평범한 가정 속에서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못했을까. 왜 하필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난 걸까. 왜 나의 부모는 다른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하는 것처럼 나를 대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내가 싫다고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왜 그 선을 지키지 않았을까.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부모에게 남은 감정이라고는 ‘악’ 밖에 없었고 그 사람들의 얼굴만 떠올려도 밤새 울화가 치밀어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되갚아 줘야 내가 받은 고통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겪은 억울함과 모멸감, 수치심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사실 보상받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나에게 행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스스로 용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저에게 자행한 용서받지 못할 수많은 과오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발효되고 숙성되는 자신들에게 상처럼 부여되는 인생의 깨달음과도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들은 이미 저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애초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이나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늘 저 혼자서만 소모적인 감정 안에서 허덕이고 있는 거죠.



부모에게 애틋한 감정이나 가족의 정을 느끼려면 그들이 나를 위해 희생한 삶을 살았다는 절실한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거꾸로 그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내가 희생된 기억 밖에는 남아있지 않으니, 결국 피해 의식만이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시시각각 밀려드는 부정적 감정을 객관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지금에서야 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적으로 고민하고 갈등해야 하나. 고민을 할 가치가 있을 만큼의 관계를 쌓아온 것도 아니지 않나, 나름 반문을 해봅니다.


하지만 거듭된 반문에도 심적 고통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들은 절연하기 바로 전까지도 그 당시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게 하는, 제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언행들을 보란 듯이 이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이 서로의 감정이 평행으로 대치된 채 각자의 운명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젠 아예 안 보고 사니 그나마 괜찮아진 것 같아요. 그들과 관련된 기억 자체가 떠오르지 않게 관계를 단절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죠.


그들을 향한 가족적 연민이 생기는 것, 그 감정에 타협하고 설득당하여 넘어가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절연하기 전 부모님 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절연하기 전이었지만 정말 간만의 방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십 년 전과 똑같은 생활패턴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집안 내에 흐르는 분위기와 기류가 시종일관 학대당했던 그 옛날 풍경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순간 부모님이 저를 위해 공들여지어 놓은 감옥 안에 들어와 갇힌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통 아버지는 늦은 밤이나 어두운 새벽에 일을 마치고 들어왔습니다. 낮 동안 있었던, 나의 철부지 같은 행동들을 아버지에게 부풀려서 일러바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침대에 누워 있는 어린 저를 뜬 눈으로 지새우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상습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 또한 방으로 들어와 잠들어 있는 나를 기습적으로 공격할지 모를 일이니까요.


침대에 누운 채 어서 그들이 대화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 잠들기를 바랐습니다.



당시 방문한 부모님 집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도박과 빚, 외도로 집안을 풍비박산 내고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당당했고 권위적인 가부장으로서의 면모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방기 하며 한평생 가족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해가 안 된 건 나를 향한 가족들의 태도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가족들로부터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보다 나를 더 이상하게 인식하고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입에 담기 힘든 비상식적 사고를 수없이 치고 다니는 건 아버지인데 정작 멸시를 당하는 건 언제나 저였습니다.


아버지가 가정을 등한 시하고 밖으로 나도는 시간 동안 어머니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어머니는 사실상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권위적인 태도를 앞세워 살얼음판 분위기를 조성하며 형제로 하여금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시간 동안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저에게 집중적으로 투사했습니다. 굴종, 복종이라는 태도 외에는 기댈 곳 없던 무기력한 형제의 입장이 어머니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간 걸까요. 시종일관 계속되는 어머니의 폭력 속에 내가 무시당한다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형제들 입장에서도 내가 그렇게 취급받아도 되는 인간으로 각인된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어머니라는 지배자의 시선을 통해 다른 형제들에게도 내가 똑같이 관점화가 된 것이겠죠.


그리고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에 대한 왜곡된 인식만이 의식상에 꿈쩍하지 않는 돌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겠죠.


뿌리 깊이 박힌 왜곡된 관점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인이 되어 만나 대화 도중 집안이 이렇게 무너진 게 여전히 나 때문이라는 형제 한 명의 반복된 말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되긴 합니다.


아무튼 그날 부모님 집을 방문했을 때 저와 그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결코 건너갈 수 없는 가로막힌 벽이 감지되더군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새벽에 일을 마치고 들어와 먹고 남은 야식을 치우지 않았고, 벗은 양말과 옷가지를 그대로 벗어 놓은 채 잠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가혹하리만큼 청결을 강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기준에 있어 깨끗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거리낌 없이 손찌검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 주위는 깨끗이 할 줄 몰랐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어린 조카가 어질러 놓은 거실을 보며 그 특유의 비아냥 거리는 말투로 가족 전체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훈계질을 시작했습니다. 수십 년 간 새벽마다 야식거리와 벗어 놓은 옷가지로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화장실과 집안 청소, 옷 세탁,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것도 모자라 늘 제대로 씻지 않아 풍기는 몸 냄새까지, 빚쟁이들이 쳐들어와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게 한 장본인인 자신의 실상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말이죠.


하지만 여전히 그 누구도 그를 나무라지 않고 있었어요. 적반하장도 이 정도 수준이면 예술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수십 년 전과 똑같이 그가 거꾸로 가족을 향해 지적질을 하고 있었어요. 집안이 자신의 마음에 안 들게, 하필 자기가 집에 들어온 그 시각에 감히 지저분하게 어질러졌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상한 걸까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집안이 더러워졌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들먹이고 있었어요.


저는 말 문이 막혔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집안이 이토록 평온할 수 있다는 게 희한했습니다.

아버지의 감시 아닌 감시 아래 저를 제외한 모두가 집안을 치우고 있는 거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한 집안에서 여전히 아버지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고 다른 가족도 자기 위치에 따라 그 옛날과 똑같이 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갖는 저만 또다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제 위치를 찾아가지 않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 된 거죠.


탈출구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특이한 형태의 가족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대체 여기에 왜 온 것일까. 무엇에 이끌려 이 먼 지방까지 홀린 듯 찾아온 걸까.


저는 그 집안에서 이방인이었습니다.


가족 전체가 공모라도 한 것처럼 수십 년 전 아버지 중심의 위계적인 생활양식을 그대로 되감기 하며 저를 다시 그 옛날의 고통 속으로 불러와 앉히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집으로 찾아온 내 앞에서 가족들을 향해 큰소리치는 이 구도가 만족스러운 눈치였습니다. 벌어둔 재산도 없고 가부장으로서의 자존감도 상실됐지만 아직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저에게 확인시켜주고 싶었던 걸까요. 오랫동안 당신이 싫어 집을 나가 있던 나를 향해 보란 듯이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과시하고 싶었던 걸까요. 너도 어서 다른 형제와 마찬가지로 그 옛날처럼 내 앞에 낮게 엎드려 자기감정과 기분에 맞춰서 행동하라는 저의를 가지고서 말이죠.


그제야 현재 제가 서 있는 위치가 새삼 상기됐습니다.


저는 제 위치 좌표를 다시 상정해야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특이한 가족의 굴레에 종속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저를 향해 시시각각 자행되었던 정서적, 경제적, 물리적 폭력은 늘 가족의 이름으로 정당화가 되었습니다.


‘나’를 언제든지 잡고 휘두를 수 있다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저를 향한 부모의 우월감은 사실 그들의 가족, 당신들의 자식이라는 전제가 만들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단지 저는 그들의 ‘자식’이었으므로 함부로 다뤄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었고, 그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의 대상이 된 거죠.


그들의 가족, 자식이 아니었다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제야 그들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가족이라는 특이 관념 안에 저를 포섭시켜 놓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들이 마음속에 상정해 놓은 ‘나'의 모습에 따라 이제는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나’ 일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울타리 밖에 저를 위치시키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게 바로 그들과 절연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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