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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자기 위신을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녀가 자신의 평판에 먹칠하는 걸 못 견뎌하는 성격이었죠.
부모는 자기 권위에 대항하는 분위기 자체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감히 용기 내어 스스로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그 자체가 당돌해 보이고 버릇이 없어 보이는 행위였으니까요.
부모는 저에게서 아빠, 엄마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유독 저에게만 아버지, 어머니로만 호칭을 부르게 했고 깍듯이 존댓말만 쓰게끔 했습니다.
대화 중 한번 반말을 했다가, 그러니까 끝말 어미를 순간 짧게 끝냈다가 정말 의아하고 이상한 눈길로 부모가 나를 쳐다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눈빛은 평소에도 영문 없이, 뜬금없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이, 저를 향해 이어지는 시선이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 한참 동안 그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노골적으로 응시했습니다. 그 순간 그들과 나 사이의 공기는 얼어붙었고 싸해진 분위기 속에 저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습니다.
본인들이 조성한 억압적인 기류에 몸 둘 바를 몰라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들은 어떤 만족감이 들었던 걸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만 제 부모에게는 결코 통하지 않은 말이죠.
그들은 항상 자신들의 물리적 힘과 부모라는 상징 권위를 앞세우며 신하대하듯 자식을 낮게 엎드리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따듯한 울타리 같은 가족의 모습을 원한 게 아니라 위계질서가 강하게 확립된 가족 구도 위에 군림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장남이었지만 가족 내 위계 구도에서 가장 하위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위치는 부모가 규정했죠.
다른 형제는 상대적으로 저보다 눈치가 빨랐던 것 같아요. 부모로부터 불합리한 일을 당하더라도 빨리 용서를 구했으니까요. 부모님과 자기 자신 사이의 위계 구도를 빠르게 인식했던 거죠. 성난 부모의 손에 잡혀 창과 문이 굳게 닫힌 방 안으로 끌려들어 가면서도 재빠르게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반면 저는 일단 부모가 대체 왜 이러는지 상황 파악이 잘 안 됐고 그래서 잘못했다고 할 타이밍을 자주 놓쳐 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게 부모의 화를 더 돋우게 만들었고 결국 부모는 항상 화가 나 있는 채로, 집안에서 그러한 기본자세가 저를 향해 계속 유지되었던 거죠.
어느새 저의 일상에서의 사소한 손짓, 눈빛, 걷는 태도, 말투가 아니꼽게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보통의 태도가 부모에게는 욕하고 때릴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같은 집안에 저와 함께 기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아버지는 내 표정과 눈빛을 평소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늘 제 얼굴을 보며 외모 비하를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어머니에게 고자질을 들은 아버지는 흔히 차 안에서 제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렸습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은 차치하고라도 차를 타고 가다가 내버린다고 위협한다던가, 심한 손찌검을 한 다음 집 밖으로 쫓아내는 식으로 자주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자식인 걸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에게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었습니다.
진솔한 대화를 나누거나 그들과 같이 웃어본 적이 없어요. 그들부터가 이미 저와의 그런 분위기 자체가 조성되는 걸 어색해하는 것 같았어요.
눈만 뜨면 어떻게든 트집 잡아 깎아내리려는데 안달이 나 있었으니까요.
당연히 제가 가족 울타리 밖 외부 세계나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칭찬받는 꼴을 두 눈 뜨고 못 봤죠.
그 당시에 부모님의 기분을 맞추느라 많은 눈치를 봤는데 그렇게 하면 또 눈치를 본다고 폭언을 쏟아냅니다. 무슨 행동을 하든 간에 저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집 안에서 늘 어떤 자세와 표정, 태도로 있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집안에서 살얼음판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제가 알아서 저를 검열하는 태도가 당연시되었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내 잘못으로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했죠. 저는 늘 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거나 집 밖으로 나가면 흔히 듣게 되는 공감, 친절, 유대, 배려, 이해라는 단어와 감정이 낯설었고, 오히려 그 말들이 낯간지러웠습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와 감정이 엄습해 오는 심리적 느낌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건 내가 몸담고 있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호 소통 방식의 언어였으므로 생소했습니다. 그 생소함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유순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는 이에게 어찌할 바를 몰라 저도 모르게 급발진하고 매몰차게 대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저자세로 다가가 친근하게 구는 나의 모습이 내 자신의 권위를 상실케 만든다고 느낀 걸까요.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몸가짐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굴종의 자세로 여겨졌던 걸까요.
어느새 저는 저를 억압하던 제 부모의 권위적인 태도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단지 다른 집 아이들처럼 밖에서 뛰어노는 거 좋아하고 만화를 즐겨 보고 싶어 하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저의 행동이 남들이 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행동처럼 보여도 저를 못마땅해하던 제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큰일 날 것 같은 행동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집안에서는 많은 규칙이 있었고 그 하나하나를 지키기가 참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어린 마음에 나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그들의 말도 안 되는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하는 역할을 소화해 내야 했던 것 같아요.
부모는 어린아이가 수행하기 힘든, 아니 어른들조차, 심지어 자기 자신들조차 지키기 어려운 높은 기준을 상정해 놓고, 그 기준 선에 못 미치게 행동하면 몰염치한 비도덕적인 아이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을 하기 위한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으로 커가면서도 다른 사람들도 부모처럼 그렇게 은연중에 나를 평가한다고 단정 짓고 저에 대한 기준, 기대치를 높였던 것 같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윽박지르고 손찌검을 계속 당하다 보니 별거 아닌 일에도 죄의식이 유발되어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심리 상태가 줄곧 유지된 것 같습니다. 크게 위축될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안감과 공포, 절망감이 먼저 엄습하게 되는 정신구조가 구축된 게 아닐까 이제 와서 의심이 드는 거죠.
일반인이 보면 대수롭지 않은 상황에도 눈치를 보는 성격이 형성된 저는 사소한 일에 감정 조절이 잘 안 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별거 아닌 상황에 예민해지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의 크게 의미 없는 행동 하나하나 조차 확대해석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심어준 강박적 기준이 어느새 저의 성격으로까지 기질화된 거죠.
저를 무시하고 하대하는 부모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보란 듯이 당신들이 틀렸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싶은 보복심리에 격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인 걸까요.
부모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많은 이에게 주목받고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한 나의 모습을 무의식 상에 상정해 놓았던 것 같습니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저절로 굴종을 유도하게 만드는 위엄 있는 존재가 되길 내심 기대하고 있던 것이죠. 일생 동안 저를 혹독하게 압박했습니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제 스스로가 아주 권위적인 인간이 되어 간 거죠.
결과적으로 내 본모습이 아니었고 진짜 내 삶을 살지 못한 거죠.
어쩌면 처음부터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도 누구보다 뛰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권위적인 부모의 영향권 아래 있지 않았다면 말이죠.
부모들을 정말 싫어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들이 만들어 놓은 왜곡된 삶의 방향 안에서 나를 가둔 것이었고 저도 모르게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따라 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성인이 된 후 집을 나와서도 대인관계에 있어 감당하기 힘든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